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후 새로운 고용형태 노동자 급증
유럽처럼 노사 참여해 보호제도 만들어 가야
"'근로자' 넘어 '일하는 사람'으로"
지난달 11일 앰배서더 서울 풀만 호텔에서 열린 '유럽과 한국의 새로운 고용형태 노동자 보호 방안' 좌담회에 참석한 마아얀 메나쉬(왼쪽 두 번째부터 시계방향으로) 케임브리지대 교수, 한준규 한국일보 정책사회부장, 남궁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김덕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상임위원. 맨 왼쪽은 통역사 박수현씨. 안다은 인턴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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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원 A씨는 스스로를 근로자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배달 앱이 정한 규칙에 따라 음식을 전달하고 이를 어기면 페널티를 받기 때문이다. 알고리즘에 종속돼 자율성이 크지 않다고 여긴다.
또 다른 배달원 B씨는 자신을 자영업자에 가깝다고 본다. 하고 싶은 만큼 일하고 쉬고 싶은 만큼 쉴 수 있어서다. 4대 보험이나 퇴직금이 보장되지 않는 점도 이런 생각을 뒷받침한다.
똑같은 일을 해도 판단이 갈리는 이유는 이들이 일종의 '회색지대'에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이지만 노동권이 보장되지 않고, 자영업자이지만 자율성은 충분하지 않다. '일하는 사람들'이란 게 공통분모인 회색지대 노동자는 4차 산업혁명과 팬데믹을 계기로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나고 있다. 플랫폼 노동자부터 틈새노동자(긱 워커), 프리랜서 등 형태도 다양해 하나로 묶을 수 없을 정도다.
각국은 사각지대에서 일하는 이들을 보호하거나 규제하기 위한 방안을 치열하게 고민 중이다. 국내에서도 최근 유럽 플랫폼노동 연구자 마아얀 메나쉬(Maayan Menashe) 영국 케임브리지대 법대 교수와 노동법 전문가 남궁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김덕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제사회노동위원회 상임위원이 '유럽과 한국의 새로운 고용형태 노동자 보호 방안'을 주제로 머리를 맞댔다. 좌담회는 지난달 11일 서울 중구 앰배서더 서울 풀만 호텔에서 한준규 한국일보 정책사회부장 사회로 진행됐다.
일률적 법·제도로 규율 어려운 '새로운 노동자'의 출현
마아얀 메나쉬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지난달 11일 '유럽과 한국의 새로운 고용형태 노동자 보호 방안'을 주제로 열린 좌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하상윤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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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자와 자영업자의 경계에 놓인 새로운 노동자들이 늘고 있다. 이들이 법과 제도의 보호를 받지 못해 논란이 되기도 한다. 무엇이 가장 문제라고 보나.
메나쉬 교수= "지금은 똑같은 일을 해도 정규직일 수도, 계약직일 수도, 프리랜서일 수도 있다. 각각의 상황과 근로자 특성, 고용형태가 다르기 때문에 기존 노동법을 적용하면 사각지대가 생긴다. 근로자임에도 자영업자처럼 분류되면 최저임금 등 법적 권리를 누리지 못하거나 장비와 설비 비용을 직접 부담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이 경우 근로조건이 악화되고 고용이 불안해지면서 스트레스, 우울, 불안이 생기기도 한다."
남궁준 연구위원= "'플랫폼 노동자'만 해도 포함될 수 있는 직업 종류가 천차만별이다.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고급 기술을 가진 그룹과 반복·저숙련 노동을 주로 하는 그룹으로 나뉘는데, 우리는 후자에 주목해야 한다. 알고리즘에 의해 하나부터 열까지 세세하게 통제되는 이들은 보수가 높지 않고, 숙련도를 높이기 위한 교육도 거의 받지 못한다. 고숙련 그룹은 자영업자 성격이 더 짙지만, 저숙련 그룹은 근로자의 성격이 더 강하다.
김덕호 상임위원= "고숙련자와 저숙련자는 크게 증가하는 데 반해 중숙련자는 줄어들고 있다. 적게는 80만 명, 많게는 290만 명을 플랫폼 노동자로 보는데, 플랫폼 노동을 주업으로 삼는 사람이 전체의 58%다. 이들은 근로조건이 열악하다고 호소하고 있으며 1년 전에 비해 수입이 줄었다는 사람도 절반에 달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양극화의 주원인이 되고 있는 셈이다."
