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국가등록문화재 심의 중
김인겸, 일동장유가도 복원
조선 제9대 주미공사 이범진이 쓴 '미사일록' 본문. 행정안전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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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묘하게 변론하면서 상대방을 비평하니, (미국) 부통령은 조용히 앉아서 듣고 많은 사람의 논의를 취한다. 진실로 좋은 법이고 아름다운 규정이다.
조선시대 9대 주미공사 이범진
1896~1900년 조선 제9대 주미공사를 지낸 이범진(1852~1911)이 미국 의회 토론 과정을 지켜본 뒤 외교일기 ‘미사일록’에 남긴 평가다. 1896년 10월 14일 주미공사로 부임해 고종의 국서를 전달한 이범진에게 그로버 클리블랜드(22·24대) 미국 대통령이 “처음 조약을 맺을 때처럼 한결같이 영구히 친목하기를 바란다”라고 화답한 내용도 책에 담겨 있다.
이범진은 클리블랜드 대통령을 5차례 접견하고 우정장관과 탁지대신을 만나는 등 미국 정치인과 활발히 교류했다. 미국 워싱턴에서 학생들이 등교하는 광경을 보고 선진 제도를 부러워했다. 19세기 말 한미 외교사 초창기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귀한 기록이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은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미사일록’ 복원을 완료했다고 9일 밝혔다. ‘미사일록’은 이범진이 주미공사로 임명된 1896년 6월 20일부터 이듬해 1월 31일까지 주미 외교활동을 정리한 업무일지를 당시 주미공사관 서기관 이건호가 옮겨 적은 원본이다. 부록에는 1897년 1월 21일 미국 대통령 관저에서 열린 연회 좌석 배치도와 일상 대화를 영어, 한자, 한글 순으로 표기한 영어 연습장이 실려 있다.
이범진은 1896년 아관파천을 성공시킨 주역이다. 주미공사에 이어 1900~1910년 주러시아공사를 지냈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된 후 외교관 소환을 거부하고 러시아에 남아 독립운동을 지원했지만 1911년 망국의 한을 품고 자결했다. 이범진 차남이 고종이 1907년 이준 · 이상설과 함께 네덜란드 헤이그 2차 만국평화회의에 일본의 침략행위를 호소하기 위해 보낸 헤이그특사 이위종이다.
조선 제9대 주미공사 이범진이 쓴 외교일기 '미사일록'을 복원하는 과정. 행정안전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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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일록’은 물에 젖어 글자가 번지고 곰팡이가 피는 등 내용을 판독하기 어려울 정도로 훼손된 상태였다. 국가기록원은 1년에 걸쳐 오염물질을 제거한 후 결실부를 보강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현재 ‘미사일록’은 경기도 국가등록문화재 심의를 마치고 문화재청 심의를 앞두고 있다.
국가기록원은 조선 숙종 때 문신 퇴석 김인겸(1707~1772)이 계미통신사의 일원으로 일본에서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 국문가사 ‘일동장유가’도 복원했다. ‘일동장유가’는 지난해 경기도 유형문화재 지정 예고 후 다음 달 지정 공표된다. 복원된 ‘미사일록’과 ‘일동장유가’는 10일 소장처인 단국대에 전달될 예정이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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