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오늘날 미국 정치지도자들은 한국이 ‘글로벌 중추 국가’로서의 역할을 맡아 기술, 국방, 민주주의 등 다양한 현안에 참여하도록 권장하고 싶어 한다. 지난 70년간 이뤄 온 성취에 안주하기보다는 새롭게 열릴 지평을 향해 눈을 돌리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먼저 오늘날 고려해야 할 시급한 현안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의 핵우산이며, 한국의 자국 수호를 위한 확장억제에 대한 의존이다. 평양은 2022년 역대 최다인 95발의 미사일을 발사했으며, 핵 독트린을 변경해 핵 사용 문턱을 낮췄다. 이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는 그 어느 때보다 요원해 보이며 현실적인 군축 가능성도 보이지 않는다. 평양이 대남 선제타격을 언급하며 충격적인 위협을 지속하는 상황에서 한국이 미국의 보호와 그 신뢰성에 확신을 얻고자 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북한, 사실상 비핵화 가능성 안보여
26일 양국이 채택한 ‘워싱턴 선언’은 조 바이든 대통령의 솔직한 발언과 함께 동맹에 대한 안보 보장을 재확인해 주는 데 상당히 유용할 것이다. 양국은 북한의 위협과 이에 대한 대응에 초점을 둔 핵 및 전략 기획을 토의하는 새로운 ‘핵협의그룹’(NCG)을 설립했다. 또 유사시 핵 기획에 대한 한국의 이해를 돕고 한·미 공동 기획을 위한 새로운 핵운용연습(TTX)도 도입할 계획이다.
나아가 미 고위 당국자에 따르면 1980년대 이후 처음으로 미국의 핵탄도미사일 잠수함이 한국을 방문할 것이며, 두 정상은 북한의 핵 공격이라는 엄중한 사태 발발 시 정상 간에 직접 협의하기로 동의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
선언에서 한국은 “미국의 확장억제 약속에 대한 전적인 신뢰”를 언급했지만, 새로 설립된 NCG와 그 프로세스는 항상 확고한 정치적 결단으로 지원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어느 때보다 명료했다. 그는 “북한이 미국이나 동맹, 파트너에 핵 공격을 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으며, 그런 행동을 하면 어떤 정권이든 종말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평양은 그런 파국적인 공격을 고려하는 것만으로도 경솔해 보일 것이다.
양국 관계에서 또 다른 긴장을 초래하는 분야에서 큰 진전은 없었다. 미국의 첨단기술 기업에 세액공제, 보조금 및 각종 혜택을 제공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법(CHIPS and Science Act)은 한국 기업에 불이익을 줄 수 있다. 윤 대통령은 한국의 우려를 명확히 전달했으며, 이는 합당한 문제 제기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은 공개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하거나 어떤 해결책이 있을지 제안하지 않았다.
미 백악관 당국자와 의회 의원들은 윤 대통령이 일본과의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해 정치적 용단을 내린 것에 대해 박수를 보냈다. 앞으로 갈 길은 멀지만 한·일 관계 회복은 매우 환영할 만한 진전이다.
특별히 놀라운 점은 최근 한국의 민주주의적 가치, 법치주의와 인권 수호에 대한 의지다. 윤 대통령은 한·미 동맹은 “단순히 상호 이익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 동맹이자 자유라는 보편적인 가치를 함께 수호하는 동맹”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중국, 러시아 등이 권위주의적 지배에 유리하게 국제질서 수정을 추구하는 시점에 한국은 자유주의 세력에 핵심적인 지원을 하며 부상하고 있다.
워싱턴 정가, 한·일관계 회복에 찬사
이번 국빈 방문은 좋은 결과를 낼 것으로 보이지만 그보다는 더 크고 야심 찬 동맹으로 향하는 한 걸음이 돼야 한다. 미국은 한국이 국제적으로 더 큰 역할을 수행하고자 하는 의지를 환영하고 이를 장려해야 한다. 예컨대 한국의 ‘쿼드’(Quad, 미국·인도·일본·호주 4개국이 참여하는 안보협의체) 활동 참여를 장려해야 하며, 한국을 포함한 ‘퀸트’(Quint)도 고려해야 한다. G7 회원국들은 G7을 G8으로 확대해 경제 규모 세계 8위인 한국을 포함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한국은 우크라이나에 탄약 등 군수물자 지원을 강력하게 고려해야 한다. 이런 야심 찬 조치들은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격상된 한·미 동맹에 걸맞다.
이번 방문 기간 양국 지도자들의 연설은 과거에 대한 언급으로 가득 차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한·미 동맹이 “양국 국민의 용기, 희생, 피로 맺어진 혈맹”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도 “자유를 위한 투쟁의 결과로 맺어진 혈맹”이라고 화답했다.
리처드 폰테인 |
이 모든 발언은 가슴에 사무치는 기억이고, 적절한 표현이다. 그렇지만 양국 동맹관계에서는 충분치 않다. 지금은 질서, 안보, 자유, 번영을 위해 한·미가 함께 노력해야 할 때다. 그러기 위해선 과거를 돌아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래를 내다봐야 한다. 양국이 과거에 무엇을 성취했느냐가 아니라 내일 무엇을 이룰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본 outlook은 한국국제정치학회의 Korea On Point 프로젝트와 공동 기획했습니다.
☞리처드 폰테인(Richard Fon taine)=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부국장을 지냈으며, 현재 워싱턴DC 소재 신(新)미국안보센터(CNAS) 회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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