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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3 (월)

이슈 미술의 세계

손녀가 찾은 외할아버지의 '작가 정신'…예화랑의 45주년 발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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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의 별이 되어'전

장욱진·천경자 등 인연 맺은 작가 21인 소개

"미술사 초기 작가 정신 되살리고자"

5월 4일까지 예화랑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한국전쟁이 끝나고 1954년 9월 어느날. 서울 종로4가 청계천 쪽에 있던 천일백화점 내 천일화랑에서 ‘유작 3인전’이 열렸다. 6·25 전쟁 중에 52세, 47세, 38세의 나이로 각각 타계한 김중현, 구본웅, 이인성 작가의 추모전이었다. 한국 근대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가들로 평가되는 이들이었다. 그들의 흩어진 작품 40여점을 수집해 소개한 해당 전시에 대해 당시 미술평론가 고(故) 이경성은 “화단적 의미가 큰 전시”라고 평하기도 했다.

‘유작 3인전’을 기억하고 있는 구본웅·김중현 작가의 유족들도 기억을 소환했다. 구본웅 작가의 차남 구상모(87)씨는 “중학교 1학년때 천일화랑까지 작품 심부름을 했었는데 전시장이 컸던 기억이 난다”며 “‘유작 3인전’을 통해 아버지의 그림들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김중현 작가의 딸 김명성(79) 씨는 “아버지는 6·25 동난 중에도 계속 그림을 그리셨다”며 “어려운 시기에 활동했던 아버지의 작품을 많이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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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천일화랑서 열린 ‘유작 3인전’ 개막식 모습(사진=예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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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화랑을 운영했던 이는 이완석(1915~1969)이다. 충남 공주에서 태어난 그는 국내 최초의 디자인 단체인 ‘조선산업미술가협회’(현 대한산업미술가협회) 설립을 주도했다. 일본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한 뒤 귀국해 천일제약 디자이너로 활약했다. 그러다 1954년 천일백화점 지배인을 맡으면서 백화점 안에 천일화랑을 열었다. 하지만 천일화랑은 당시 경제상황이 여의치 못해 6개월만에 문을 닫아야했다.

천일화랑의 역사는 현재의 예화랑으로 이어졌다. 이완석의 딸 이숙영씨는 1978년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 예화랑을 열었다. 2010년 그가 별세한 이후에는 딸인 김방은 대표가 이모인 이승희 대표와 함께 화랑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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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의 별이 되어’ 전시 전경(사진=예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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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김향안·윤중식 작품 한 자리에

올해는 예화랑이 창립 45주년을 맞는 해이다. 이를 기념하는 전시 ‘밤하늘의 별이 되어’가 5월 4일까지 서울 강남구 신사동 예화랑에서 열린다. 천일화랑에서 시작해 예화랑까지 생전 인연을 맺은 작가 21명의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다. 김방은 예화랑 대표는 “한국현대미술사의 초기를 함께 했던 작가들의 작가 정신을 오늘날에 되살려보겠다는 마음에서 출발했다”고 소개했다.

전시 기획은 2021년 여름, 김 대표가 충남문화재단으로부터 받은 전화 한 통에서 시작됐다. 재단 측은 ‘제주 목장’이라는 제목의 흑백 포스터 이미지를 보내주며 이완석 작가의 작품이 맞는지 확인해 달라고 했다. 바로 외할아버지의 작품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김 대표는 외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찾아 나가기 시작했다.

전시에서는 구본웅의 드로잉 2점을 비롯해 오지호, 남관, 임군홍, 이인성, 윤중식, 손응성, 유영국, 최영림, 장욱진, 이준, 이대원, 임직순, 홍종명, 정규, 문신, 권옥연, 천경자, 변종하 작가의 작품을 한데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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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의 ‘새와 항아리’(왼쪽)와 김향안의 ‘Mont Blance Nov’(사진=예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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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부부였던 김환기(1913~1974)의 ‘새와 항아리’, 김향안(1916~2004)의 ‘Mont Blance Nov’이 나란히 전시돼 눈길을 끈다. 한국 추상회화의 거장 김환기는 무수한 점을 찍은 점화로 유명하다. 김환기의 아내로 기억되는 김향안의 작품에 추상적으로 부드럽게 표현된 풍경은 보는 이들에게 많은 것을 떠올리게 만든다.

이중섭과 더불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근대 서양화가 중 한명인 윤중식(1913~2012)의 ‘가을’ ‘고향’ ‘설경’도 전시해 놓았다. 프랑스의 ‘야수파’(강렬한 원색화풍)에서 영향을 받은 그가 아름다운 색감으로 표현한 고향의 정겨운 풍경 등을 볼 수 있다. 독보적 회화 세계를 펼쳤던 정욱진(1917~1990)의 ‘수안보 가는 길’과 ‘무제’ 두 작품도 있다. 그의 작품은 마치 초등학생이 그린 것처럼 단순하지만 소박한 아름다움으로 조화롭게 화면을 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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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식의 ‘고향’(사진=예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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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욱진의 ‘무제’(1979)(사진=예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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