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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께름직함’에서 시작된 김지운·송강호의 인연···‘거미집’ 칸에서도 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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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영화 <거미집>에서 ‘김 감독’을 연기한 배우 송강호가 26일(현지시간) 제76회 칸 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프랑스 칸의 바닷가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바른손이엔에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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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께름직하다’. 감독은 연극 무대 위 배우를 보고 생각했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 집에 돌아가서도 좀처럼 그의 연기를 떨쳐낼 수 없었다. 감독은 궁금했다. 전형성에서 벗어난,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연기를 하는 저 배우는 어떤 사람일까.

제76회 칸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 초청작 <거미집>의 김지운 감독과 배우 송강호 두 사람의 인연은 ‘께름직함’에서 시작됐다. 송강호의 께름직함과 그의 연기를 담아낸 김지운 감독의 영화는 전 세계의 영화 팬들이 깊이 사랑하는 것이 됐다.

<조용한 가족>(1998)부터 <반칙왕>(2000),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밀정>(2016), <거미집>까지 다섯 작품을 함께하고 두 번째로 칸의 레드카펫을 함께 밟은 두 사람을 26일(현지시간) 프랑스 칸 현지에서 만났다.

<거미집>은 1970년대 초 유신시대의 영화업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블랙코미디다. 김 감독(송강호)은 이미 다 찍은 영화 <거미집>의 결말을 바꾸면 틀림없이 걸작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영화는 바뀐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배우와 제작자, 결말이 ‘반체제적’이라며 검열의 칼을 들이미는 정부 등 악조건 속에서 감독이 재촬영을 고집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김지운 감독은 팬데믹 기간 이 이야기를 떠올렸다. 영화에 대한 검열·통제가 강화된 1970년대 초와 팬데믹으로 영화 현장이 멈춘 2020년대는 닮은 데가 많았다. “1960년대 연간 100편씩 만들어지던 영화는 1970년대 들어 반토막 납니다. 유신 정권이 들어서면서 창작자들의 의욕을 꺾은 것이죠. 팬데믹 기간에도 비슷했습니다. 영화계가 위축되면서 모험이 어려워졌습니다. 자본에 의한 또 다른 형태의 검열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멈추자 본질을 고민했다. 김 감독은 “영화는 나에게 무엇이고 나는 왜 영화에 매혹당했을까 생각했다”며 “1970년대를 배경으로 영화 현장을 이야기하는 것이 의미있는 작업이 될 것 같았다”고 말했다.

<거미집> 속 ‘김 감독’은 김기영, 이만희 등 그 시절 활약한 실제 감독들의 특징을 이리저리 섞어 만들어낸 캐릭터다. 탐미적인 영상을 추구하고 무언가에 꽂히면 어떻게든 만들어내고 만다. 하지만 김 감독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은 제작자의 조카인 미도(전여빈)뿐이다. 바쁜 스케줄, 비밀 애정관계 등 각자의 이유로 재촬영은 어렵기만 하다.

“아무리 연기라지만 외로웠습니다(웃음).”

김 감독 역할을 맡은 송강호는 배우 인생 처음으로 영화감독을 연기한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그는 “배우들은 극중에서도 자신들끼리 감독에 대한 원망이나 불만을 털어놓을 수 있지만 감독은 그럴 수 없잖으냐”며 “끊임없는 자기 검열을 해야 하는 굉장히 외로운 직업”이라고 말했다. <거미집>이 ‘지독한 우화’라는 점은 송강호의 마음을 끌었다. “김 감독을 포함해 영화 속 각 캐릭터들의 욕망이 뒤엉키고, 뒤엉킨 욕망으로 인해 결국 결말로 나아가는 과정이 흥미로웠습니다.”

김지운 감독은 송강호가 ‘김 감독’이라는 배역을 넘어 현장에서 감독이나 제작자와 같은 존재감을 보여줬다고 했다. “송강호씨는 자기 것(연기)만이 아니라 전체를 다 봐요. 감독의 시선으로요. 예를 들어 ‘입구에 있는 저것 좀 정리해야겠다’는 식으로 말하는데 그거야말로 제작자나 감독의 마인드거든요.”

그런 배우에게 감독이 의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김지운 감독은 “좋은 배우가 관록과 연륜이 생기면 또 한 명의 제작자, 감독이 있는 듯한 믿음을 준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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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회 칸 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초청작 <거미집>으로 프랑스 칸을 찾은 김지운 감독이 26일(현지시간) 프랑스 칸의 바닷가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바른손이엔에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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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브로커>로 송강호가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을 때는 <거미집> 촬영이 한창인 시기였다. 김지운 감독에게는 이 수상이 ‘한참 늦은 것’이라고 여겨졌다. “우리에게 송강호는 늘 최고의 배우였기 때문에 ‘이제서야?’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고요.”

김지운·송강호가 협업의 결과물로 칸을 찾은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2008년 ‘김치 웨스턴’이라 불리며 호평을 받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비경쟁 부문에 초청된 것이 첫 번째였다.

영광스러운 기억임은 분명하지만, 당시를 떠올리면 별 추억이 없다. 머문 기간이 짧았고, 레드카펫을 걷는 것도 마냥 즐기지는 못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이번 방문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고 입을 모았다. “올해는 기간이 상대적으로 길고 함께 온 배우도 많고요. 바쁜 일정이지만 많은 추억을 담고 있습니다.”(송강호)

“함께 온 배우들이 참 근사하더라고요. 마치 칸에 몇 번 온 사람들처럼 능숙하고 노련하고 우아하고요. 이런 배우들과 작업을 했다는 생각에 새삼 기분이 좋았습니다.”(김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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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거미집> 관계자들이 25일(현지시간) 프랑스 칸에서 열린 제76회 칸국제영화제 프리미어에 참석해 레드카펫에서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배우 송강호·장영남·박정수·임수정, 감독 김지운, 배우 정수정·전여빈·오정세. AP연합뉴스


전날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열린 <거미집>의 공식 상영회에는 전 세계의 영화 팬, 관계자 등 2300명이 몰렸다. 레드카펫에 감독과 배우들이 등장하자 팬들은 열광했다. 특히 지난해 <브로커>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송강호에 대한 환호가 컸다. 2시간가량 울고 웃으며 영화에 푹 빠졌던 관객들은 영화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자 약 12분간 쉬지 않고 기립박수를 보냈다. 김 감독은 “칸에서 영화에 대한 더 많은 사랑을 가지고 돌아간다”며 감격과 감사를 표했다.

김 감독은 “내 영화지만, 큰 역할부터 단역까지 배우들이 다 보이는 것이 스스로 마음에 들었다”며 “내가 잘한 것이 있다면 배우들을 잘 캐스팅하고, 이들의 앙상블 자체가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에 대한 사랑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한국 영화계다. 팬데믹을 지나며 극장을 찾는 관객이 급감하고 기대작들이 잇따라 흥행에 실패하며 위기의식이 커지고 있다. 김 감독은 “관객들이 다시 영화를 사랑하게 만드는 방법은 더 좋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라며 “<거미집>이 많은 분들이 한국 영화를 좋아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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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거미집> 포스터. 바른손이엔에이 제공


칸 |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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