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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실무진 잘못이라도 임원 책임 묻는다…내부통제 더 중요해진 금융권 [Deloitte 금융 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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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사는 현대인 인생의 시작과 끝을 함께한다. 태어나기 전 보험사의 태아보험 가입을 시작으로 나이가 들수록 은행, 카드사, 증권사 등 다양한 금융사와 거래를 이어간다. 금융 거래를 통해 형성된 자산과 부채는 비예금상품 판매 때 투자 한도 기준으로 작용하거나 공공임대주택 입주자 선정 기준에 활용돼 제약 요인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금융사는 생각보다 훨씬 더 일상에 밀접하게 영향을 준다.

금융사가 도덕적 해이나 불안정한 운영 방식 등으로 위기에 빠지면, 회사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큰 파장을 가져온다. 일례로 지난 3월 미국에서 발생한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여파는 시그니처은행(SBNY)과 퍼스트리퍼블릭은행(FRCB) 추가 파산의 도화선이 됐다. 또한 글로벌 대형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은행의 UBS 인수 사태와 도이치은행의 주가 폭락으로 이어졌다. 은행에 대한 공포가 감염병처럼 급속하게 번진다는 뜻의 ‘뱅크데믹(Bank+Pandemic)’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하기도 했다. 금융사의 안정적인 운영은 해당 회사 안정성, 그 이상의 의미가 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금융사 내부통제 중요성은 항상 강조돼왔음에도 불구하고 경제 불확실성이 커짐에 따라 위험 요소를 예측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진다. 복잡하고 다양한 이해관계로 얽힌 현대 사회에서 언제든 예기치 않게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 실제 SVB 파산 당시 국내 은행 주가는 일제히 하락했다.

국민연금이 SVB금융그룹에 투자한 사실이 드러나 그에 따른 손실 등의 영향에 대한 우려도 컸다. 미국 중형급 은행 파산이 우리나라 금융 시장과 사회에도 후폭풍을 야기한 것이다.

금융자본주의와 글로벌 개방화 물결로 자산과 부채가 늘어나며 전반적인 삶의 질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 위기가 발생해 잠재된 문제가 심각하게 발전할지 예측하기 어려워졌다.

금융권 경계 모호한 ‘빅블러’ 시대

경쟁 치열해지며 금융 사고도 증가

더구나 점점 더 치열해지는 금융사 간 경쟁은 업계를 더 어렵게 만들었다. 금융 시장이 개방돼 어느 은행에서나 고객이 가입한 다른 은행으로 고객 기반 서비스 이동이 수월해지며 ‘고객 계좌 기반 전략’의 효용성이 빛을 바랜 상태다. 기술 발달로 금융과 비금융 경계가 모호한 ‘빅블러(Big Blur)’ 시대는 경쟁을 더욱 가속화시켰다.

금융권 리스크는 이것만이 아니다. 국내 금융사 지배구조상 금융사에 정부 영향력이 미치지 않을 수 없다. 이 때문에 금융사 이익에 반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근본적인 금융의 미래 문제에 대한 고민보다 단기적인 이익 추구에 빠지기 쉬운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단기적인 이익 추구는 금융 비리와 사고를 유발시킬 가능성이 높다. 또한 기업 입장에서 수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되는 내부통제나 사고 예방, 고객과 사회에 대한 장기적인 관점의 사회 환원과 책임 등의 의무를 소홀하게 만든다. 그 결과 금융사는 내부통제 실패나 금융 사고로 인한 손실도 적잖이 떠안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과거 20년간 몇 차례 발생한 금융위기에서 봤듯 내부통제 소홀이나 금융 사고의 근시안적 수습은 더욱 큰 대형 사고로 연결된다. 우리 경제의 최종 대부자인 정부가 이런 피해를 막으려 노력하겠지만, 국민 혈세가 투입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금융사 내부통제 실패와 금융 사고 발생은 더 이상 소수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사회적 병폐와 모순에 기인한 사회적 문제로 이어진다.

