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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3 (월)

이슈 치료제 개발과 보건 기술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파고든 세균…치료제 반대론자도 있었다[전문가의 세계 - 김응빈의 미생물 ‘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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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절대 기생체’ 매독균

경향신문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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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병·이탈리아병·폴란드병·독일병…’ 전파 경로 따라 붙여진 병명엔 ‘남 탓’ 담겨…“서양에서 온 병” 조선시대 지봉유설에도 등장
1909년 독일 의사가 606번 실험 끝에 치료 물질 ‘살바르산’ 개발…부작용 잇따르자 “쾌락주의자 하늘의 징벌 마땅” 목소리도 커져

미생물 공부가 업이다 보니 관련 기사는 거의 자동반사적으로 클릭하는데, 최근 불편한 소식을 접했다. 일본 도쿄에서 젊은층을 중심으로 매독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는 보도였다. 게다가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 세계적으로 매독 발생이 증가 추세라고 한다. 매독은 선사시대부터 인류를 무던히도 괴롭혀 왔으나, 20세기 중반 이후로 페니실린을 비롯한 항생제를 앞세워 인류가 그 기세를 꺾어버린 성매개감염병이다. 매독균은 이론상으로는 박멸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인간 세상 곳곳에 은밀하게 퍼져 있다. 성욕이라는 원초적 본능에 올라탄 탓이다. 이번 도쿄 사태 역시 데이팅앱으로 만나는 불특정 다수와 성관계를 쉽게 맺어서 일어났다고 한다.

매독, 그 수많은 이름

중세 시절, 이탈리아에서는 매독을 ‘프랑스 병’, 프랑스에서는 반대로 ‘이탈리아 병’으로 불렀다. 이후 전 유럽으로 번지면서 매독은 새로운 이름을 계속 얻었다. 네덜란드에서는 ‘스페인 병’, 폴란드에서는 ‘독일 병’, 러시아에서는 ‘폴란드 병’이었고, 영국과 독일에서는 이탈리아와 마찬가지로 ‘프랑스 병’으로 통했다. 괴질을 퍼뜨린 책임을 묻는 이런 작명이 그 당시 매독의 전파 경로를 짐작게 한다. 또한, 환자 피부에 생기는 발진과 궤양이 천연두와 비교해 훨씬 더 크다고 해서 ‘큰 천연두(greatpox)’라는 이름도 붙었다. 15세기까지 서양에서 천연두는 그냥 ‘pox’(물집을 뜻하는 중세 영어 ‘pokkes’에서 유래)라고 불렀는데, 매독 유행 이후로는 ‘smallpox’가 되었다.

1530년, 르네상스 시대에 의사, 시인, 점성술사로 활동했던 이탈리아인 지롤라모 프라카스토로(Girolamo Fracastoro·1483~1553)가 ‘시필리스 또는 프랑스 병(Syphilis sive Morbus Gallicus)’이라는 제목의 라틴어 시를 발표했다. 이 시에 등장하는 양치기 소년 시필리스는 태양신 아폴로가 양떼에게 먹일 초목과 샘물을 마르게 하자 홧김에 이제부터는 아폴로가 아니라 왕을 숭배하겠다고 맹세했다. 이에 진노한 아폴로는 저주로 흉측한 병을 내렸는데, 시인은 그 병명을 ‘시필리스’라고 했다. 프라카스토로가 소년의 이름을 병명으로 택한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그리스어 ‘sys(돼지)’와 ‘philos(사랑함)’를 합친 이름을 라틴어로 옮긴 것이 ‘syphilis’임을 고려하면, 음란한 짓의 결과라고 암시하려는 의도라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신조어 시필리스는 1700년대 초반부터 널리 쓰이게 됐으며 현대 영어에서 매독을 뜻하는 단어가 되었다.

‘매독(梅毒)’ 한자를 글자 그대로 풀면, ‘매화나무 독’이라는 뜻이다. 매독 환자 피부에 헌데가 양매(소귀나무) 열매와 비슷하다고 해 중국에서 붙은 ‘양매창(楊梅瘡)’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매독에 관한 가장 오래된 문헌은 1614년 조선 중기 실학의 선구자 지봉(芝峰) 이수광이 편찬한 <지봉유설>이다. 일종의 백과사전인 이 책에 이런 기록이 있다. “천포창은 정덕년(1521년) 이후에 중국에서 전염되었는데, 중국에서도 이 질병은 예전부터 있지는 않았다. 이 질병은 서양에서 온 것이라 하는데, 훗날 전해진 질병 역시 많다.” 조선에는 천포창 이외에도 면화창, 대마풍, 번화창 등 매독을 지칭하는 이름이 많았다.

