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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중국 대사 고압 발언과 관저 생중계, 모두 적절치 않다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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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8일 저녁 성북구 중국대사관저에서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를 만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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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가 지난 8일 저녁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대사관저로 초청한 자리에서 “미국이 전력으로 중국을 압박하는 상황 속에 일각에서 미국이 승리하고 중국이 패배할 것이라는 베팅을 하고 있다”며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는 이들은 나중에 반드시 후회한다”고 말했다. 싱 대사는 “한국이 중국과의 관계를 처리할 때 외부 요소의 방해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고 밝혀, 자신의 발언이 한국을 겨냥한 것임을 분명히 했다.

싱 대사 발언은 일차적으로 미국에 치우친 윤석열 정부의 외교 행보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풀이된다. 외교관이 국익 관점에서 상대국 정부에 대해 입장을 밝힐 수는 있다. 하지만 실제 협상장도 아니고 공개 발언을 할 땐 지켜야 할 선이 있다. 이번 발언은 공개 발언이라고 하기엔 이례적으로 고압적이다. 한국이 중국 편에 서지 않으면 보복하겠다는 위협으로 들린다.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에 대한 양국 협조를 논의하기 위해 관저를 찾은 야당 대표를 앉혀 놓고 일방적으로 10분 넘게 주재국 정부를 공개 성토한 것도 외교 관례에 어긋난다. 정부에 할 말이 있으면 외교 통로를 통해 직접 긴밀하게 논의하는 게 먼저다. 큰 결례가 아닐 수 없다. 이런 태도는 윤석열 정부의 외교 정책에 비판적인 국민들에게도 반감을 살 수 있다. 해당국 국민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대사가 오히려 선린우호 관계를 훼손한 격이다. 그래서 이날 싱 대사의 발언은 시진핑 국가주석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이 대표도 외교 행보에는 좀 더 치밀하고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국회 다수당 대표로서 활발한 외교 협의를 마다할 이유는 없다. 특히 후쿠시마 오염수에 대해 여권이 일본 입장에 치우친 터라, 야당이 국익 차원에서 한-중 협력에 나설 수 있다. 그러나 야당 대표가 일국 대사관저를 직접 찾아간 건 격에 맞지 않고, 지금 같은 민감한 국면에선 더욱 그러하다. 특히 이를 당 유튜브 채널로 생중계한 것은 외교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려 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강대국을 상대하는 외교일수록 프로토콜에 입각해 형식도 내용도 제대로 정비되어야 한다.

국민의힘도 “백댄서”(김기현 대표), “중화사대주의”(신원식 의원) 운운하며 대야당 공세에 외교를 끌어들이는 일은 그만둬야 한다. 여도 야도 외교를 국내 정치에 활용하려는 생각은 애초에 버려야 한다. 국익과 국격을 최우선에 두고 냉철하게 접근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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