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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KCGI에 주주서한 받은 DB하이텍, 경영권 분쟁 시작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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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강성부 펀드’로 불리는 사모펀드 KCGI가 최근 주주서한을 통해 DB하이텍 경영진을 비난해 재계가 시끌시끌하다. 본격적인 주주행동에 나서면서 향후 경영권 분쟁으로 확대될지 관심이 쏠린다.

KCGI 주주서한 공개

“후진적 거버넌스 탓 기업가치 저평가”

KCGI는 최근 DB하이텍의 거버넌스 선진화 방안을 담은 주주서한을 공개했다. KCGI는 투자목적회사(SPC) 캐로피홀딩스를 통해 DB하이텍 지분 7.05%(보통주 312만8300주)를 보유했다.

주주서한에 따르면 KCGI는 DB하이텍의 주가 저평가 원인으로 지배주주의 사적 이익 추구, 불투명한 경영과 내부통제 미비, 무시되고 있는 주주 권익을 꼽았다. 핵심은 “기업가치가 저평가된 주원인이 후진적인 거버넌스”라는 것이다.

주주서한 내용을 보면 DB하이텍 미등기임원인 김남호 회장과 김준기 창업회장의 지난해 보수총액은 68억원으로 전년 대비 49% 증가했다. 김준기 창업회장은 지난해 상근 경영 자문을 맡아 31억2500만원의 보수를 수령했다. 김남호 회장은 37억100만원을 받았다.

매경이코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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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너 이익만 늘렸을 뿐 불투명한 경영을 이어왔다는 것이 KCGI 주장이다. 일례로 DB하이텍이 올해 팹리스 자회사 DB글로벌칩 물적분할을 강행한 것을 두고 “지배주주와 경영진이 일반주주와의 소통을 얼마나 경시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줬다”고 꼬집었다. DB하이텍은 디스플레이구동칩(DDI) 설계 사업을 담당하던 브랜드사업부를 100% 자회사로 물적분할했다. 보통 물적분할 후 신설 회사가 상장하면 기존 회사 기업가치가 하락해 주가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물적분할을 반대하는 소액주주와 갈등을 빚었다.

이를 두고 본 KCGI는 DB하이텍의 거버넌스 개선 방안을 내놨다. 독립적인 이사회를 구성하고 내부통제 강화를 통해 경영 투명성,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감사위원인 사외이사 1인 지명권을 보장하고, 해당 이사를 이사회 내 위원으로 참여시키는 한편 자사주 매입 후 소각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DB하이텍은 상장사임에도 불구하고 지배주주 일가 개인 회사처럼 경영해왔다. 선진적인 내부통제 시스템 도입을 통해 회사 자산의 불필요한 유출을 사전적으로 차단할 필요가 있다. 김준기 창업회장 퇴사와 김남호 회장의 책임 경영이 필요하다.” KCGI 측 주장이다.

KCGI는 그동안 DB하이텍 경영진과 만나 거버넌스 개선 방안을 논의하려 했지만, DB하이텍 측이 협조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지난 4월 20일, 5월 4일, 5월 19일 세 차례 대면 협의, 자료 요청을 했으나 답변을 받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KCGI는 DB하이텍 측이 주주 협의를 통한 대화를 거부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결국 주주서한을 공개했다.

DB하이텍은 곧장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KCGI에 자료를 제공한 후 세부사안에 대한 논의를 거쳐 주주 협의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후 KCGI는 DB하이텍 주주로서 이를 감시하고자 회계장부와 이사회의사록의 열람, 등사 가처분 신청을 내면서 논란이 뜨겁다.

KCGI가 주주서한을 공개하면서 재계 안팎에서는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제기된다. KCGI 측이 오너 일가의 사적 이익 추구를 꼬집으며 DB하이텍 지배구조 개선 요구안에 ‘김준기 창업회장 퇴사’를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또한 DB하이텍은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거뒀지만 시장에서는 저평가받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DB하이텍은 지난해 매출 1조6753억원, 영업익 7687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영업이익이 두 배 가까이 늘어난 데다 매출도 38% 증가했다. 영업이익률은 무려 46%에 달한다. DB하이텍 관계자는 “전력반도체 분야 기술력, 원가 경쟁력을 확보한 것이 주효했다. 자동차 등 고부가 제품 비중 확대가 호실적을 견인했다”고 분석했다. DB하이텍이 공략해온 전력반도체는 스마트폰, 노트북 등 전자제품에 필수로 들어가 전원 등 전력을 제어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정작 주가는 지지부진해 주주 불만이 끊이지 않았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DB하이텍 주가는 5월 한 달간 5.6% 하락했다. 반도체주인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같은 기간 각각 9.17%, 20.93% 오른 것과 대비된다. 시가총액 규모가 2조5000억원 안팎으로 DB하이텍과 비슷한 서울반도체 주가도 15.6% 뛰었다. DB하이텍 주가는 6월 들어서도 횡보 중이다.

