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25 (수)

이슈 뮤지컬과 오페라

어렵지도 지루하지도 않은 고전의 힘…연극 '파우스트'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리뷰] 박해수·유인촌 명연기에 대형 LED 화면 등 감각적 연출

뉴스1

연극 '파우스트' 공연 모습. (LG아트센터, 샘컴퍼니, ARTEC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뉴스1) 조재현 기자 = "저랑 내기하실래요. 장담하는데 주님께선 그자를 잃게 될 것입니다."

신(神)과 천사들이 모인 자리, 악마 메피스토가 발언권을 요구한다. 마이크를 쥔 그는 신에게 제안한다. 모든 지식을 섭렵하고도 회의감에 빠져 생을 마감하려던 신의 추종자 파우스트를 놓고 내기를 하자고. 메피스토의 말투와 눈빛엔 자신감과 장난기가 넘친다.

이후 메피스토는 지식의 허망함에 괴로워하는 노학자 파우스트 앞에 검은 개로 변신해 나타난다. 파우스트 박사는 메피스토가 인생의 쾌락을 알려주는 대가로 영혼을 요구하자 이를 수락한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60여년에 걸쳐 쓴 희곡 '파우스트'의 도입부는 쉽게 읽히지 않는다. 어려운 데다 방대하기까지 한 노학자 파우스트의 대사에 좀처럼 공감이 되지 않아서다.

하지만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에서 막을 올린 연극 '파우스트'는 단번에 관객의 눈길을 잡아끈다. 난해했던 장면이 물 흐르듯 눈앞에서 펼쳐지니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밑그림만 있던 도화지에 배우들의 생생한 연기를 보며 직접 색을 채워 넣는 듯한 기분이다. '코리올라누스' '페리클레스' '페르귄트' 등 고전을 감각적인 무대로 선보여온 연출가 양정웅이 연출을 맡았다.

뉴스1

연극 '파우스트' 공연 모습. (LG아트센터, 샘컴퍼니, ARTEC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파우스트'의 내용은 크게 비극 1·2부로 구성됐다. 연극은 1부를 다룬다. 메피스토와 계약을 맺은 파우스트 박사는 마녀의 영약을 마시고 젊어진 뒤 아름다운 여성 그레첸과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그레첸은 메피스토의 농간에 빠져 아이를 살해한 뒤 감옥에 갇혀 생을 마감하게 된다.

메피스토 역의 박해수와 늙은 파우스트 역의 유인촌이 펼치는 연기는 단연 압권이다. 특히 박해수의 메피스토는 매력적이다. 친구나 직장 선배 같은 모습으로 파우스트와 동행하면서도 악마의 본분을 충실히 지킨다. 흡사 맹수 같은 모습으로 무대를 휘저을 땐 카리스마가 폭발한다.

메피스토의 캐릭터를 악마라는 존재로만 만들지 말고 최고의 보호자나 보험설계사, 보증인 등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인물로 표현하면 어떻겠냐는 양 연출의 디렉션을 완벽히 소화한 모습이다.

뉴스1

연극 '파우스트' 공연 모습. (LG아트센터, 샘컴퍼니, ARTEC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베테랑 배우 유인촌이 선보이는 파우스트 박사도 관객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파우스트가 가졌을 무력감을 차분한 어조로 충실하게 전달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극에 절로 빠져든다. 젊은 파우수트 역은 박은석, 그레첸 역은 원진아가 연기한다.

양 연출은 무대 뒤 대형 발광다이오드(LED) 화면을 세워 보는 맛을 더했다. LED 화면을 통한 다채로운 연출은 고전에 대한 부담감을 낮춘다. 시시각각 변하는 배경도 작품 이해를 돕는다.

이 화면을 통해 구현되는 그레첸의 방도 눈길을 끈다. 그레첸을 유혹하기 위해 파우스트와 메피스토가 그레첸의 방에 몰래 들어가 장롱에 보석함을 넣어두는 장면은 별도 세트에서 연기하는 모습이 실시간 송출되는 것이다.

뉴스1

연극 '파우스트' 공연 모습. (LG아트센터, 샘컴퍼니, ARTEC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일부 장면에선 배우들이 객석 통로를 통해 등장하기도 한다. 165분이란 러닝 타임에도 관객들은 지루할 틈이 없다. 다만, 원작을 읽지 않은 관객이라면 마지막 그레첸의 급격한 심경 변화는 다소 낯설 수 있다.

'파우스트'는 200여년 전 완성된 작품이지만 인간의 욕망을 근원적으로 다룬다. 동시대 관객들이 공연장을 찾는 이유다. 이번 공연은 어려운 고전을 가벼운 마음으로 접할 기회이기도 하다. '하루빨리 2부도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떠오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공연은 이달 29일까지.

뉴스1

연극 '파우스트' 공연 모습. (LG아트센터, 샘컴퍼니, ARTEC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cho84@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