특히 당창, 당옴, 광둥창 같은 병명은 이것이 중국에서 들어왔음을 드러낸다. 일본에서도 1512년 교토에서 매독이 유행했을 당시 이를 ‘도가사(당창)’라고 불렀다. 천벌로 여겨졌던 끔찍한 병마를 남 탓으로 돌려 원망하기는 동양이건 서양이건 매한가지이다.

매독균의 정체와 기묘한 술책

우리 인간의 학명,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는 ‘지혜로운(sapiens) 사람(homo)’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런 인간의 원초적이고 은밀한 본능에 올라타는 매독균의 학명은 ‘트레포네마팔리덤(Treponema pallidum)’으로 매독 원인균이 확인된 1905년에 붙여졌다. ‘꼬인 실’과 ‘희미하다’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이름대로 이 세균은 가는 코일 모양이다. 매독균은 천천히 몸을 굽혔다가 펴면서 나선 모양으로 회전운동을 한다. 포도주 병따개가 코르크 마개를 파고드는 방식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이 덕분에 조직 침투가 쉽고 끈적한 조직액을 쉽게 헤엄쳐 다닐 수 있다.

매독균은 숙주에게 직접 위해를 가하는 독성인자를 만들지 않는다. 대신 염증 면역 반응을 유도하는 여러 물질을 생산한다. 이것이 환자 조직이 파괴되는 주된 원인이다. 아닌 척하면서 뒤로 호박씨 까는 격이다. 게다가 매독균은 감염과 거의 동시에 빠르게 혈류로 들어가, 더 깊은 조직으로 침투한다. 혈액에 들어온 매독균은 웬만해서는 면역계에 발각되지 않는다. 선천성 면역은 보통 병원성 미생물에 공통으로 나타나는 고유한 특징을 보고 공격하는데, 매독균은 특징을 드러내지 않는다. 일종의 스텔스 기능을 지닌 셈이다.

매독은 기본적으로 성관계로 감염된다. 3단계로 진행되는 감염은 단계마다 증세가 다르다. 매독균에 감염되면 평균 3주 정도 안에 성기 주변 피부에 궤양이 나타난다. 1기 매독이다. 궤양은 통증이 없고 한 달쯤 지나면 저절로 없어진다. 그러나 이 기간에 음흉한 매독균은 혈액과 림프로 들어가 온몸으로 퍼져 나간다. 감염 후 서너 달이 지나면 2기로 진입하는데, 이때부터는 피부 발진과 근육통, 눈에 염증 등이 나타나고 탈모와 피로감을 동반한다. 이런 증상은 보통 3개월 안에 없어진다. 유럽에서 처음으로 매독이 대유행한 1495년 직후에 제작된 예술 작품에도 이런 매독 징후가 생생하게 담겨 있다. 예컨대, 독일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urer·1471~1528)는 1496년 온몸에 궤양이 생긴 용병의 모습을 목판화에 담았다.

전염성이 높은 1·2기가 지나면 매독은 잠복기에 진입한다. 이 단계에서는 증상도 없고, 감염된 산모에서 태아로의 전염을 제외하면 전염성도 거의 없다. 심지어 환자 대부분은 치료 없이도 잠복기 이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잠복기 동안 치료를 받지 않으면 대략 셋에 하나꼴로 말기 매독으로 접어들게 된다. 말기 매독은 주로 신경계(뇌)와 심혈관계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

매독 치료의 역사

매독의 오랜 역사만큼이나 치료를 위한 여러 시도가 있었다. 특히 수은은 상당히 오랫동안 매독 치료에 사용되었다. 마술과 과학의 경계선을 넘나들었고 의학과 화학의 기초를 닦은 파라셀수스(Paracelsus·1493~1541)가 수은 치료를 주장했던 초기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다. 수은 치료는 환부에 바르는 방식으로도 널리 시행되었다. 이때 보통 열기를 가했다. 프랑스 화가 자크 래니에(Jacques Laniet·1620~1672)가 1659년에 선보인 그림에 훈증기 안에 들어가 있는 사람이 묘사되어 있다. 훈증기 겉에는 ‘한순간의 쾌락, 천 번의 고통’이라는 그 시절 경구가 쓰여 있다. ‘금성(비너스)과 하룻밤, 수성(수은)과 평생’도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는 문구였다. 이처럼 독성을 알지 못한 채 사용된 수은을 이용한 매독 치료는 수백년에 걸쳐 이어지다가 20세기 초반에 와서야 비로소 퇴출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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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독균 치료 화합물 살바르산을 만들어낸 파울 에를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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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의사 파울 에를리히(Paul Ehrlich·1854~1915)는 의대생 시절부터 동물 조직 염색에 남다른 관심을 두었다. 염료 종류에 따라 염색되는 생체 부위가 달랐기 때문이다. 그는 특정 조직만 착색하는 염료가 있다면, 인체 조직과는 결합하지 않고 미생물에게만 달라붙는 것도 있으리라고 확신했다. 이때부터 에를리히는 환자에게는 해가 없고 병원균만을 죽일 수 있는 ‘마법 탄환(magic bullet)’에 대해 골몰하기 시작했다.

