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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7 (토)

“동성부부 인정 첫발…한국도 변하고 있구나 느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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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성욱·김용민씨 ‘건보 피부양 자격 승소’ 그 후 100일

“대법 판결 남았지만 소중한 승리…법으로 보호받는 날 올 거라 믿어
성소수자로서의 일상 더 많이 드러내면 사회의 거부감도 줄어들 것”

경향신문

지난 2월 동성커플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해달라며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낸 행정소송에서 승소한 김용민씨(오른쪽)와 소성욱씨가 항소심 판결 100일을 앞둔 지난달 26일 서울 자택에서 인터뷰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zens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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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성욱씨(32)와 김용민씨(33)는 지난달 25일 네 번째 결혼기념일을 맞았다. 기념일 자정에는 함께 와인잔을 기울였고 방 한편은 두 사람의 사진으로 채웠다. 둘의 보금자리에는 “예쁘게 살아! 항상 행복하길” 같은 응원 문구가 가득 적힌 무지개색 깃발이 걸렸다. 두 사람이 2019년 5월 결혼식 방명록으로 썼던 깃발이다.

5년차 부부지만 동성이라는 이유로 이들은 부부로서 법적 지위를 인정받지 못한다. 신혼부부 전세자금 대출은커녕 서로가 아플 때 병원에서 보호자로 이름을 올리기도 어렵다. 국가는 부부로서 살아가는 이들을 온전하게 인정한 적이 없다.

지난달 31일, 부부가 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승소한 지 100일이 됐다. 동성커플에게도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해야 한다는 최초의 판결이었다.

김씨는 2020년 건보공단 홈페이지에 동성부부라 법적 결혼은 못했지만 사실혼 관계로 피부양자 등록이 가능한지 물었다. “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자격확인서에도 소씨 이름 옆에 ‘배우자’라고 적혀 있었다. 정부기관에서 둘의 관계를 인정받은 첫 경험이었다.

두 사람의 기쁨은 8개월 만에 사라졌다. 이들의 사연이 보도된 지 2시간 만에 건보공단은 소씨의 피부양자 자격을 취소했다. “한순간에 관계가 부정당한 기분이었고, 권리를 빼앗긴 것 같았어요.” 김씨와 소씨가 소송을 결심한 이유였다.

3개월 전 2심 재판부는 “건보공단의 처분이 건강보험법상 평등의 원칙을 위반했다”며 1심 결과를 뒤집었다. 재판부는 이성 관계의 사실혼 배우자와 동성 관계인 동성결합 상대방을 달리 취급하는 것은 차별대우라고 판단했다.

항소심 승소가 곧 동성혼을 인정한 것은 아니다. 두 사람의 생활도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건보공단이 상고를 제기해 대법원 판결도 남아 있다. 그럼에도 지난 3개월은 두 사람에게 특별했다. “ ‘한국도 바뀔 수 있구나, 변하고 있구나’를 느낀 100일이었어요.” 법원이라는 공적 기관에서 둘의 존재와 관계를 인정한 첫 결과였다.

이들의 승소는 이들 두 사람만의 일이 아니다. 소씨는 “승소했을 때 성소수자 커뮤니티의 동료가 ‘법원이 성소수자인 나를 확인해준 날’이라고 말하더라”고 했다. 두 사람은 승소 이후 축하 인사만큼 ‘고맙다’는 인사를 들었다. “평등을 바라는 모든 이가 같이 기뻐할 수 있는 걸음을 내디딘 것 같아요.” 둘만의 것이 아니었기에 기쁨은 더 크고 오래갔다.

소중한 승리였지만, 큰 변화로 이어지진 않았다. 동료 성소수자들이 낙담하는 건 아닐까 우려도 들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세상의 변화를 확신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한국갤럽 조사에서 동성결혼 법제화 찬성 여론은 40%에 달했다. 직전 조사인 2021년과 비교하면 2%포인트 늘어난 것으로, 2017년부터 찬성 의견은 꾸준히 늘고 있다.

더 많은 변화를 도모하고자 이들은 자신들의 삶을 드러내려 한다. 소씨는 “버스에서든 장 보러 간 마트에서든 성소수자가 나와 같이 일상을 보내고 있을 수 있다는 상상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인권단체 활동가로 일하며 매번 언론 인터뷰에 응하는 이유도 ‘평범하게 살아가는 부부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김씨는 “주변에 성소수자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모를 뿐”이라며 “성소수자들이 가정을 이루고 일상을 살아간다는 것을 더 많이 드러내려 한다”고 말했다.

성소수자를 억압하는 분위기는 여전하다. 최근 서울광장에서 예정된 퀴어퍼레이드가 불허된 것이 대표적인 예다. 고등학생 때부터 매년 퍼레이드에 참여했던 소씨는 “(퍼레이드는)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자유로운 날”이라며 “성소수자 커뮤니티는 서울시의 태도를 억압이라고 느낄 것”이라고 했다.

두 사람은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가 다수가 아니며 오히려 과대 대표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인 발언이나 인터넷 댓글로 두드러질 뿐, 일상에서 만나는 혐오는 크지 않다는 것이다. 김씨는 “사람들이 막연히 낯선 존재에 느끼는 거부감은 성소수자의 삶을 더 많이 보여줌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지난달 31일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혼인 평등을 위한 민법·모자보건법 개정안과 생활동반자법 제정안 등 가족구성권 3법을 대표발의했다. 소씨·김씨 부부처럼 동성결혼을 했거나, 비혼·동거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으로 묶인 이들을 법 테두리 안에서 보호할 수 있게 하는 법안이다. 두 사람은 법안 발의 기자회견에서 “사법부에서 먼저 평등으로 가는 길을 열었다”며 “이제 정치가 변해야 하는 시간”이라고 했다.

평등을 향해 나아간 지난 100일처럼, 두 사람은 자신과 동료들이 ‘법으로 보호받는’ 그날도 곧 올 것이라 믿고 있다.

김송이 기자 songy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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