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의를 위해 일본 히로시마에 모인 주요 7개국(G7) 정상들이 지난 20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UPI연합뉴스 |
일본 히로시마에 모인 주요 7개국(G7) 정상들이 전례없는 대중 견제 메시지를 쏟아내면서 공동 전선을 구축하자, 중국이 반격에 나섰다. G7 정상회의 주최국인 일본 대사를 초치해 직접 항의하고, 미 최대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마이크론에 대한 제재 조치를 발표한 것이다. 마이크론 제재는 중국이 자국의 거대한 시장을 무기 삼아 본격적인 반격에 나선 것으로 미·중 반도체 전쟁의 변곡점이 될 전망이다.
중국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 산하 인터넷안보심사판공실(CAC)은 지난 21일 “마이크론이 중국에서 판매하는 제품에 대한 사이버 보안 심사를 진행한 결과 심각한 네트워크 보안 문제가 존재해 중국의 국가 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관련 법률에 따라 중국 내 중요 정보 인프라 시설 운영자는 마이크론 제품 구매를 중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중국 당국은 국가 안보를 이유로 들었지만 이는 사실상 미국의 대중 반도체 규제에 대한 보복성 조치로 해석된다. 휴일임에도 심사 결과를 G7 정상회의 폐막 당일 발표한 것 역시 의도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외국 반도체 회사에 대해 사이버 안보 심사를 진행하고 제재를 가한 것은 처음이다.
이번 중국의 조치는 반도체를 둘러싼 미·중 간 패권 다툼이 새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지난 한 해에만 반도체·과학법(CHIPs Act) 제정, 대중 반도체 장비 수출통제, 중국 메모리반도체 업체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의 수출통제 ‘블랙리스트’ 지정 등 중국의 첨단반도체 기술 확보를 막기 위한 행보를 가속화했다. 또 대중 수출통제 조치에 네덜란드, 일본의 동참을 이끌어내고, 동맹·파트너 국가들과 반도체 등 첨단기술 중국 투자 제한을 조율하는 등 중국 견제를 위한 공조 기반도 다졌다.
그동안 말로만 미국에 ‘보복’을 공언했던 중국은 지난 3월31일 마이크론에 첫 안보심사를 개시했고, 50여일 만에 중요 정보 시설 운영자들에 대한 마이크론 제품 구매 중지 명령이라는 실제 조치를 내놓기에 이르렀다. 미국에 맞서 중국이 첫 행동에 나선 것으로, 블룸버그는 이번 조치에 대해 ‘기습’이라고 평가했다. 미국과 중국이 각각 자국 대표 메모리 반도체 기업을 겨냥하면서 미·중 긴장의 파고가 전방위로 확대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트렌치코트 자문사 창업자이자 미연방수사국(FBI) 요원으로 중국에 근무하기도 했던 홀든 트리프릿은 “어떠한 기업이든 본보기를 위한 다음 순서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한국 기업들도 난처한 입장에 놓였다. 앞서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이 마이크론의 대중국 수출이 금지될 경우 삼성· SK 등 한국 반도체 기업이 대체 공급자가 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한국 정부에 요구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특히 미 상무부가 21일(현지시간) 동맹·파트너와 함께 마이크론 제재로 인한 파장에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확인하면서 중국에서 반도체를 생산·판매하는 한국 기업들은 또 다시 곤혹스러운 처지에 내몰리게 됐다.
이에 대해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2일 정례 브리핑에서 “(미국 측의 요구에 대해) 결연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마오 대변인은 “이러한 미국 측 행위는 전적으로 자신의 패권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다른 나라에 대중국 수출을 제한하도록 협박하는 것”이라며 “시장경제 원칙과 국제 경제·무역 규칙을 엄중하게 위반하고 글로벌 산업망과 공급망 안정을 파괴하는 것으로, 어느 쪽의 이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유관 국가 정부와 기업이 중국과 함께 다자무역 시스템, 글로벌 산업망과 공급망 안정을 수호하기를 희망한다”며 한국 정부와 반도체 업체들이 미국 요구에 응하지 않기를 기대했다.
중국은 G7을 향해 날선 목소리를 연달아 쏟아내고 있다. 중국 외교부는 쑨웨이둥(孫衛東) 부부장이 지난 21일 다루미 히데오(垂秀夫) 주중 일본대사를 불러 엄정한 교섭을 제기했다고 22일 밝혔다. 쑨 부부장은 이날 다루미 대사에게 “G7은 진영 대결과 냉전적 사고를 고수하고 있고 그 모든 행위가 객관적 사실과 국제 도의에 위배된다”며 “일본은 G7 순회 의장국으로서 관련국과 결탁해 중국을 먹칠·공격하고 내정에 난폭하게 간섭했다”고 항의했다.
앞서 G7은 지난 20일 정상회의 공동성명을 통해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강조하고 중국의 경제적 강압에 대한 공동 대응 입장을 밝히는 등 중국이 민감해 하는 사안을 모두 망라해 대중 견제에 한 목소리를 냈다. 중국 외교부는 대변인 논평을 통해 자국에 대한 먹칠이자 내정 간섭이라며 강력한 항의의 뜻을 표명했으나, 거기서 그치지 않고 정상회의 폐막날 주최국인 일본 대사를 초치해 다시 한번 직접 항의한 것이다.
베이징 | 이종섭 특파원 nomad@kyunghyang.com, 워싱턴 | 김유진 특파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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