보호 방안 발전하고 있지만..."법 적용 모호성 여전"
남궁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이 지난달 11일 '유럽과 한국의 새로운 고용형태 노동자 보호 방안' 좌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안다은 인턴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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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변화에 비해 법과 제도 변화 속도는 느리다. 그래도 유럽연합(EU)이 2019년 '투명하고 예측 가능한 근로조건에 관한 지침'을 제정해 '근로자(employees)'에 한정했던 근로조건을 '노동자(workers)'로 확장하는 등 사각지대를 보완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메나쉬= "해당 지침이 지난해 8월부터 EU 회원국들에서 개정 시행됐다. 올해 들어서는 EU 의회에서 플랫폼 노동자를 자영업자가 아닌 근로자로 인정하는 지침안을 의결하기도 했다. 이를 위해 당사자, 특히 노조와도 대화를 했다. 사각지대 노동권 보호를 위한 장족의 발전이긴 해도 기존 근로자에게 부여되던 권리까지 모두 주는 건 아니다. 궁극적인 문제 해결은 아닌 셈이다."
-우리나라 상황은 어떤가.
남궁준= "플랫폼 노동에 한하면 지난해 산재보험법과 고용보험법에서 '전속성' 요건이 폐지된 것이 가장 큰 변화다. 내달부터는 플랫폼노동자 등에게도 산재 적용이 가능해졌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특고나 플랫폼 노동자 노조도 늘고 있다.
메나쉬= "최근 기성 노조들이 시대가 달라졌다는 걸 인지하고 플랫폼 노동자까지 포섭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들은 근로자성을 인정받더라도 한 공간에서 일하는 게 아니라 파업을 하는 대신 인권운동과 비슷한 방식의 보이콧이나 온라인 청원 등으로 의견을 피력한다. 조만간 제도권 안으로 들어올 것 같다."
남궁준= "한국은 2018년 대법원이 노조법상 '근로자' 개념을 넓히면서 노조 설립이 전보다 쉬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화물연대 파업 당시 불거졌던 논란처럼 이들에게 노조법을 적용해야 할지 공정경쟁법을 적용해야 할지 확실히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이 있는 게 사실이다. 기존에 존재하던 네모난 틀에 동그라미를 구겨 넣는 상황이라고 봐야 한다."
"우리도 'worker' 개념 필요... 노사정이 함께 머리 맞대야"
김덕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상임위원이 지난달 11일 '유럽과 한국의 새로운 고용형태 노동자 보호 방안' 좌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안다은 인턴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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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연대 사례에서 보듯 새로운 노동자에게 핵심적인 문제는 '사용자가 누구냐'이다. 이들의 노동권은 누가 어떻게 보호해야 하나.
김덕호= "화물연대는 사용자성이 너무나 분명해 이런 사례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택배노동자처럼 대리점주와 계약하는데도 근로조건 등을 모두 본사(원청)가 결정하는 경우 교섭권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 부분은 아직 시기상조라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남궁준=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를 비롯해 현행 단체교섭 제도는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 3권 행사가 어려운 면이 있다. 게다가 이들은 일감을 받기 위해 상호 경쟁을 하기 때문에 연대가 본질적으로 어렵다. 어찌어찌 노조를 만들더라도 교섭 상대방 사용자를 특정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안고 있다."
-그렇다면 보호 방안이나 제도는 어떤 식으로 만들어가야 할까.
김덕호= "우리도 유럽의 '워커(worker)' 개념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근로자가 아니면 권리 보장이 너무 어렵다. 예를 들어 임금체불로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를 신청한다고 하자. 여기서 근로자로 인정받으면 체불임금을 받을 수 있는데, 그게 아니면 구제도 안 되고 소송까지 가야 한다. 중간지대, 즉 근로자가 아니더라도 일하는 사람으로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현재 경사노위 산하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연구회 사회적 약자 분과에서 이를 연구하고 있다. 노사가 모두 참여해 논의하기를 바란다."
메나쉬= "노동시장이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것도 염두에 둬야 한다. 일자리가 생겨나는 만큼 빠르게 사라지고, 데이터 사용 방식이 노동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다. 국가 간 불평등에 노동자 간 불평등도 해결해야 한다. 기후위기도 노동시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인지하고 적응해 나갈 필요가 있다."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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