최근 고객 데이터가 경쟁력이 되며 데이터 확보를 위한 금융사 경쟁도 치열해졌다. 고객 보호를 위한 보안 문제도 증가했다. 또한 횡령도 빈번하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2년 5월까지 금융권에서 횡령한 임직원은 174명이었다. 총 횡령 규모는 1092억원에 달한다. 빈번한 금융 사고는 미비한 내부통제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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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사 내부통제 중요성은 항상 강조돼왔음에도 불구하고 경제 불확실성이 커짐에 따라 위험 요소를 예측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진다. 사진은 여의도 금융가. (매경DB)


금융사·정부 내부통제 강화

금융 소비자도 적극적으로 감시

금융권과 정부 모두 금융 사고 예방을 위해 발 벗고 나서는 모양새다. 은행들은 영업 확대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완전판매를 줄이려고 노력한다.

또한 지난해 문제가 된 수조원대 이상한 해외 송금과 수백억원대 횡령 등 금융 사고에 대비해 대응 조직을 신설하는 등 내부통제를 위한 조직 강화에 나섰다.

금융당국 또한 사모펀드 불완전판매, 직원 횡령 등이 잇달아 발생함에 따라 사고 재발을 막기 위해 ‘금융권 내부통제 제도 개선 TF’를 신설하는 등 관련 제도 개선 방안 마련에 나섰다. 해당 TF 회의를 통해 임직원 책임 범위를 사전적으로 확정해두는 ‘책임 지도(Responsibilities Map)’를 도입하고 총괄 책임은 CEO에게 부여하는 방식을 제시했다.

책임 지도는 영국이 2016년 3월 금융사 내부통제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다. 금융사 고위 경영자 개인의 책임 강화를 위해 금융사가 임원별 책임·업무 범위를 확정하고 당국에 미리 제출하는 것을 말한다. 이 제도가 입법화되면 실무 직원이 금융 사고를 내더라도 책임 소재는 금융 사고 방지 의무가 있는 임원까지 부과된다.

기존에는 금융 사고 발생 때 직원 개인에게 초점이 맞춰졌으나 한국식 책임 지도가 적용되면 내부통제가 전사적 운영 리스크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전환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사고가 발생했더라도 내부통제가 정상 작동됐다면 책임을 경감·면책하는 인센티브가 도입될 방침이다. 내부통제를 제재 목적으로 활용해왔던 기존 방식과 달리, 제재 경감에 대한 인센티브 수단으로 활용함으로써 조직 내에서 보다 자율적이고 충실한 내부통제 강화를 유도하기 위한 제도다.

앞서 언급했듯, 금융 사고는 당장 소비자와 주주의 직접적 피해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금융권 신뢰 훼손 등 경제·사회 전반에 미치는 파장이 크다. 금융당국 규제 재정비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금융 회사의 자율적이고 적극적인 내부통제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금융사는 내부통제를 규제로 인식하기보다 금융사 신뢰와 이익을 보호하는 전략적 요소로 보고 내부통제 기준 강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

나아가 금융사 공공성에 대한 인식은 금융사와 금융당국에 그치지 않고 금융 소비자 스스로 올바로 챙겨야 한다. 금융사 내부통제를 강화하고 사고를 억제해야 우리 자산과 미래를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소수의 금융사 직원, 경영진, 주주가 잘못된 선택과 독단적 결정을 내리도록 방관하는 것은 스스로 우리 운명을 남에게 위탁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쩌면 금융사 ‘내부통제’는 우리 모두가 합리적인 방향을 제시해 도와주고 발전시켜나가야 할 문제다. 금융사뿐 아니라 금융 소비자 모두가 내부통제의 실질적인 주체다.

매경이코노미

전종무 한국딜로이트그룹 금융산업통합 서비스그룹 리스크자문본부 파트너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13호 (2023.06.14~2023.06.2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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