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조사에서 행불자 가족·유골 DNA 일치
다른 방식 조사에선 가족관계 입증 못 해
조사위 활동 종료 임박, 조사 중단 불가피
2019년 12월 광주광역시 북구 옛 광주교도소 무연고 공동묘지에서 발굴된 유골을 합동조사반이 살펴보고 있다. 5·18기념재단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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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ㆍ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주둔지에서 발굴된 유골들의 신원 규명이 미궁에 빠질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 5ㆍ18 행방불명자 가족과 유골 유전자(DNA) 정보가 일치해 계엄군이 자행한 암매장 가능성을 높였지만, 다른 조사에서 일치 여부를 확신할 수 없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가뜩이나 12월이면 5ㆍ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조사위) 활동도 종료돼 추가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유골들의 주인이 누구인지 영영 가릴 수 없게 된다.
15일 조사위에 따르면, 16일 예정된 대국민 보고회에서 조사위 측은 5ㆍ18 행불자 염경선씨의 신원 확인 관련 내용을 발표하지 않기로 했다. 염씨는 1980년 당시 전남 화순군에 살던 23세 청년으로 광주광역시에서 실종됐고 오랜 시간 행방이 묘연했다. 그러다 2019년 12월 계엄군이 주둔지로 사용한 옛 광주교도소 무연고 묘지에서 유골 262기가 무더기로 발굴됐는데, 한 구와 염씨 가족 DNA를 대조했더니 신원이 일치했다. 염씨가 맞는다면 계엄군의 집단 암매장을 입증하는 확실한 증거인 셈이다.
하지만 최근 조사에서는 다른 결론이 나왔다. DNA 분석은 사람마다 차이가 나는 특정 유전자 부위를 비교하는 것으로 이를 ‘DNA 마커’라 부른다. DNA 마커에는 특정 염기서열이 반복되는 횟수가 다른 STR 방식과 길이는 같은데 염기 구성이 다른 SNP 방식이 있다. 조사위는 교차 검증을 위해 DNA 검사 전문기관인 디엔에이링크(SNP)와 전남대(STR)에 각각 의뢰했다.
SNP 방식을 주로 사용한 디엔에이링크는 DNA가 99.9998% 일치한다고 판별했다. 반면 STR 방식을 적용한 전남대는 가족관계를 확인하기 어렵다고 봤다. DNA 조사 결과, 유골과 염씨 숙부가 같은 부계 유전으로 인정되지 않은 것이다. 현재 법적 공신력을 갖춘 가족관계로 인정하는 건 STR 분석 결과다. 여기에 국제적으로 DNA 검사 결과를 인정받으려면 적어도 150개의 DNA 마커가 확보돼야 하나 염씨는 99개에 불과했다.
상이한 결과가 도출된 만큼 추가 조사가 필수지만 난관이 적지 않다. 일단 염씨의 DNA 시료가 소진됐다. 기존 확보된 염씨의 넓적다리 부위 유골은 부식 정도가 심해 마커 수를 늘리려 분석 작업을 반복하면서 쓰임새를 다했다. 조사위는 뒤섞인 262기의 유골에서 나온 뼈마디 1,800여 개를 일일이 대조해 가며 염씨의 1차 DNA 검사 결과와 일치하는 유골을 찾고 있지만, 활동 종료 시점까지 시료 확보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조사위 관계자는 “새 DNA 시료를 찾는 데만 최소 몇 년은 걸린다”고 설명했다.
향후 계획도 전무하다. 조사위에 이어 유골들의 신원 확인을 진행할 기관이 나타나지 않으면 조사 중단이 불가피하다. 김형석 전남대 법의학교실 교수는 “2년 전부터 법의학 조사 전문기관 설립 등 행불자 DNA 조사에 필요한 대책 마련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행불자 DNA 조사는 범죄 현장 데이터를 해석하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방식과 달라 조사위 활동이 끝나면 인계할 기관조차 없는 실정이다. 조사위 관계자는 “마지막까지 행불자 신원 파악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후속 조사는 최종 보고서 등을 통해 정부에 관련 대책 수립을 권고하겠다”고 말했다.
광주= 김진영 기자 wlsdud451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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