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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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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가 6개월 아이마저 죽였는데…국제사회는 립서비스만"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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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임시정부 수장, 본보 화상 인터뷰]
"국민 학살하는 군부 '국제 법정' 세워야"
아웅산 수치 "용감히 투쟁하라" 메시지
"군부 아닌 NUG를 정부로 인정해 달라"
한국일보

미얀마 임시정부 수장인 두와 라시 라 대통령 권한대행이 1일 한국일보와 화상 인터뷰를 하고 있다. 줌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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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국민을 지키긴커녕 목숨을 앗아가고 있습니다. 정부가 아닌 ‘범죄 단체’가 하는 짓입니다.” 미얀마 국민통합정부(NUG)의 두와 라시 라(73) 대통령 권한대행은 지난 1일 한국일보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 등 군부를 국제법정에 세워 처벌받도록 해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NUG는 2021년 2월 1일 미얀마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킨 지 75일째인 같은 해 4월 16일, 민주 진영이 만든 임시정부다.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이 이끌던 정당 민주주의민족동맹(NLD)과 소수민족 대표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카친족 지도자였던 라시 라 권한대행은 윈 민 문민정부 대통령이 수치 고문과 함께 구금된 이후 NUG 수장으로 반군부 항쟁 최전선에 서 있다. 그는 한 시간의 대화 내내 “국제사회가 군부가 아닌 NUG를 미얀마의 공식 정부로 인정해 달라”고 호소했다.

정부군 손에 민간인 3400명 사망


현재 미얀마 모처에서 은신 중인 라시 라 권한대행은 내전 참상을 언급하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그에 따르면 지난 2년 3개월간 무고한 시민 3,400여 명이 숨졌다. 매일 네댓 명꼴로 군부 총칼에 목숨을 잃은 셈이다. 고향을 등진 피란민은 미얀마 내에서만 180만 명에 달한다.

라시 라 권한대행은 “시간이 지날수록 군부는 더욱 잔혹해지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난달 11일 북서부 사가잉주 칸발루시 파지지 마을에 대한 무차별 공습 상황을 생생하게 전했다. ‘쿠데타 이후 가장 끔찍한 학살’로 불리는 이 사건을 NUG 고위 관계자가 구체적으로 밝힌 건 처음이다.

당시 마을에는 NUG 새 사무실 개소식에서 음식을 얻으려는 주민 수백 명이 이른 아침부터 모였다. 한국의 설날에 해당하는 미얀마 전통 새해 명절 띤잔 연휴 기간도 겹친 탓에 어느 때보다 많은 인파가 몰렸다. 그런데 갑자기 미얀마군의 러시아제 야코블레프(Yak)-130 전투기가 마을 상공에 나타났다. 그리고는 미처 피할 새도 없이 226㎏ 폭탄을 투하했다.
한국일보

지난달 11일 미얀마 사가잉주 칸발루의 한 마을 건물이 군부의 공습으로 처참하게 무너져 있다. 당시 민간인 168명이 사망했다고 두와 라시 라 미얀마 임시정부 대통령 권한대행은 밝혔다. 칸발루=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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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규환 속에서 살아남은 시민들이 달아나자, 이번에는 MI-35 헬기가 지상 가까이 내려와 발포를 시작했다. 만행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그날 저녁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주민들이 시신 수습을 위해 마을로 복귀하자, 군은 또다시 시민들에게 총부리를 겨눴다.

라시 라 권한대행은 “지금까지 168명이 숨진 것으로 확인됐는데, 40명이 8세 이하”라며 “사망자 중엔 생후 6개월 아기도 있다”고 밝혔다. 앞서 현지 매체들은 “불에 타거나, 팔다리나 머리가 몸에서 분리되는 등 시신이 크게 훼손된 탓에 정확한 사망자 수 집계가 어렵다”고 전한 바 있다.

해당 공습으로 임신 9개월 여성, 8세 소년 등 83명은 팔다리를 잃는 부상을 입었다. 미얀마군이 마을에 불을 지르고 또다시 공격할 가능성도 있어 주민 1,000여 명은 피란길에 올랐다. “민간인을 향한 공격, 이게 전쟁범죄가 아니면 무엇입니까.” 라시 라 권한대행은 떨리는 목소리로 이같이 되물었다.

