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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일)

이슈 미술의 세계

누구에게나 '스위트 홈'은 있는가… 거침없는 이소호의 시 세계 [책과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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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회 김수영 문학상' 이소호 시인
세 번째 시집 '홈 스위트 홈' 48편 묶어
'가족=안전' 환상 깨는 직설과 용기
한국일보

홈 스위트 홈·이소호 지음·문학과지성사 발행·188쪽·1만2,000원


"나는 아버지와 텔레비전 사이 놓인 아버지 / 다리를 넘었다 / 개념 없는 년이라고 / 어른은 넘나드는 게 아니라고 / 화를 냈다 // 텔레비전 속에는 죽음이 즐비하고 / 희망은 날씨뿐이다 // 아나운서는 코로나 이후 / 가정 폭력 지수가 늘었다고 말했다" ('손 없는 날' 일부)

홈(home·집)은 안전한 울타리인가. 이소호(35) 시인의 세 번째 시집 '홈 스위트 홈'은 가족 혹은 집에 대한 환상을 거침없이 부순다. "'집'에 있어도 '집'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책 첫 장의 이 문장은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정서적 안정과 유대감을 주는 개념으로서 집, 홈을 떠올리게 하며 이소호의 시 세계에 첫발을 내딛게 돕는다. 2014년 '현대시'로 작품 활동을 시작해 시집 '캣콜링'으로 제37회 김수영 문학상(2018)을 받은 그는 약자 혐오, 가부장제 사회를 예리하고도 해부해 왔다. 신작 시집에 실린 48편도 그 흐름에 속한다. 가부장제 속 한 개인의 균열과 고립은 섬세한 시어를 만나 공감을 얻고 울림을 준다.

가족 내 폭력과 억압의 흔적은 곳곳에 있다. "...아빠는 늘 그랬던 것처럼 내 얼굴 앞에서 거칠게 거수했고, 모서리를 향해 발길하겠다고, 겁을 줬다 단지 겁을 줬을 뿐인데 내 펜을 부러졌고, 혀로 / 휘둘렸다" ('홈 스위트 홈') 글 쓰는 딸을 멸시하는 감정을 날것 그대로 드러내는 아빠의 존재는 무력감과 좌절감을 안긴다. "집은 멀고 집은 가깝고 집은 아득하고 집은 막막하다 / 집은 답이 없다"('택시마니아')고 생각한 시적 화자인 '나'는 탈출을 꿈꾼다. "살려주세요"를 빼곡히 겹쳐 써넣은 시 '밑바닥에서'에서 절박한 바람이 느껴진다.
한국일보

이소호 시인. 문학과지성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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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적 실험이 돋보였던 전작 '불온하고 불완전한 편지'를 잇는 시도도 눈에 띈다. (2년 전 출간된 전작은 미술관 전시관을 모티프로 삼은 시집이다.) 수록시 '우리 집인 동시에 집이 아닌 것'에는 스마트폰 전화번호부 화면을 캡처한 듯한 그림이 담겨 있다. 즐겨찾기 목록에 저장된 4명은 '엉아' '채여사님' '이시진 개불년' '이경진'. "…우리 가족은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다. 높아진 서울 집값 때문에 소프트웨어로서의 가족만 남아 현재 하드웨어를 구축하는 중으로 알려져 있다…" 그림 밑에 달린 이 해설 문장은 동시대의 현실을 간략하면서도 깊숙하게 집어낸다.

시인은 '스위트 홈'(즐거운 집)이란 허상을 말하지만 그럼에도 비극은 아니다. "집에 돌아가지 않기로 했다. 그곳이 볕이 아닌 빛이 드는 곳이라고 해도." 시인의 말에서도 엿볼 수 있는, 알을 깨고 나오는 용기 덕분이다. 꼬깃꼬깃하더라도 '그 후'를 떠올릴 수 있는 빈 페이지가 아직은 남아 있다.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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