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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목)

[스프] 우리 식탁을 지탱해 주는 노예노동의 실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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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로오션 프로젝트] Ep.2 - Bondage at S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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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브스프리미엄, 스프는 '아웃로오션 프로젝트'와 함께 준비한 [Dispatches from Outlaw Ocean]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아웃로오션'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상에 스프가 준비한 텍스트를 더해 스프 독자들에게 더욱 풍성하고 깊이 있는 지식뉴스를 전달해 드리려고 합니다. 2편의 주제는 '바다에서의 노예노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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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바다에서는 모두가 노예였다

"우리는 맞고 또 맞았어요. 선원들 전부 다요."

원양어선 노동자였던 아소라삭 탐마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태국 선적 원양어선에서 일할 때 그는 노예와 다름없는 처지였다고 합니다. 선장은 시시때때로 그를 포함한 노동자들을 폭행했고, 기계처럼 일만 하도록 강요했습니다. 어디로라도 탈출하고 싶었지만 사방은 망망대해, 달아나려고 해도 달아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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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일어나니 원양어선…폭력과 살인이 횡행하던 그곳



취업이 아니라 납치이자 인신매매였습니다. 2011년 어느 날, 아소라삭은 자주 가던 술집에서 취할 때까지 술을 마셨습니다. 여느 때와 달랐던 건 다음날 일어난 곳이 집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그가 깨어난 장소는 바다 한가운데, 배였습니다. 누군가 그에게 마약을 탄 술을 마시게 했고 의식을 잃은 상태로 납치된 아소라삭은 하루아침에 원양어선에서 일하는 신세가 됐습니다.

그로부터 두 달여 동안, 파도가 몰아치고 거센 바람이 부는 바다에서 종일 물고기를 잡아야 했습니다. 하루에 주어진 휴식시간은 단 1시간뿐, 그 짧은 시간이 지나면 다시 일하러 가야 했습니다. 고된 노동 이상으로 고통스러웠던 건 선장의 폭행이었습니다. 아소라삭과 동료들은 수시로 얻어맞았고 때로는 쇠막대로 폭행당하기까지 했습니다. 선장은 마치 바다의 신처럼 군림했습니다.

절망적인 나날 속에 기회가 온 건 보르네오 섬에 배가 입항했을 때였습니다. 육지에 발을 딛는 순간 아소라삭은 선장을 밀치고 발로 세게 찬 다음 그대로 달아났습니다. 말레이시아 어부에게 구출된 그는 다행히도 자유를 되찾을 수 있게 됐습니다.

우리가 먹는 수산물 20킬로그램을 떠받치는 IU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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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바다는 식량의 보고입니다. 2020년 기준, 전 세계 어획량과 양식수산물 생산량은 1억 8천만 톤에 육박합니다. 양식 생산량이 매년 늘면서 그 비중이 49.2%, 절반에 이르렀지만 조업을 통한 생산도 여전히 절반이나 됩니다.

그만큼 우리는 수산물을 많이 먹습니다. 식량에서 수산물 의존도가 높다는 얘깁니다. 세계 인구 1명이 연간 소비하는 수산물은 평균 20킬로그램, 앞으로는 인구 성장률보다도 수산물 소비율이 더 크게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습니다. 건강을 생각할 때, 가격 면에서, 식품의 안정성과 품질 등에서 수산물 소비는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겁니다. 바다에서 수산물을 생산하는 해면어업은 중국 비중이 가장 크고 그다음은 인도네시아, 페루, 러시아 순입니다.

생산을 계속 늘리면서도 소비 또한 촉진하려면 가격이 안정적이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비용 관리가 필수입니다. 이 지점에서 어업 종사자들이 등장합니다. 아소라삭의 사례처럼 아예 납치를 해 인신매매하는 극단적인 경우도 있지만 주변 가난한 나라에서 온 이주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게 더 일반적입니다.

