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보·지휘자 권력 해체…연주자 창조성·즉흥성 강조
원일 예술감독, 韓 전통음악 본질 향한 노력 돋보여
지난 13일 오후 4시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린 '관현악적 시나위, 역(易)의 음향' 공연 역시 마찬가지였다.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뿐 아니라, 이예진, 송지윤, 지박, 김도연의 이름 앞에서 호기심을 품지 않기는 불가능했다. 게다가 원일 예술감독의 말처럼 소논문처럼 팸플릿에 담아 둔 글은 시나위라는 형식 혹은 장르, 또는 정신이라고 할 수 있을 영역에 대한 그의 철학과 고민을 충분히 담지했다. 신아위(神我爲)라고 명명해본 시나위는 악보와 지휘자의 권력을 해체해 연주자 개인의 창조성과 즉흥성을 주체적으로 발현시키려는 전환이고, 과거와 현재를 융합하려는 통합이기도 했다.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역(易)의 음향' 공연 [사진 제공= 경기아트센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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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의 음향 공연은 이 과정에서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가 무엇을 해냈고,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투명하게 보여줬다. 공연을 위해 단원들의 제안과 참여를 통해 곡을 구축해가고, 현장에서 다시 즉흥적으로 변화시키는 모습은 전범을 찾기 어려운 창작방식이었다. 사실 재즈와 즉흥 음악계에서는 일상화된 방식이었으나 한국 전통음악에서는, 특히 대규모 관현악 규모에서는 유례가 없는 방식이었다. '27개의 파랑', '시나위 브리콜라주', '호호홋', '합생(合生)'으로 이어진 공연은 음악 리더의 인도와 자유롭게 헤쳐모인 연주자들의 협연으로 이뤄졌다. 각각의 곡마다 이야기를 쌓고 연주자 개인의 감각과 언어로 수용하고 변형시킬 때, 음악은 수시로 분절되고 연결되었다.
'27개의 파랑'에서 서로 다른 소리가 산개하고 공존하며 느슨하게 결합해 만들어낸 서사는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가 자신의 방식으로 시나위를 수용해 창조하고 있음을 충분히 보여줬다. 오케스트라의 일치된 소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27명의 연주자가 토해내는 소리들은 실제 물결이 빚어내는 역동의 감각을 최대한 포착해 병렬함으로써 자신은 이렇게 보고 들었다고 말하는 난전이었다. 소동극처럼 펼쳐진 '시나위 브리콜라주' 또한 어지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두 번째 공연 역시 연주자들이 펼치는 자유와 혼돈을 통해 무대 중앙의 궤처럼 시시각각 변화하는 세계에 다가섰다. 그에 비하면 '호호홋'은 훨씬 친절하고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쉬우며 드라마틱한 공연이었다. 무대 위에 원을 그리고 앉은 연주자들이 모였다 흩어지며 연주하고 연희까지 선보인 덕분에 놀이처럼 즐길 수 있었다. 전체 단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먼저 선보인 곡들을 재구성하고 뒤흔든 '합생'은 다시 예상을 깨고 새로운 흐름을 제시하면서 공연을 마무리했다.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역(易)의 음향' 공연 [사진 제공= 경기아트센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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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 곡들의 성취나 한계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단원들이 스스럼없이 자신의 즉흥연주를 펼쳐놓고, 다른 이들의 연주에 귀 기울이는 모습이었다. 불일치와 무질서를 수용하는 태도였다. 자신의 가능성을 긍정하는 믿음이었다. 스스로 운동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순간들을 발견하며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가 이제 어떤 시나위든 해낼 준비가 되었을지 모르겠다고 기대하게 되었다. 완성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진행 중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얼마든지 달라질 것이기 때문에 흥미진진하다. 벌써부터 다음 공연이 기다려진다.
서정민갑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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