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헌 논란에도 '불법전력 단체 집회 제한'…대통령 한마디에 강제 해산, 훼손되는 집회의 자유
지난해 경찰청 연구용역 보고서엔 "강력 진압·통제가 오히려 무력 충돌 유발…대화·협의 적극 요구"
금속노조와 비정규직 노동단체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이하 공동투쟁)이 지난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열려던 야간 문화제를 경찰이 원천봉쇄하는 모습.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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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 시위에 강경 대응하겠다는 정부·여당과 경찰의 기조가 뚜렷해지면서 헌법상 기본권인 집회의 자유를 위축시킨다는 비판이 나온다.
경찰은 지난 25일 오후 2시쯤부터 대법원 앞에서 열릴 예정이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문화제와 노숙 농성을 '불법 집회로 변질될 소지가 있다'며 원천 봉쇄하고, 이를 막으려던 참가자 3명을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체포했다.
이어 이날 밤 9시쯤부터는 경찰력을 투입해 강제해산 시켰다. 경찰은 이전까지 야간에 벌어지는 집회라도 폭력성을 띠지 않으면 강제해산을 시도하지 않았다.
문화제와 노숙 농성은 형식상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상 신고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경찰도 그간 대법원 앞 노동자들의 노숙 농성을 막지 않았다.
그러나 경찰은 이날 '대법원 앞은 집회·시위 금지 장소이고, 불법 집회로 변질될 소지가 있어서 예방 차원으로 폴리스라인을 쳤다"고 설명했다. 발생하지도 않은 일을 발생할 것이라고 예단해 합법적인 행사마저 사전에 봉쇄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3일 "과거 정부가 불법집회에 경찰권 발동을 사실상 포기했다"며 집회 엄정대응을 주문한 지 이틀 만에 경찰이 실행에 옮긴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는 모습.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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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지난 23일에는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특별법 수정을 촉구하며 시민들에게서 받은 서명지를 전달하기 위해 국회 진입을 시도했는데, 경찰은 이를 신고되지 않은 불법집회라고 판단하고 강제해산을 시도하기도 했다.
법원의 판례와 국제사회의 기준이 있는데도 정부와 경찰이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헌법상 기본권인 집회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려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헌법재판소는 집회의 자유를 "대의제 자유민주국가의 필수적 구성요소"로 정의한다. 또 신고만 하면 누구나 집회를 열 수 있게 함으로써 '행정권의 일방적·사전적 판단(허가)'을 차단해 왔다.
현행법상 '불법 전력 단체'라는 이유로 집회·시위를 제한할 수는 없다. 집시법 제5조는 '집단적인 폭행·협박·손괴·방화 등으로 공공의 안녕 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끼칠 것이 명백한 집회·시위'를 금지한다고 규정하지만, 이 규정도 행정부가 자의적으로 확대해석해선 안 된다는 게 중론이다. '불법 집회 전력을 이유로 집회를 금지해선 안 된다'는 건 법원의 일관된 판단이다. 국가인권위원회도 2009년 경찰이 불법 시위 전력을 이유로 집회를 금지하자 주의 조처를 내리라고 권고한 바 있다.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한상희 교수는 "법치주의의 기본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법으로써 보호해야 하는데 지금 대통령 이하 경찰까지 헌법이나 집시법 등을 중심으로 한 법체계에 대한 생각이 없는 것 같다"고 우려를 표했다.
한 교수는 "현행 법체계에서 야간 집회를 금지할 법적인 근거가 없고 야간에 집회했다는 이유로 특정 단체를 불법 집회를 주동하는 단체로 규정할 근거도 없다"며 "미신고 집회라고 하더라도 단순히 신고를 안 했다는 이유로 강제해산시킬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집회 신고 여부는 행정 관리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지 집회가 가능하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기준이 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금속노조와 비정규직 노동단체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이하 공동투쟁)이 지난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열려던 야간 문화제를 경찰이 원천봉쇄하는 모습.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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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지난 25일 서울경찰청 기동본부에서는 8개 부대가 참여해 불법 집회 대응 목적으로 불법 행위자 검거·체포 훈련이 진행됐다. 훈련은 시위자들이 해산 명령에 불응하는 상황을 가정한 단계적 강제해산과 검거에 집중됐다. 서울경찰청은 다음 달 14일까지 3주간 집중 훈련을 한다는 계획이다.
또 경찰청은 불법시위에서 적극적인 법 집행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에 대해 경찰관 본인 신청이 없더라도 감사부서 직권으로 '적극행정 면책심사위원회'를 열기로 했다고 지난 26일 밝혔다. 적극행정 면책제도는 업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부분적인 절차상 하자 등의 부작용이 발생했더라도 공익성, 적극성, 고의·중과실이 없는 요건에 해당하면 면책해 주는 제도다.
이와 관련해 한 교수는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있을 때만 집회를 금지할 수 있다"며 "현재 집회는 기껏 해봐야 도로 교통 불편을 야기하는 정도다. 교통 정리를 통해 해결할 문제이지 집회를 해산시킴으로써 처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한편 지난해 10월 경찰청이 의뢰한 연구용역 보고서 '집회·시위 등 공공갈등 현장에서의 군중심리 및 변화 기제'에는 정치적 결정에 따른 강력한 진압·통제가 오히려 무력 충돌을 유발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보고서는 "정치적 상황에서 경찰은 의회나 중앙정부의 요구대로 물리력으로 집회·시위를 강력하게 진압·통제하는 경우가 발생하는데, 이때 경찰은 집회·시위 참여자들과 무력 충돌 상황에 빠지게 된다"며 "경찰은 정당성 상실, 부상, 자산 피해 등 배수로(Ditch)에 빠지게 된다"고 분석했다.
또 보고서는 "집회·시위 유형과 관계없이 대규모 집회·시위가 개최될 때는 주최자와 대화경찰의 사전 대화·협의·조정 노력이 적극적으로 요구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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