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49세~최연소 20세 창작자
K팝 작곡가 꿈꾸는 98명의 송캠프
작곡가 김도훈ㆍ맥스송ㆍ브라더수
업계 최고 마스터와 멘토 다수 참여
K팝 작업 과정 A~Z까지 속성 과외
5인 1조 팀별로 K팝 신곡 창작
음악 동료 만나 교류의 장 마련
피드백 받고 판매 기회까지 제공
국내 최대 규모로 열린 ‘원더월 디 에코 송캠프’ [원더월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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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양평)=고승희 기자] “2013년경에 유럽에서 2NE1의 ‘내가 제일 잘 나가’를 비롯해 빅뱅, 소녀시대와 같은 K팝이 굉장히 인기를 끌었어요. 그 때 K팝을 처음 듣고, K팝 작곡가를 꿈꾸게 됐어요.”
포르투갈에서 온 작곡가 누누(27) 씨는 한국에 정착, 음악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하나의 콘셉트를 가지고 노래, 퍼포먼스, 뮤직비디오의 스토리텔링이 이어지는 K팝은 어느 요소 하나 소홀할 수 없는 장르로, 굉장한 에너지를 발산한다”고 말한다. 빅뱅, 소녀시대 등 2010년 이후 데뷔한 2세대 그룹 시절부터 K팝을 들어온 그는 하루하루 작곡가로의 꿈에 다가서고 있다. 지금은 “노래, 랩, 퍼포먼스 등 모든 면에서 다재다능한 NCT의 곡을 쓰는 것”이 목표다.
평균 연령 약 28세, ‘제2의 방시혁’을 꿈꾸는 미래의 K팝 작곡가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지난달 31일부터 2일까지 경기도 양평에서 국내 최대 규모로 열린 ‘원더월 디 에코 송캠프’를 통해서다.
원더월 디 에코 송 캠프의 마스터 클래스에 참여한 마마무 소속사 대표인 김도훈 작곡가 [원더월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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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고령 49세, 최연소 20세…미래의 방시혁 모였다
K팝 송캠프의 시초는 SM엔터테인먼트로 볼 수 있다. 국내외 작곡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소속 아티스트들에게 딱 맞는 음악을 발굴해온 SM 송캠프는 K팝 전반으로 확산됐다. 그간의 송캠프는 국내 굴지의 가요기획사들이 프로 작곡가를 대상으로 소규모 형태로 진행해왔다. 때문에 이번 송캠프처럼 프로와 아마추어를 아우르는 약 100명의 작곡가들이 참여한 경우는 흔치 않다.
기회는 열려있으나, 모두에게 주어진 것은 아니다. 이번 송캠프에선 사전에 참가자를 모집하며 기존에 작업한 ‘데모 음악’(demo music, 정식으로 제작하기 전에 샘플로 제작한 음악)을 제출, 참가자를 추렸다. 전체 지원자(102명) 중 98명이 참여했고, K팝 작업 시스템에 맞춰 트랙메이커(반주부터 편곡까지 음악의 뼈대를 만드는 작곡가 겸 프로듀서), 탑라이너(멜로디를 만드는 작곡가), 올라운더(모든 분야를 다 맡는 사람)의 파트로 분류했다. 연령대도 다양하다. 최연소 20세부터 최연장자인 49세에 이르는 작곡가들이 송캠프를 통해 만났다. 외국인은 포르투갈 출신 누누 씨가 유일했다.
원더월 디 에코 송캠프 참가자들이 팀을 이뤄 곡을 쓰고, 멘토들에게 피드백을 받고 있다. [원더월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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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캠프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마스터 클래스의 Q&A에 참여하는 등 프라이빗 세션이 포함된 VIP 참가자는 90만원, 일반의 경우 70만원의 참가비용이 있다. 그럼에도 100명에 가까운 참가자가 모인 것은 송캠프 자체가 ‘배움’이자 ‘기회의 장’이기 때문이다.
