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가정폭력엔 피해자 보호조치…연인간 범죄 사각지대
'연인에 살해' 6.4일에 1명…'데이트폭력 처벌법' 입법돼야
구속심사 향하는 '시흥동 연인 보복살해범' |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김정진 기자 = 데이트 폭력으로 경찰 조사를 받은 남성이 풀려난 뒤 곧바로 자신을 신고한 연인을 찾아가 보복살인한 사건이 또다시 발생했다.
데이트 폭력을 당한 피해자가 보복당하지 않도록 보호하는 수사기관의 안일한 인식과 부실한 제도가 다시 도마위에 올랐다.
지난해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을 계기로 범죄 피해자 보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부쩍 높아지면서 경찰은 스토킹이나 가정폭력 등 관계성 범죄가 발생하면 가해자와 피해자 분리 조치에 특히 신경 쓰고 있다.
대검찰청은 3월8일 세계여성의날을 맞아 '데이트 폭력'을 '교제 폭력'이라고 부르기로 하고 연인에 대한 반복적인 중상해, 폭력전과자의 흉기 범행, 피해신고 보복 등이 결합한 경우 구속수사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지난 26일 서울 금천구 시흥동에서 발생한 연인 보복살인 사건으로 이런 다짐이 무색해졌다.
경찰은 피해자 A(47·여)씨의 폭행 신고로 살인범 김모(33)씨를 23분간 조사하고도 A씨에 대해 적절한 보호조치를 하지 않았고, 김씨의 신고 보복 살인으로 이어졌다.
경찰이 '폭행이 경미했고, 김씨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피해자의 진술을 근거로 단순 연인 간 다툼으로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경찰의 안이했던 조치도 비판받아야 하지만 연인 간 범죄행위에선 현행법상 적절한 피해자 보호 장치가 없다는 점도 문제라는 목소리가 높다.
현행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처벌법)과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가정폭력처벌법)에는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보복 당할 우려가 있는 경우를 대비한 각종 보호조치가 규정돼 있다.
특히 스토킹처벌법은 피해자 보호를 위해 경찰이 스토킹 가해자를 법원의 영장을 받아 구속하거나, 법원의 잠정조치를 통해 유치장에 가둘 수 있도록 한다. 가해자를 피해자로부터 완벽하게 격리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 있는 셈이다.
가정폭력처벌법에도 가해자를 가정 구성원의 주거에서 퇴거시키거나 피해자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치를 마련돼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이들 법률이 적용되지 못하는 사각지대에서 발생했다고도 할 수 있다.
매년 느는 데이트폭력…"피해자 긴급보호 우선" (CG) |
스토킹 범죄가 성립되려면 가해자가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피해자에게 접근해 공포심을 유발하거나 피해자 주거에 침입해 물건을 훼손해야 한다.
이번 사건에서 김씨는 지난 21일 A씨가 헤어지자고 하자 A씨 집 근처 PC방 등을 전전하다 26일 새벽 A씨를 찾아가 말다툼을 벌였다. A씨는 김씨가 TV를 부수고 팔을 잡아당겼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이를 스토킹 범죄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김씨가 21일 이별 통보를 받은 뒤 25일까지 A씨에게 별다른 위협을 가하지 않았고, 김씨가 TV를 부쉈다는 신고도 사실이 아니었다는 이유에서다.
또 김씨가 A씨의 집에 자주 들락거리며 사실상 동거 상태였지만 경찰은 둘의 관계를 사실혼이 아닌 단순 연인 사이로만 판단해 가정폭력처벌법도 적용하지 않았다.
가정폭력처벌법이 적용되려면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법률혼 또는 사실혼 관계가 인정돼야 하는데 교제한 지 1년에 불과하고 김씨가 A씨의 집에서 상시 거주하지는 않았다는 점 등이 고려된 판단이었다. A씨가 경찰 조사 과정에서 '결혼할 의사가 없는 연인 사이'라고 진술한 점도 참작됐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연인 사이에 발생한 폭력행위 등 범죄에 대해서도 스토킹이나 가정폭력처럼 피해자 보호조치가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은 28일 "2021년 범죄 통계에 따르면 6.4일당 1명씩 연인에 의한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면서 "교제관계에서 벌어진 폭력행위 등에도 가정폭력처벌법이 적용될 수 있도록 하거나 국회서 논의 중인 데이트폭력 처벌법이 시급히 입법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데이트 폭력은 연인간 다툼으로 치부하기엔 심각한 수준이다.
대검이 발표한 '2021년도 범죄분석 자료'에 따르면 이 해에 발생한 살인사건 772건 중 58건(7.5%)이 교제 중인 연인이 범인이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20년 1만9천940건이었던 데이트 폭력 신고는 1년 만인 2021년에 5만7천297건으로 약 3배로 늘었다.
경찰 통계에 따르면 교제폭력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교제폭력으로 검거된 사람은 2016년 8천367명에서 2021년 1만554명, 지난해에는 1만2천841명으로 늘었다.
hyun@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연합뉴스 앱 지금 바로 다운받기~
▶네이버 연합뉴스 채널 구독하기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