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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세계와 손잡는 K팝

"청양고추 왔어요" 용달차로 호객한 K팝 아이돌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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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티즈, 신곡 세계관 '청양고추팔이'로 팬들과 공유
신비주의는 옛말... '팬더스트리' 시대
서울 명소 보랏빛으로, 관광업계 특수... BTS 10주년에 쏠린 눈
한국일보

지난 3일 서울 마포구 홍대 주변을 돌고 있던 청양고추 트럭. 확성기에선 몸에 좋고 맛도 좋은 청양고추란 호객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이돌그룹 에이티즈 멤버들의 육성이다. 차는 누가 운전할까. 정차한 틈을 타 운전석 쪽으로 다가가자 기사는 차를 쏜살같이 다른 곳으로 몰았다. 양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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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고추가 왔습니다." 지난 3일 오전 11시 50분쯤 서울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9번 출구 인근에 세워진 작은 용달차는 확성기로 이런 소리를 토해냈다. 주택가도 아니고 도심 유흥가 한복판에서 난데없이 청양고추팔이라니. 일부 행인들은 신기한 듯 잠시 멈춰 트럭을 둘러봤다. '청양고추 신속 배달'이란 현수막이 걸린 차엔 땡땡한 고추들이 빨간색 바구니들에 담겨 있었다. 수북이 쌓인 청양고추 박스 위엔 밀짚모자가 한가롭게 얹어져 있다. 이제 막 밭에서 딴 고추를 차에 가득 실어 팔러 나온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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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에이티즈.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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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관계망서비스(SNS)엔 10·20대를 중심으로 이 '청양고추 용달차' 목격담이 속속 올라왔다. 옛 주부들이 집 근처에서 "싱싱한 계란이 왔어요"란 정겨운 소리가 울려 퍼지면 집안일을 하다 말고 계란 사러 몰려나왔다면, 요즘 젊은이들은 이 '청양고추 용달차'를 찾기 위해 정보를 교환한다. 이 트럭의 고추 상자엔 'ATEEZ'란 영문이 적혀 있었다. 청양고추팔이 행상은 바로 아이돌그룹 에이티즈. 2018년 데뷔해 지난해에만 150만 장의 앨범을 팔아치운 K팝 신흥 강자다.

에이티즈의 청양고추 호객은 16일 발매될 새 앨범 관련 이벤트다. KQ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6일 "타이틀곡이 '바운시-K 핫 칠리 페퍼스'"라며 "곡명 등에 청양고추가 중요한 소재로 쓰여 청양고추 세계관을 공유하기 위해 고추팔이 용달차 운행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깜짝 이벤트를 위해 에이티즈 여덟 멤버는 "청양고추 화끈한 청양고추" "몸에 좋고 맛도 좋은 청양고추가 왔어요" 등의 호객 문구를 따로 녹음했다. 이 녹음 파일은 도심 곳곳을 누비는 여덟 대의 용달차 확성기를 통해 서울 곳곳에 퍼졌고 팬들은 이를 재확산시켰다. K팝 아이돌이 팬들과 끈끈한 유대 관계를 쌓아 세계관을 공유하고 넓혀가는 방식이다. K팝 팬덤에서 이 청양고추 용달차가 화제를 모은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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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월드타워가 방탄소년단을 상징하는 보라색으로 물들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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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 데뷔 10년 기념 해시태그 캠페인 이미지. 틱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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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아이돌과 팬덤은 가수의 신비주의 전략 중심으로 만났지만 이젠 180도 달라졌다. 요즘 추세는 쌍방향으로 친밀함을 쌓는 방식. 방탄소년단이 서울 이태원동의 공중전화박스 등에 격자무늬 QR코드를 붙여 놓고 팬들이 그 QR코드로 인터넷에 접속해 그룹과 팬덤의 역사를 기록하는 '아미피디아'(2019)가 대표적 사례. 김상화 음악평론가는 "아이돌과 팬덤의 상호작용은 K팝 산업으로 깊숙이 들어왔다"며 "5,000만 명이 넘게 가입한 하이브의 팬덤 플랫폼 위버스 등 팬덤을 기반으로 한 팬더스트리(팬+인더스트리)는 이제 K팝 산업의 화두"라고 말했다.

이런 맥락에서 12일부터 25일까지 한강 세빛섬과 남산 서울타워,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월드컵대교 등 서울의 명소는 보라색(방탄소년단 팬덤 상징색)으로 물든다. 13일 방탄소년단 데뷔 10년 기념일을 맞아 하이브와 서울시가 손잡고 K팝 팬덤을 상대로 약 2주 동안 진행하는 축제 일환이다. 관광업계는 팬더스트리의 후광을 톡톡히 보고 있다. 방탄소년단의 외국인 팬들이 서울로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 기간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 객실 예약률은 80%를 웃돌았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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