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정치인들이 틈만 나면 불체포특권 폐지를 선언하고 대선 공약까지 내걸었지만 재야 정치인인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장(사진)이 시민단체 명의로 요구한 서약서에는 여당 의원 '딱' 1명만 응한 것으로 확인됐다.
안 될 것이 뻔한 약속을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앞세우고 돌아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외면하는 한국 정치의 단면이다. 장 원장은 "이달 말 유권자 3000여 명과 항의의 뜻에서 국회를 인간 띠로 포위하는 시위를 통해 특권 폐지를 계속 압박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4일 서울 여의도 신문명정책연구원 사무실에서 진행된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장 원장은 "국회의원 300명 전원에게 등기로 특권 폐지 서약서를 전달했는데, 최승재 국민의힘 의원 딱 한 사람만 서약서를 보냈다"고 말했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평생 재야 정치를 해 온 장 원장은 진보·보수 진영 모두에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지만 전부 낙선했다. 민중당으로 정계에 입문해 주로 민주당 계열 정당에 몸담았지만 마지막에는 국민의힘의 전신인 미래통합당에서 출마했다.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을 오랜 기간 계속했기 때문에 '노동계·학생운동의 원류, 대부'라고도 불린다.
장 원장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의원 특권 폐지를 강력하게 주장하며 지난달 16일에는 서울 광화문에서 특권폐지국민운동본부 출범식을 개최했다. 지난달 27일에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의원 전원에게 5대 특권 폐지 설문을 보내고 서명을 요구했다. 그가 요구한 것은 △의원 수당을 월 1280만원(연봉 1억5550만원)에서 근로자 평균 임금 400만원으로 하향 △의원실마다 연 1억원씩 주어지는 지원 경비 폐지 △9명의 개인 보좌진을 3명으로 축소 △시대착오적 규정인 불체포특권과 면책특권 포기 등으로 각각 항목에 동의·비동의를 표시해달라고 했다.
최근 국민의힘 의원 50여 명은 불체포특권 포기 서약을 하고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지난 대선 때 이와 관련한 공약을 내세운 바 있다. 장 원장은 의원 1명이라는 저조한 참여율에 대해 "의원들이 답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할 사람들이었으면 진작 했을 것"이라며 "나는 이것으로 국회를 포위할 명분을 축적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장 원장은 의원들이 특권 포기 서약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달 말 국회를 '인간 띠잇기'로 포위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장 원장은 "오늘(4일)까지 특권 폐지에 동의한다는 시민이 9000명이고 국회 포위에 참여하겠다는 사람이 1200명"이라며 "국회 둘레가 2.5㎞이기 때문에 3000명은 현장에 있어야 하는데 이달 말까지 충분히 모을 수 있다"고 자신했다. 장 원장은 5대 특권 중 정치후원금이 제일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후원금을 한 해 1억5000만원까지만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며 "의원들은 총선이 있는 해에는 후원금을 3억원까지 받아서 선거를 치르고, 그 후에는 선거비용 거의 전액을 국가에서 환급받는데 정작 남는 돈을 시도당에 넣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양심이 있는 사람들은 1억5000만원 중에 수천만 원을 넣고, 나머지는 개인 호주머니로 들어간다. 이런 짓을 하고 있는데 감시하는 사람도 없다"고 맹비난했다.
1945년생. 남들은 안락한 노후를 꿈꾸는 시기에 주목받지 못하는 재야 정치를 계속하는 이유를 물었다. 장 원장은 "지금 우리 사회가 굉장히 어렵다. 대량 실업, 소득의 양극화, 환경 파괴, 인간성 상실 등이 주된 문제"라며 "제대로 대응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데 한국 정치는 그러지 못했고, 대안은 내가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국민을 불행하게 만든 정치가 바뀔 때까지 매질하겠다"고 말했다.
[이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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