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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종교계 이모저모

법복 입고 ‘백범 명상길’ 산책…사찰서 위로 받는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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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33개 사찰에서 시작한 템플스테이가 지난해 스무 돌을 맞았다. 현재는 전국 143개 사찰에서 운영하고, 누적 체험자 수는 약 644만 명을 헤아린다(외국인 체험자는 약 66만 명). 코로나가 닥친 2020~2022년에도 100만 명 가까운 인원이 다녀갔다. 한국불교문화사업단에 따르면 20~30대 젊은 층이 전체 참가자의 45.6%에 달한다. 특히 20대 여성의 비중이 높다. 화를 줄이고, 우울을 다스리고, 잘 쉬는 일이 현대인에게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27일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충남 공주 마곡사에서 템플스테이에 나섰다.

유네스코 유산 오른 국내 7대 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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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세의 옷을 벗고 사찰에 하룻밤 머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풀린다. 템플스테이의 꾸준한 인기 비결이다. 마곡사 묘주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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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고찰 마곡사의 명성은 전 세계에도 뻗어 있다. 마곡사는 2018년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라는 타이틀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오른 국내 7개 사찰 중 하나다. 마곡사와 함께 통도사·부석사·봉정사·법주사·선암사·대흥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유네스코도 인정한 불교 유산이니, 마곡사에 머물고 밥 먹고 잠드는 일 하나하나가 특별하지 않을 수 없다.

템플스테이는 사찰에 따라 프로그램이나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휴대폰까지 반납하고, 묵언으로 수행하는 사찰이 있는가 하면, 마곡사처럼 가벼운 불교 문화 체험이나 휴식에 초점이 둔 사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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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과 함께 범종을 울리는 타종 체험도 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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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1박2일 템플스테이를 위해 마곡사에 들었다. 오후 3시 법복을 갈아입고, ‘인욕(忍辱, 욕된 것을 참는다는 뜻의 불교 용어)’이란 문패가 붙은 단칸방에 짐을 푸는 것으로 사찰의 일상이 시작됐다. 마침 배재대학교에서 온 외국인 학생 16명도 함께였다. 모두 템플스테이가 첫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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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세의 옷을 벗고 사찰에 하룻밤 머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풀린다. 템플스테이의 꾸준한 인기 비결이다. 외국인 체험자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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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내려놓는 것이 수행의 시작이니 맘 편히 쉬었다 가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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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곡사의 공양 차림. 뷔페식으로 입맛에 맞게 골라 담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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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곡사 묘주 스님이 사찰 초보들의 긴장을 풀어줬다. 스님과 경내를 찬찬히 둘러보고, 공양 시간을 맞았다. 채식 식단이 입에 맞는지 우간다에서 온 오겐르와트도, 인도에서 온 탄질라도 그릇을 싹싹 비웠다. 저녁 타종 소리가 울려 퍼지고, 어둠이 내려앉자 완전한 고요가 사찰에 찾아왔다. 간만에 아무 생각 없이 벌러덩 누워 단잠에 빠졌다.

스물셋 백범 김구가 출가한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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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숲이 아름다운 ‘백범 명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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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안개가 산 밑에 있는 마곡사를 감싸 돌고, 절은 그 짙은 안개 속에 잠겨 있었다.… 저녁 종소리가 둘러싼 안개를 헤치고 나와 나의 귀에 와서, 일체 번뇌를 해탈하고 어서 입문하라고 권고하는 것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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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만든 연등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외국인 체험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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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1876~1949) 선생의 『백범일지』에서 인용했다. 마곡사는 김구 선생과도 인연이 깊다. 살인범으로 낙인 찍혀 세상을 은둔하던 청년 김구가 1898년 스물셋 나이에 ‘원종(圓宗)’이라는 법명을 받고 출가했던 절이 바로 마곡사다. 사찰 한편에 ‘백범당’이 세워진 배경이다. 백범당 옆에 늠름한 자태로 서 있는 나무가 백범이 암살되기 3년 전 직접 심은 향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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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선생 삭발 터. 백범이 마곡사에 출가하며 머리를 깎은 장소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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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아침 다 같이 신발 끈을 동여매고 절을 빠져나왔다. 개울을 건너고, 솔숲이 울창한 산길을 40여 분 오르내렸다. 이른바 ‘백범 명상길(3㎞)’이라 불리는 고즈넉한 숲길이었다. 김구 선생 삭발 터에 도착해, 다들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힌 얼굴로 기념사진을 담았다.

퇴소 전 스님과 차(茶)를 두고 빙 둘러앉았다. “도시에는 없는 평온함, 아름다운 자연이 있어 좋았다” “무거운 분위기일 줄 알았는데, 스님과 대화를 하고 차를 나눈 시간이 즐거웠다” 같은 소회가 줄줄이 이어졌다. 국적은 달라도 절집에서 느끼는 위안과 감동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공주=글·사진 백종현 기자 baek.jo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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