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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기고]모럴 해저드와 싸우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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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유재훈 예금보험공사 사장


1666년 9월 2일 새벽, 런던의 한 빵 공장에서 시작된 불은 도시 전체를 집어삼켰다. '런던 대화재'의 시작이었다. 화재는 무려 5일간 지속됐고, 1만 채가 넘는 집이 불에 타고 런던의 4분의 3이 붕괴됐다.

대화재 후 '화재사무소'가 처음 등장했고, 화재피해액 전부를 보상하는 화재보험이 선풍적으로 판매됐다. 그러나 화재사무소들은 뜻밖의 상황에 직면한다. 보험가입자들이 화재 예방을 게을리하고 집이 낡으면 스스로 불을 지르는 사례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보험계약에서 흔히 보이는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는 보험이라는 제도와 그 시작부터 불가분의 관계였다.

모럴 해저드 해결의 열쇠는 정교한 유인체계 마련이다. 당시 영국의 화재사무소들도 보험가입자에게 윤리적 행동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대신 보험 가입 요건을 강화하거나 보험 사고 시 보상액을 일정 수준으로 제한하는 등 모럴 해저드를 방지할 유인 제도를 마련해 문제를 해결했다.

금융사의 부실에 대비해 보험료를 받고 이를 토대로 예금자를 보호하는 '예금보험제도' 또한 보험의 원리에 기반하기에 모럴 해저드와 분리될 수 없다. 대표적인 사례로 금융사의 위험선호 현상이 있다. 이에 예금보험공사는 금융사의 모럴 해저드 방지를 위해 사전적으로는 금융사의 경영위험 정도에 따라 예금보험료를 차등적으로 부과함으로써 자발적 건전 경영을 유도하는 '차등보험료율제도'를 운영한다. 또 사후적으로는 금융사의 부실을 유발한 경영자는 물론, 대출금을 갚지 않아 부실의 원인을 제공한 부실채무자까지 책임을 묻는 '금융부실관련자' 책임추궁도 하고 있다.

예금자 측면에서도 모럴 해저드를 방지해야 한다. 예금 보호한도가 마냥 높으면 거래할 금융사 선택 시에 경영위험은 고려하지 않고 높은 금리를 주는 금융사를 고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해결책이 '부분보호제도'다. 예금자가 금융사 선택에 신중을 기하고 책임을 일부 부담하도록 예금보험공사가 보호하는 금액을 5000만원으로 제한하는 것이다. 부분보호제도의 핵심은 적정 수준의 보호한도를 정하는 일이다. 보호한도를 지나치게 높게 설정하면 예금자의 모럴 해저드를 유발하며, 너무 낮게 설정하면 예금자를 충분히 보호하지 못한다.

모럴 해저드를 방지하는 일과 예금자를 보호하는 목적은 공존해야 한다.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예금보험제도의 변화가 시장과 예금자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면 보호한도를 정하는 일은 더욱 신중해야 한다.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은행의 파산 시에는 금융시스템 안정을 이유로 계약이전을 통해 예금 전액을 보호했다. 이는 예금 부분보호제도의 중대한 예외인 만큼 예금보험공사를 포함한 금융안정기구들의 신속하고 정확한 상황판단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줬다.

예금보험공사는 정부와 함께 올해 하반기에 예금보호한도 조정 검토안을 국회에 보고한다. "중력이산(衆力移山)"이란 말이 있듯, 많은 사람이 힘을 합하면 산도 옮길 수 있다. 금융소비자와 금융사, 금융당국이 함께 '모럴 해저드 방지'와 '예금자 보호'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묘안을 찾아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유재훈 예금보험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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