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
지난달 14일 낮 12시 30분. 직장인에겐 조금 늦은 점심시간이지만 서울 영등포구청 지하 1층 구내식당 입구엔 20m 넘는 줄이 늘어섰다. 이날 메뉴는 ‘짜장 볶음밥’, 가격은 5300원(직원은 4600원)이었다. 밥은 물론이고 짜장도 무제한 자율 배식이라 넉넉히 뜰 수 있었다. 반찬으론 깐풍만두튀김과 김치·단무지가 나왔다. 후식은 샐러드와 숭늉이었다. 구청 바로 건너편 중식당에서 판매하는 짜장볶음밥 가격은 8000원이었다.
영등포구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한창일 때도 주민 복지 차원에서 외부에 구내식당을 개방해왔다. 사람이 몰리지 않도록 외부에 개방하는 시간은 낮 12시 20분부터 오후 1시까지로 제한했다. 오연주 영등포구청 구내식당 매니저는 “한식을 선호하는 어르신이 많은 점을 고려해 메뉴를 짠다”며 “주변 식당보다 저렴한 편이라 외부인도 하루 평균 70명가량 구내식당을 찾는다”고 말했다.
코로나19가 유행하는 동안 문을 닫았다가 지난 1월 18일 오픈한 영등포구청 구내식당 메뉴. 나주곰탕에 6첩 반찬, 매실수정과와 숭늉까지 포함해 5300원(외부인 기준)이다. 영등포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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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가 시대 외식 물가가 크게 오르자 구청·경찰서·도서관 같은 관공서 구내식당에 사람이 몰린다. 한 끼 4000~6000원 수준의 저렴한 가격에 한식을 비롯해 중식·양식 등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고, 믿을만한 재료를 쓴다는 장점이 주목받으면서다. 일명 ‘런치 플레이션(런치+인플레이션)’ 시대의 단면이다.
구내식당의 가장 큰 장점은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다. 마포구청은 5500원에 ‘1식 7찬’이 나오는 가성비 맛집으로 유명하다. 김치·샐러드·전·국이 기본으로 나오는데 외부인도 조·중·석식 모두 이용할 수 있다. 강남구청은 한식(4500~5000원)과 중식·양식(5500원), 특식(6000원) 3코스 메뉴를 운영하는 점이 특징이다. 직원도 외부인과 같은 가격에 먹을 수 있다.
중식으로 3가지 메뉴를 준비해 손님으로 붐비는 강남구청 구내식당. 강남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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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경찰서는 직원은 5000원, 외부인은 6000원에 점심을 제공한다. 민원 처리를 위해 경찰서를 방문한 경우에 이용할 수 있도록 했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이용을 제한하지 않는다. 정독도서관은 라면·우동 같은 분식 4000원, 백반 5000원, 치즈 돈까스 6500원 등 5개 넘는 메뉴를 갖췄다. 도서관 구내식당을 운영하는 변모(54)씨는 “식사뿐 아니라 원두커피까지 1000원에 제공해 인근 주민들이 단골로 찾는다”며 “점심시간에 100~150명이 찾는데 50명가량은 외부인”이라고 설명했다.
관공서 구내식당 한 끼 가격(4000~6000원)은 일반식당 물가와 비교해야 두드러지게 싸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서울의 지난 3월 기준 외식비는 짜장면 6800원, 김치찌개 7600원, 비빔밥 1만100원, 삼계탕 1만6300원 수준이다. 구내식당 대부분이 숭늉이나 수정과·매실차 같은 후식 메뉴까지 제공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차이는 5000원 이상으로 벌어진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
구내식당이 저렴한 가격대를 유지하는 건 대량으로 식자재를 구매할 수 있어서다. 대부분 구내식당이 안정적인 식수 인원을 유지하는 데다 한 끼를 단일 메뉴로 운영하는 만큼 일반식당에 비해 식자재 부담이 덜하다. 양천구청 관계자는 “특정 식자재 가격이 오를 경우 상대적으로 가격이 덜 오른 식자재로 메뉴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원가 압박에 대응할 수 있다”며 “식당을 외부에 위탁하는 대신 직접 운영하며 새벽 경매에서 재료를 공수하는 등 단가를 낮추려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구내식당이 인기를 끄는 만큼 그늘도 있다. 외부인은 선호하지만 정작 직원이 불편을 호소해서다. 코로나19를 이유로 현재까지도 외부인 이용을 제한한 경우도 많다. 한 구청 관계자는 “인기 메뉴가 나오는 날엔 오히려 직원들이 식사를 못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매출 감소를 우려한 인근 지역 상인들이 “외부인을 받지 말라”고 항의하는 경우도 있다.
점심 시간 서대문구청 구내식당. 서대문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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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식 물가는 지난달까지 29개월 동안 오름세다. 지난해 9월 9%로 ‘정점’을 찍은 뒤 둔화했는데도 지난달 7.6% 상승률을 기록했다.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3.7%)의 두 배 이상이다. 밀가루·식용유를 비롯한 식재료 가격과 물류비·인건비 등 제반 비용이 전반적으로 오른 영향이 크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점심은 외식하는 경우가 많은데 매일, 무조건 써야 하는 비용이라 체감이 크다”며 “외식 물가 상승에 대한 저항이 큰 만큼 구내식당이나 편의점 도시락 같은 대체재를 찾는 경향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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