명동·홍대 일대 상점들 살펴보니
이른 폭염 속 ‘울며 겨자먹기’ 개문냉방 영업
지자체 과태료 부과 대상이지만 ‘버젓이’
“전력 낭비로 전기세 또 오를 수 있다”
서울 중구 명동역 일대 상점들이 13일 오후 에어컨을 가동한 채 가게 문을 열어두고 있다.(사진=이영민 수습기자) |
서울 중구 명동역 인근에서 10년째 홍삼식품을 팔고 있는 성모(77)씨는 요즘 매장 내 에어컨을 틀고 가게문을 활짝 열어둔 채 영업하고 있다. 늘어난 전기요금이 부담이지만 손님의 발길이 끊기는 게 더 두렵다는 이유에서다. 그녀는 “유동인구는 늘었는데 경제가 나빠서인지 장사가 잘 안된다”며 “그래도 문을 열어두면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이라도 있으니 이렇게 둔다”고 했다.
성씨만이 아니다. 지난달 16일부터 전기료가 5.3% 올랐지만, 낮 최고기온이 30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 속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에어컨을 풀가동하며 문을 열어두고 영업하는 가게들이 적지 않다. ‘개문냉방’ 영업이다. 대표적인 에너지 낭비 행태로 지방자치단체에선 단속을 통해 최대 300만원까지 과태료를 물리지만, 느슨한 단속에 낭비는 계속되고 있다.
이데일리가 지난 지난 13일 오후 1시부터 명동역 인근 상점 100곳을 살펴보니 이중 61곳이 에어컨을 가동하면서 가게 문을 열어두고 있었다. 이날 서울 낮 최고기온은 26도로 후덥지근한 날이었다. 반소매에 짧은 바지를 입고, 손선풍기와 부채를 손에 쥔 행인들이 상당했다. 하지만 명동 골목골목은 좌우 상점에서 찬바람이 새어나와 서늘한 감이 돌았다.
안경가게에서 일하는 김모(30)씨는 “명동에선 개문냉방이 일상”이라고 했다. 김씨는 “명동 상권은 외국인이 많이 오는데 문 열고 닫을 때 확실히 차이가 있다”면서 “문을 열면 들어와서 구경하다가 사기 때문에 거의 다 문을 열고 장사한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매출이 코로나19 이전만큼 아직 회복되지 않아서 전기료보다 손님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명동뿐일까. 서울 마포 홍대입구역 인근과 신촌역 인근 상점들도 비슷했다. 지난 14일엔 천둥을 동반한 비가 내리는 가운데서도 가게 문을 열어두고 호객 행위를 하는 가게들이 적지 않았다. 홍대입구역 인근의 옷가게에서 일하는 조모(26)씨는 매장 내 에어컨 온도를 23도로 맞춰두곤 좌우 출입구를 모두 열어두고 장사를 했다. 조씨는 “문을 열어놔야 손님이 바깥에서라도 옷을 보고 안으로 들어오니 사장님이 계속 열어두게 했다”고 했다.
13일 ‘개문냉방’ 중인 서울 중구 명동역 일대 한 가게(사진=이영민 수습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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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은 개문냉방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다. 명동에서 만난 서울 강북구의 임모(21)씨는 “여름엔 에어컨 때문에 시원해서라도 들어갔다가 사는 경우도 있으니까 그러려니 싶지만, 모든 가게들이 그러면 에너지 낭비가 너무 심해질테니까 대안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관광을 온 미국인 루시(48)씨는 “손님을 끌어모으기 위한 홍보수단이겠지만 에어컨을 켜고 문을 열어놓는 건 상당한 낭비”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개문냉방 영업은 여름철 전기수급 불안을 불러올 요인 중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너지공단에 따르면 개문냉방을 하면 문을 닫고 냉방할 때보다 약 4.2배 더 많은 전력이 소비된다. 김정인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전기를 지금처럼 비효율적으로 쓰면 공급 문제로 전기요금이 또 오를 것”이라며 “지속적인 정책홍보와 계도로 개문냉방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산업통상자원부는 오는 26일부터 9월15일까지를 ‘여름 전력수급 대책 기간’으로 지정했다. 올해는 평년보다 이른 더위가 찾아오고 평년보다 더울 것으로 예상돼 지난해보다 전력수급 관리 기간을 2주 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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