에를리히는 1896년부터 독립적으로 연구소를 운영하면서 여러 염료가 말라리아 병원체를 비롯한 기생체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다. 그러던 중 1905년 매독균의 정체가 밝혀지자 그는 이 병원균도 연구 대상에 포함했다. 인체에 해가 없게 병원체만을 죽일 수 있는 화합물을 만들어내기로 한 에를리히는 밤낮없이 연구에 몰두했다. 표적 화합물을 하나씩 합성해 일일이 그 효과를 조사했다.

드디어 1909년 고진감래의 열매를 따는 데에 성공했다. 606번째 실험에서 최초의 마법 탄환, ‘화합물 606’을 합성해낸 것이다. 에를리히는 매독에 걸린 토끼에게 화합물 606을 주사했고, 놀라운 효과를 확인했다. 같은 해, 큰 기대 속에 매독 말기 환자 50명에게 이 신약을 투여했다. 결과는 기적과도 같았다. 화합물 606은 ‘살바르산(salvarsan)’이라고도 불린다. 각각 ‘사람을 구함’과 ‘비소’를 뜻하는 영어 단어 ‘salvation’과 ‘arsenic’의 합성어이다. 한순간 쾌락의 대가로 받았던 잔혹한 형벌에서 환자를 구해냈다는 뜻이다.

한편 살바르산 사용이 늘면서 부작용 사례도 늘어났다. 그리고 애꿎은 에를리히에게도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매독을 부도덕함과 문란함에 대한 신의 징벌이라고 여겨, 치료제 개발 자체를 반대했던 사람들의 비난은 더욱 거셌다. 에를리히는 이에 굴하지 않고, 부작용 원인을 규명해 1912년 ‘화합물 912’, ‘네오살바르산(neosalvarsan)’ 합성에 성공했다. 이 마법 탄환은 전 세계로 퍼져 나가 수많은 사람을 구했으며, 1940년대에 ‘페니실린’이라는 신무기가 나오기 전까지 병원균과의 싸움에서 위력을 발휘했다.

1821년 독일 베를린에서 <마탄의 사수>라는 오페라가 초연되었다.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하려면 사격 대회에서 우승해야만 하는 사냥꾼의 순애보를 다룬 작품이다. 주인공은 나쁜 친구의 간교한 술수에 빠져 악마에게 영혼을 팔고, 겨눈 것을 모두 맞힐 수 있는 마법 탄환, 줄여서 마탄 7발을 받는다. 사격 대회에서 백발백중이지만, 마지막 총알의 희생자가 사랑하는 여인이라는 흉계를 모른 채 말이다. 다행히 탄환은 음모를 꾸민 장본인에게 극적으로 명중한다. 오페라의 주인공은 악마가 하룻밤 만에 만들어준 마법 탄환을 쐈다. 현실 속 에를리히는 오랜 세월 각고의 노력으로 자기가 만든 과학의 탄환으로 매독균을 정확히 맞혔다. 에를리히야말로 진정한 ‘마탄의 사수’가 아닐까?

매독균은 ‘절대 기생체’다. 다시 말해 생존에 필요한 여러 물질을 전적으로 숙주에서 얻어야 하므로 숙주 밖에서는 살 수가 없다는 얘기다. 우리로서는 다행이다. 안전한 성생활을 하면 매독 감염 위험을 많은 부분 차단할 수 있으니 말이다. 매독을 비롯한 성매개감염병 예방과 퇴치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건전하고 안전한 성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그리고 만약 감염이 의심된다면 즉시 검사를 받아야 한다. 감염 확인이 빠를수록 치료 관리도 수월해지고, 전염을 예방할 수 있다.

김응빈 교수

경향신문

1998년부터 연세대학교에서 미생물을 연구하며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연세대 입학처장과 생명시스템대학장 등을 역임했고, 지은 책으로 <미생물과의 마이크로 인터뷰> <술, 질병, 전쟁: 미생물이 만든 역사> <온통 미생물 세상입니다> <생명과학, 바이오테크로 날개 달다> <미생물에게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운다> <나는 미생물과 산다> 등이 있다. 또한 유튜브 채널 ‘김응빈의 응생물학’과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파트너 채널 ‘김응빈의 생물 수다’를 운영 중이다. 유튜브 채널 링크: https://www.youtube.com/@kimyesbio/featured. 네이버 채널 링크: https://contents.premium.naver.com/biotalkkim/knowledge


김응빈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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