“반기문 방문, 의도 좋지만 방식은 글쎄”


반인륜적 범죄를 목도하고도 국제사회는 무기력하기만 했다. 실제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은 2021년 ‘즉각 폭력 종식’ 등 5개 항을 합의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후속 조치를 내놓지 못했고, 군부의 ‘모르쇠’ 탓에 사실상 휴지 조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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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왼쪽) 전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달 24일 미얀마 수도 네피도에서 군정 수장인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과 회담하고 있다. 네피도=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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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피해 발생 때마다 너도나도 ‘규탄’을 부르짖지만, 실질적인 제재는 없다. 허울뿐인 경고다. 라시 라 권한대행은 “말로만 (걱정)하는 ‘립서비스’ 대신 다른 나라와 국제기구가 행동으로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만행을 저지른) 군부에 대한 적절한 처벌이 없으니, 그들이 세계를 만만히 보고 뻔뻔하게 범죄를 일삼고 있다”고 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미얀마행에 대해서도 “비윤리적”이라고 일침을 놨다. 국제 원로 그룹 ‘디엘더스’ 부의장인 반 전 총장은 지난달 23, 24일 군부 초대로 미얀마 수도 네피도를 깜짝 방문해 흘라잉 최고사령관을 만났다. 그는 군정에 “NUG와 당사자 간 대화를 시작하라”고 촉구했다.

라시 라 권한대행은 “의도는 좋았으나 방식이 맞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국제사회가 군정을 달래려 하기보단 처벌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의미다. 군부의 잔혹 행위를 지시하거나 방조하는, 사실상 ‘살인마’와 악수하는 모습은 세계에 잘못된 메시지를 줄 뿐만 아니라 반 전 총장 이미지에도 악영향을 주는 것이라고 그는 꼬집었다.


”NUG를 대화 파트너로”


각국의 무관심 속에 미얀마인들은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시민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나라와 가족을 지키겠다며 총을 들었다. 현재 카야·카렌·카친·샨주 등 곳곳에서는 NUG가 창설한 시민방위군(PDF)이 정부군에 맞서고 있다. 구체적 병력 규모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현지 언론은 약 6만5,000명 수준으로 보고 있다. 수치 전 고문도 이들을 적극 지지한다. 라시 라 권한대행은 “(수치 고문이) 인내심을 갖고 시민 뜻대로 계속 용감하게 (투쟁을) 진행하라고 전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얀마의 봄’은 국제사회의 협력 없이 오지 않는다. 라시 라 권한대행은 △피란민의 식량·물·의약품 △무기 등이 턱없이 부족하다면서도, “전쟁을 조속히 끝내려면 NUG를 공식 정부로 인정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여러 나라들이 국민을 학살하는 군정이 아닌, NUG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대화 파트너’로 삼아야 한다는 얘기다.
한국일보

지난 1월 미얀마 카렌주 다운타만에서 시민 학생군들이 훈련을 받고 있다. 다운타만(미얀마)=허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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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도 관심과 도움을 촉구했다. 라시 라 권한대행은 한국 주요 기업들이 군부가 통제하는 미얀마석유가스공사에 직간접적 투자를 한 점을 거론하며 “수익금이 쿠데타 군정으로 들어가고 있다. 국민을 학살하는 군부의 ‘돈줄’을 막아 달라”고 호소했다. 2021년 한국 국회의원들과 만나 같은 요청을 했다고도 덧붙였다. 그러나 2년이 흐른 지금, 바뀐 건 단 하나도 없다.

한국의 ‘과거’는 미얀마의 ‘현재’다. 미얀마 국민들은 한국의 현재가 미얀마의 미래가 되길 바라고 있다. 라시 라 권한대행은 한국을 롤모델로 꼽으며 이렇게 말했다. “한국은 군사독재 정권에서 벗어나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이룩한 나라입니다. 미얀마도 한국처럼 빨리 민주화를 이루길 바랍니다. 그날까지 우리는 군부 앞에 절대 무릎 꿇지 않을 겁니다.”



하노이= 허경주 특파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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