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3 (월)

이슈 미술의 세계

‘차차차원의 틈’에 초대합니다…연출가 이진엽 “사람의 선함을 믿어요”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뮤지컬 ‘차차차원이 다다른 차원’

극장을 이승·저승의 ‘틈’으로 설정

입장 전 관객에 역할 부여 ‘참여 확장’

“어떻게 애도하나” 함께 고민

경향신문

연출가 이진엽이 17일 <차차차원이 다다른 차원>이 공연되는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서울 극장 입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경향신문

이진엽이 연출한 관객참여형 뮤지컬 <차차차원이 다다른 차원>의 한 장면. StudioAL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극장에 들어가기 전부터 뮤지컬이 시작된다. 극장은 이승과 저승 사이에서 열리는 ‘차차차원의 틈’이다. 관객은 이곳에서 헤매는 네 영혼을 위한 합동 장례식에 참석하는 조문객이다. 까마귀로 분장한 배우들이 방명록을 읽으며 관객 한 명씩 이름을 부른다. 관객들은 네 그룹으로 나뉘어 극장에 입장한다. 관객은 네 영혼이 살았던 삶을 자연스럽게 따라가면서 그들이 원하는 방법으로 다시 장례식을 치러준다.

연출가 이진엽의 관객참여형 뮤지컬 <차차차원이 다다른 차원>이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서울에서 오는 23일까지 공연한다. 기자가 관람한 지난 16일 공연 마지막 장면에서는 할아버지부터 어린이까지 눈물을 흘리고 서로 안아주기도 했다. 17일 LG아트센터서울에서 이진엽을 만났다.

“제 작품은 관객이 다른 관객에게 힘이 되는 것이 중요해요. 관객들은 공연장 밖에선 서로 낯선 사람이지만 공연장 안으로 들어오면 모두가 같은 에너지와 연대감을 느끼죠. 관객이 배우만을 보는 공연이 아니라 서로를 마주볼 수 있는 공연을 만들고 싶었어요.”

이진엽은 관객에게 역할을 준다. 관객은 공연의 일부가 되면서 공연에 더 몰입한다. <차차차원이 다다른 차원>은 배우가 관객에게 함께 춤을 추거나 노래하기를 요청할 때가 있지만 안 해도 괜찮다. 객석이 없어 바닥에 앉아 관람해도 된다. 단순한 줄거리이기 때문에 대사가 잘 들리지 않아도 공연을 이해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 기자는 소심하게 춤 비슷한 동작을 했지만 의외로 열심히 춤추는 관객이 많았다. 이진엽은 “세상에는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많다”며 “관객에게 전달하려는 것이 꼭 언어나 드라마적인 이야기를 통해야만 전달되는 건 아니다. 최소한의 이야기만으로도 관객이 공연에 공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이진엽이 연출한 관객참여형 뮤지컬 <차차차원이 다다른 차원>의 까마귀 역 배우들이 극장 로비에서 관객들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 StudioAL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경향신문

이진엽이 연출한 관객참여형 뮤지컬 <차차차원이 다다른 차원>의 한 장면. StudioAL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차차차원이 다다른 차원>은 한국 사회가 죽음을 애도하는 방법에 대해서 관객 스스로 질문을 던지게 한다. 이진엽은 지난해 외할아버지의 죽음을 겪고 이태원 참사를 다룬 기사들을 보면서 진정한 애도가 무엇인지 고민했다고 한다. 이진엽은 “떠난 사람을 함께 애도하면서 남겨진 사람은 서로를 위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외할아버지 장례식에선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상조회사의 절차에 따라 장례를 치렀어요. 조문객이 가고 나면 그제서야 가족은 홀로 죽음을 추슬러야 하는 거예요. 지금까지 죽음을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애도해야 하는지 누구와도 대화해본 적이 없었어요.”

이번 공연의 주인공 캐릭터는 ‘세계 최고령자였던 게이’ ‘평생 악플에 시달린 배우’ ‘레즈비언 부부의 자녀인 우주인’ ‘난민 소년’이다. 이진엽은 주로 장애인, 노인, 성소수자, 난민 등 사회 소수자들을 직접 만나고 이들의 삶을 작품의 주제로 삼았다. 관객이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존중하기를 바라며 서로 연결하는 공연을 만든다. 이진엽은 “제 공연에서 소수자가 계속 등장하면 관객이 한 번이라도 소수자에 관심을 갖고 존재를 알아차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제 삶의 경계 밖에 있던 사람들을 만나고 이분들이 제 삶의 경계 안으로 들어오면서 사회 현실을 알아가게 됐어요. 누군가가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갖기 전에, 성소수자가 이웃으로 살았다면 혐오가 덜하지 않았을까요.”

이진엽은 2009년 극단 ‘코끼리들이 웃는다’를 창단했다. 주물노동자들이 밀집한 서울 중구 입정동을 무대로 <입정동 바람, 바람> <동네박물관 시리즈> <두 도시 주물이야기> 등의 공연을 마을축제처럼 진행했다. 안산의 난민 공동체와 협업한 <물질>, 비시각장애인 관객이 시각장애인의 감각을 경험하는 <커뮤니티 대소동>도 있다. 이진엽은 “청계천(입정동)에서 첫 작품을 만들 때 노동자 한 분이 ‘평생 한 번도 공연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며 “ ‘극장을 찾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공연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이진엽이 연출한 관객참여형 공연 <몸의 윤리>의 한 장면. 박수환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경향신문

이진엽이 연출한 관객참여형 공연 <물질>의 한 장면. 장석현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경향신문

이진엽이 연출한 관객참여형 공연 <물질>의 한 장면. 장석현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경향신문

이진엽이 연출한 관객참여형 공연 <찰나의 찰나>의 한 장면. 박수환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극장을 찾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공연들은 길거리에서 행인들과 함께 열렸다. 이진엽은 관객이 공연에 영향을 주는 ‘관객참여형 공연’, 관객이 다양한 공간에서 관람하는 ‘장소특정형 공연’의 선두주자로 꼽힌다. 영국 노팅엄트렌트대학교에서 무대미술을 공부했지만 노팅엄 거리에서 졸업 작품 공연을 올리면서 연출로 방향을 틀었다. “관객이 배우에게 말을 걸고 함께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정말 신기하고 좋았어요. 무대가 필요 없다는 생각, 일상이 무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차차차원이 다다른 차원>은 이진엽이 세 번째로 극장 안에서 올린 공연이자 첫 번째로 도전한 뮤지컬이다. 이진엽의 작품 세계는 극장 밖에서 안으로 넓어졌고, ‘극장을 찾지 않는 사람들’의 일상도 극장 밖에서 안으로 넓어졌다. 작품에 출연했던 노동자들이 공연을 보러 여러 극장을 찾아다닌다. 시각장애인이 춤을 배운다. 뮤지컬이나 연극에 도전하기도 한다. 이진엽은 그렇게 관객이 장애인, 노인, 성소수자, 난민과 함께 어울려 춤추며 사는 세상을 바란다.

“관객참여형 공연은 배우도 관객이 용기를 내서 나서기를 기다려야 하죠. 제가 관객이 그렇게 해줄 것이라고 기대하며 공연을 만드는 이유는 모든 사람들 안에 선함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에요. 저는 사람의 선함을 믿어요. 그래서 제 공연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경향신문

연출가 이진엽이 17일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서울에서 관객참여형 뮤지컬 <차차차원이 다다른 차원>에 대해 인터뷰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 삼성 27.7% LG 24.9%… 당신의 회사 성별 격차는?
▶ 뉴스 남들보다 깊게 보려면? 점선면을 구독하세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