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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일)

이슈 미술의 세계

하늘 탐구했듯 광활한 바다서도 위안을 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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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Q.O.’ 새 연작… 바이런 킴 개인전

바다 대적하는 세 영웅 상상력 자극

팬데믹 기간 물과 가까워지며 힐링

수영하며 본 하늘·수면·물속 장면 등

상·중·하 3장의 캔버스에 느낌 담아

“바다 수영을 하다 보면 시야에 하늘이 가장 많이 들어온다. 다음으로 물속이 자주 보인다. 몸이 내려갔다 올라갔다 하면서 보이는 수면의 모습은 그다음 차지다.”

작가 바이런 킴의 바다(물) 연작 ‘B.Q.O.’ 시리즈는 상·중·하 3장의 캔버스 패널이 하나의 작품을 이룬다. 가장 위 화면은 바다에서 수영하면서 보게 되는 하늘이고, 가운데 화면은 물의 표면과 거기에 반사되는 빛의 모습이다. 그리고 가장 아래 화면은 물속 장면과 그곳에서 얻는 느낌이다. 3장의 캔버스 크기가 똑같아 보이지만 작가의 말에 힌트가 있듯, 28·26·28인치로 가운데 화면이 2인치 작다. 그러나 잘 드러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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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런 킴이 자주 들르는 캘리포니아대학교 샌디에이고캠퍼스 실내 수영장의 느낌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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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Q.O.’라는 연작 타이틀은 바다를 배경 삼은 소설의 세 주인공 이름에서 따왔다. 스타니스와프 렘의 ‘솔라리스’ 주인공 버튼의 B, 허먼 멜빌의 ‘모비 딕’ 중 퀴케그에서 Q,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 오디세우스의 O를 가져온 것. 각 서사에서 바다와 씨름하는 이 세 명의 영웅은 작가가 2020년 1월 캡티바섬에 머물며 이 소설들을 다시 읽는 과정에서 그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미국 플로리다 남부 외딴섬에서 작가는 카약을 타거나 수영을 하고, 패들보드 위에서 한 달을 보냈다. 이러한 환경에 놓인 작가에게 소설 속 세 인물은 바다가 인간의 고군분투를 은유하는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새삼 상기시켰다.

부드러운 변화를 꾀하는 색조와 섬세한 붓질은 추상화의 감각뿐 아니라 물질적 특정성과 물의 분위기를 환기시킨다. 초창기 ‘B.Q.O.’ 작품들이 바다에 대적하는 인간의 신화적 판타지에 집중했다면, 최신 작품들은 물에 대한 보다 직접적인 탐구에 초점을 맞춘다. 이는 팬데믹(감염병 세계적 대유행) 봉쇄 기간 중 수영이라는 단순하고도 구체적인 활동에 집중했던 작가의 경험에서 비롯된다.

코로나19 기간 중 1년의 시간을 작가는 가족들과 함께 샌디에이고에서 보냈다. 샌디에이고는 그가 어릴 때 바다를 처음 만났던 곳이자 그의 노부모가 거주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그곳으로 돌아간 작가는 다시 물과 가까워지면서 그 광활한 바다에서 위안을 찾게 되었다. 이후 작가는 태평양 연안의 라호이아(La Jolla) 해변에서부터 코네티컷주의 토비 연못, 뉴욕과 샌디에이고의 실내 수영장들에 이르기까지, 물에 이끌리며 물의 표면을 관찰하는 행위와 잠수 사이에서 줄타기하면서 물에 대한 스스로의 친근감을 고찰해왔다. 이렇게 작가는 자신의 새로운 관심사를 오랜 고민과 접목한 끝에 자연 세계와 신체를 주요 소재로 한 작업물을 내놓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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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호이아 지역은 오전에 안개가 자욱한 순간이 많다. 위와 가운데 화면은 안개 탓에 하늘과 수면이 잘 보이지 않는 상황을 묘사한 것이다. 아래는 수중 또한 어두울 것이라 생각했지만 상상 밖의 장면이 펼쳐질 때가 있는데, 그때의 ‘느낌’과 어울리는 색을 칠한 것이다. 국제갤러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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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지난 22년 동안 매주 일요일 하늘을 그려온 ‘선데이 페인팅’ 연작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하늘 그림과 함께 일기 몇 줄이 적혀 있는데, 이로써 그의 작품은 개인적 기록임과 동시에 하늘을 경험하는 일이 광활한 거리로 떨어진 존재들을 연결할 수 있는 매개이자 명상적 고찰임을 보여준다.

그의 작업 세계에서 돌파구적 지위를 갖게 된 ‘제유법(Synecdoche)’(1991∼) 연작 또한 유명하다. 동일한 사이즈 패널 500여개로 구성된 작업에서 단색조의 화면들은 각기 한 인물의 고유한 피부색을 재현한다. 이같이 파편화한 신체의 미니멀한 표현 안에서 초상화의 역사뿐 아니라 재현과 정체성 등의 문제를 감각적으로 서술한다.

그의 ‘제유법’과 ‘선데이 페인팅’이 그러하듯 ‘B.Q.O.’ 역시 결말 없이 진행되는 연작이다. 작가는 전체에 대한 관계성을 이야기한다. 내가 이 세상 속 나머지 사람들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리고 우리 모두는 우리보다 거대한 전체와 어떻게 연계되는지. 그의 작품들은 가장 사적인 경험에서부터 인류와 자연 간의 광활한 연결에 이르기까지 양 극단을 아우르며 명상의 기회를 제공하고, 자연과 우리가 맺는 관계에 대해 다양한 질문을 건네고 있다.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오는 23일까지 선보인다. 서울 코엑스에서 오는 16일까지 열리는 ‘2023 화랑미술제’에서도 만날 수 있다.

부산=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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