이를 IUU(Ilegal Unreported Unregulated), 즉 불법, 비보고, 비규제 어업이라고 부릅니다. 불법 체류자라는 점을 악용해 착취하거나 강제노동을 시키거나, 또는 채무변제를 구실로 한 노예노동을 시킵니다. 브로커를 통해 이주한 노동자들에게 빚을 지게 하고 그걸 일해서 갚으라는 식인데 브로커는 이주노동자를 선장에게 돈을 받고 넘깁니다. 노예노동의 시작입니다. 호주인권단체 워크프리재단에 따르면 태국에서만 60만 명 이상이 이런 현대판 노예제 - 채무노동에 연관돼 있습니다. 일단 배에 타고 먼바다로 나가면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수년 동안 노예처럼 일합니다.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는 일도 드물지 않게 발생합니다.

암페타민에 의존한 장시간 노동…열악하다 못해 처참한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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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영리 저널리즘단체 '아웃로오션 프로젝트'를 이끄는 이안 얼비나(Ian Urbina)가 인터뷰한 어선 노동자들은 하루 20시간 정도씩 일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인간이 견딜 수 없는 이런 장시간 노동이 가능했던 건 각성제의 일종인 암페타민 덕분이었습니다. 선장은 노동자들에게 일을 시키다 피로한 기색을 보이면 암페타민을 먹게 했다고 합니다. 암페타민을 복용하면 교감신경이 자극받아 단기적으로 정신이 맑아지고 피곤을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내성과 의존성이 생기고 중단 시 금단현상이 있을 수 있어 의사 처방이 필수적인 약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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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에게 암페타민은 제공돼도 음식과 물은 충분히 공급되지 않았습니다. 영양 부족에 시달릴 만큼 음식은 늘 부족했고 위생 상태도 좋지 않았습니다. 이런 열악한 환경 탓에 태국 바다에서만 연간 3만 8천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2009년 UNIAP(United Nations Inter-Agency Project on Human Trafficking) 설문에 따르면, 원양어선 노동자의 약 60%는 살인을 목격한 적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2013년 3월 EJF(Environmental Justice Foundation)의 조사도 비슷했습니다. 일하다 다쳐서 사망하기도 하지만 어선에서 탈출을 시도하다 살해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쇠파이프로 폭행하거나, 총을 쏘거나, 바다로 던지거나… 갖은 방법이 동원되고 사망한 이들의 시신은 그대로 바다에 버려집니다.

외국인 선원이 절반인 한국…가혹하긴 마찬가지



2021년 기준 한국 국적의 원양어선이나 연안 여객선 등에서 일하는 한국인 선원은 3만 2510명이었습니다. 관련 통계가 작성된 1995년 이후 가장 적은 숫자로, 11년 연속 감소한 겁니다. 40세 이상이 78.7%를 차지할 정도로 고령화는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반면 외국인 선원은 2만 7333명으로, 전체 선원의 45.7% 역대 최다를 기록했습니다. 경제활동인구의 감소, 직업가치관의 변화, 가족 사회와 단절된 근로환경, 직업으로서 상대적으로 낮은 매력도 등이 한국 선원의 감소 원인이라고 해양수산부는 밝혔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20년 7월 원양어선을 타는 베트남 출신 선원들을 심층 조사한 내용을 보면 하루 평균 노동시간이 15시간에 육박, 최장 19시간까지 일한 노동자도 있었습니다. 응답자 절반은 한국인 선장이나 선원으로부터 자주 욕설을 들었고, 30%는 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길게는 2년까지 육지에 오지 못한 채 배에서만 지내며 이런 상황을 견뎌야 했다고 말했습니다. 시민단체들 실태 조사에서도 많은 외국인 선원들이 장시간노동에 시달리면서도 한국인 선원 월급의 10분의 1 밖에 못 받고 폭행과 폭언에 시달려온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미국의 한 대학에서 2012년~2018년 1만 6천 척의 어선을 조사한 결과 14~26%는 강제노역을 시켰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6년 동안 최대 10만 명이 강제노역의 피해자였을 수 있다는 겁니다.(관련 논문) 같은 대학의 또다른 연구에서는 상위 25개 수산국의 참치 원양어선 조업 형태를 분석해보니, 한국 국적선이 항해 거리, 항해 시간, 조업시간에서 1위, 항구와의 최대 거리가 2위로 열악한 조업환경에서 최상위권이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부끄러운 세계 톱클래스입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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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구 기자(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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