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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법원 "'모든 정보' 압수영장 남발" vs 검찰 "수색을 압수로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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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이메일과 카카오톡 대화 등을 비롯해 사실상 모든 전자정보를 압수할 수 있는 영장이 남발돼 국민 기본권이 침해되고 있다는 주장이 전국 영장전담판사들이 모인 회의에서 제기됐습니다.

'압수수색 영장 사전심문'을 도입해야 한다는 대법원 규칙 개정 움직임의 연장선상입니다.

법원행정처는 어제(1일) '압수수색 영장 실무 관련 논의를 위한 영장전담법관 온라인 간담회'를 열었습니다.

이 자리에는 구속이나 압수 등 영장 발부 여부를 판단하는 전국 영장전담판사들이 온라인으로 참여했습니다.

발제를 맡은 법원행정처 형사지원심의관 정재우 판사(사법연수원 39기)는 대주주의 뇌물 혐의와 관련해 압수수색 대상이 된 사내변호사 A 씨의 실제 사례를 제시하며 시민의 사생활 침해 위험이 심각한 단계에 이르렀다고 주장했습니다.

정 판사가 설명한 사례는 이렇습니다.

해당 범죄는 A 씨 입사 전에 벌어진 일이었지만 A 씨도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됐습니다.

압수수색 영장에 기재된 '압수할 물건'의 범위는 '본건과 관련성이 인정되는 범위 내의 파일, 내부 메신저 및 이메일 송수신 자료, 원격지 서버 저장 전자정보' 등이었습니다.

압수수색 집행 현장에선 수백만 건의 파일을 선별하기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수사기관이 기기 전체를 가져가고 이튿날 A 씨가 수사기관에 출석해 선별 작업을 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출석하니 선별하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고 '웬만하면 협조하는 것이 회사 입장에서 유리하다'는 변호인의 조언에 따라 A 변호사는 이 절차를 포기했습니다.

결국 A 변호사는 범죄에 관여하지 않았음에도 친구와 나눈 비공개 대화 등 사건과 무관한 정보까지 넘겨주게 됐습니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압수수색 영장 청구는 2011년 10만 8천992건에서 지난해 39만 6천671건으로 3.6배 늘었습니다.

같은 기간 발부율도 87.3%에서 91.1%로 증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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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판사는 "영장상 '본건과 관련성' 문구만으로는 압수 범위 제한이 불가하고 철저한 선별도 어려워 사실상 '모든 것'을 압수할 수 있는 영장이 발부되고 있다"며 "수사기관이 입수한 정보가 어떤 방식으로 보관되는지, 무관 정보가 제대로 폐기되는지 알기도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대법원 형사소송규칙 개정을 통해 압수수색 영장 사전심문을 도입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압수수색 영장 사전심문이란,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하기 전 판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수사 기관 등 사건과 관련된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을 심문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말합니다.

정 판사는 "판사의 서면 심리 중 대상·범위·방법 등에 대한 의문점이 발생할 경우 이를 해소하거나 추가 심리를 할 방법이 없다"며 "담당 법관은 수사를 발목 잡는다는 부담감에 발부를 우선적으로 고려하게 되고, 과도한 압수수색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했습니다.

정 판사는 수사 밀행성을 저해할 것이라는 검찰 등 수사기관의 우려에 대해서는 사전심문 대상은 피의자가 아닌 영장을 청구한 수사기관이 될 것이고, 절차도 비공개로 진행될 것이므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이에 대검찰청은 오늘 "대면 심리를 도입하면 수사기관의 무분별한 전자정보 압수를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며 즉각 반박 입장을 냈습니다.

대검은 압수수색 영장 청구 건수가 폭증했다는 주장에 "과거 영장 없이 수집하던 증거에 대해서도 현재는 영장을 발부받아야 압수할 수 있기 때문에 발부 건수가 증가한 것"이라며 "법원의 통제는 오히려 강화됐다"고 반박했습니다.

현행 압수수색 제도가 수사기관에 사실상 '모든 것'을 압수할 수 있는 과도한 권한을 부여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법원이 압수 전 단계에서 이뤄지는 수색을 압수로 오해하고 수색 자체를 통제하려는 것"이라고 맞받았습니다.

그러면서 "주거지 압수수색에서도 압수할 물건이 있는지 확인하려면 옷장, 서랍 금고 등을 열어봐야 한다"며 "전자정보가 저장된 위치나 방식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저장장치 탐색을 막는다면 압수수색 자체를 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수사의 밀행성이 저해되지 않을 것이라는 법원의 반박에 대해서는 "대면심리가 진행되는 이상 절차 지연은 필연적이고, 관여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수사 정보 유출·증거인멸 가능성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재반박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TV 제공, 연합뉴스)
박찬근 기자(geu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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