DB하이텍 주가 부진은 외국인 투자자 매도 영향이 크다. 외국인은 5월 한 달 동안 DB하이텍을 약 1513억원어치 팔면서, 지분율이 25.5%에서 19.96%로 줄었다. 같은 기간 외국인이 삼성전자, SK하이닉스를 대거 순매수한 점을 감안하면 아쉬운 대목이다. DB하이텍은 지난해 실적 발표 후 순이익(5638억원)의 10% 수준인 565억원을 배당하는 등 주주 환원 정책에 나섰지만 주주 기대에 못 미친다는 분석이 끊이지 않았다.

금융권 관계자는 “KCGI가 지난 3월 말 DB하이텍 지분을 매입하자 DB하이텍 주가가 반짝 상승했지만 오름세는 금세 꺾였다. 경영권 분쟁 우려가 커지면서 외국인을 포함한 투자자들이 섣불리 투자에 나서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나마 호실적을 거둔 것은 위안거리지만 향후 실적 전망도 불안하다. DB하이텍은 올 1분기 매출 2982억원, 영업이익 829억원을 기록했다. 각각 전년 동기 대비 25%, 54% 줄어든 수치다.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전방 산업 수요 부진, 재고 조정이 지속된 영향이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올해 DB하이텍 영업이익은 4319억원으로 전년 대비 감소세를 보일 우려가 크다. 12인치 파운드리 사업 진출 계획을 내놨지만 최소 3년 이상 시간이 소요돼 당분간 8인치 아날로그 반도체 중심으로 사업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매경이코노미

행동주의 펀드 KCGI가 DB하이텍에 주주서한을 보내면서 경영권 분쟁으로 확대될지 관심이 쏠린다. 사진은 DB하이텍 부천캠퍼스. (DB하이텍 제공)


경영권 분쟁 어디로

KCGI, 소액주주 손잡을 듯

향후 DB하이텍 경영권 분쟁은 어떤 시나리오로 진행될까.

재계에서는 KCGI가 일단 소액주주와의 연대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DB하이텍은 소액주주 비중이 70%에 달한다. 최대주주인 DB Inc 지분율이 12.42%에 그치고 김남호 회장이 보유한 DB하이텍 지분은 전무하다. 김준기 창업회장 보유 지분(3.61%)도 미미하다. 특수관계인 등 우호 지분을 모두 합쳐도 17.82% 수준이라 지배구조가 취약하다는 평가다.

KCGI가 보유한 DB하이텍 지분(7.05%)은 2대 주주 국민연금(7.94%)과 얼마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사실상 소액주주가 DB하이텍 경영권 분쟁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다는 분석이다. 소액주주연대는 “KCGI 펀드의 지분 매입을 환영하며 주주 가치 제고를 위해 계속 싸우겠다”고 밝혔다.

경영권 분쟁 우려에 휩싸인 DB하이텍은 오랜 기간 적자를 내면서 DB그룹의 ‘애물단지’로 불려온 회사다. 2001년 파운드리 사업에 진출한 이후 높은 기술 장벽과 막대한 투자비로 10년 넘게 적자를 이어왔다. 그러다 2015년 흑자전환에 성공한 이후 성장세를 이어가며 당당히 ‘세계 10대 파운드리 기업’으로 우뚝 섰다. 어느새 DB그룹 효자 계열사로 탈바꿈했지만 행동주의 펀드 공세에 시달리면서 향후 경영권이 한 치 앞을 알 수 없게 됐다.

“KCGI가 소액주주 지분을 추가 매입하면 곧장 DB하이텍 2대 주주로 올라서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경영진 퇴진 요구를 두고 말들이 많지만 DB하이텍으로서도 KCGI 주장을 마냥 무시할 수 없어 향후 DB그룹 경영진 고민이 커질 것이다.” 재계 관계자 귀띔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13호 (2023.06.14~2023.06.2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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