에티(ETTI)라는 이름으로도 활동 중인 작곡가 황우태(23) 씨는 “기존의 송캠프가 기획사에서 프로 작곡가들과 협업하기 위해 진행해왔던 지라 아마추어들은 참여 자체가 어려웠다”며 “송캠프에 참여해 다른 사람들과 곡 작업을 진행하며 네트워크를 쌓고, 퍼블리싱의 계약 기회도 생긴다는 장점들이 많아 지원하게 됐다”고 말했다.
송캠프에는 K팝 작곡가로의 미래를 꿈꾸며 지원한 참가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양한 장르를 선호하는 작곡가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발라드, 보사노바, 알앤비, 힙합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주력 분야가 달랐다. 래퍼를 꿈꾸며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음악을 해온 성원준(20) 씨는 “지금의 K팝은 장르의 경계가 불분명하고 여러 장르가 혼합돼있다”며 “특정 장르보다 음악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경험을 통해 한국 음악신에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지원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도훈 작곡가는 “K팝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은 키워드 찾기”라며 “대중의 취향을 분석하기 위해 이 시대의 사람들이 가장 많은 누리는 공간, 즉 포털 SNS 유튜브 등에 떠오르는 인기 검색어나 유행어를 분석하며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원더월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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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타강사들의 노하우 전수…K팝 시작은 ‘콘셉트 잡기’
98명의 참가자들은 2박 3일의 송캠프 동안 K팝의 A부터 Z까지의 모든 것을 ‘속전속결’로 익혔다. ‘K팝 작곡’의 기본 방향성을 파악하고, K팝 ‘작업 시스템’을 경험하는 것은 송캠프에 참여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특히 현장에 함께 한 멘토들, 마스터 클래스에 함께 한 업계 최고들의 ‘실전 노하우’는 인생 교과서였다.
송캠프의 마스터클래스는 ‘일타강사의 비법 전수’와도 같았다. K팝 탄생은 ‘키워드 찾기’와 ‘콘셉트 잡기’에서 시작된다.
마마무의 소속사인 RBW 대표이자 거미 ‘친구라도 될 걸 그랬어’, 다비치 ‘8282’, 방탄소년단 ‘피 땀 눈물’ 등 숱한 히트곡을 낸 김도훈 작곡가는 “K팝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은 키워드 찾기”라고 강조했다.
많은 음악가들이 ‘대중성과 독창성’ 사이에서 고민한다. 김도훈 작곡가는 그러나 “대중성만 강조하면 뻔해지고, 너무 독창적이면 이상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며 “대중성과 독창성이 어우러진 것이 대중적인 음악”이라고 강조했다.
원더월 디 에코 송캠프 참가자들이 팀을 이뤄 곡을 쓰고, 멘토들에게 피드백을 받고 있다. [원더월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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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팔리는 곡을 만들기 위한 첫 단추는 “콘셉트 잡기”다. 하이브와 CJ E&M 등 대형기획사 A&R 출신의 김은정은 마스터 클래스를 통해 “곡 콘셉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하나의 키워드’를 정해 콘셉트의 방향성을 정하는 것, ‘타깃 그룹’을 정하고 음악을 만드는 것이 ‘잘 팔리는 곡’, ‘선택받는 곡’에 가까워지는 지름길이다. 김도훈 작곡가 역시 “좋은 노래를 판단하는 데에는 불과 5초 밖에 걸리지 않는다”며 “대중의 취향을 연구할 것이 아니라 어느 기획사에 소속된 어떤 가수, 이 가수가 어떤 노래로 성공했는지에 대한 포인트를 연구하는 것이 더 많이 선택받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실전 테크닉은 업계 마스터들에게서 나왔다. 현재 스타쉽 엔터테인먼트에 소속된 브라더수는 SM, YG, JYP, 하이브 등 빅4 기획사와 곡 작업을 진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후킹한 멜로디 라인을 만드는 법’을 들려줬다. 레드벨벳, 태민, 메이브의 곡을 만든 맥스송은 실제 작업기를 공개하며 “작곡가의 색깔을 분명히 담아 트랙의 전체 이미지를 만들 것”을 강조했다. 김도훈 작곡가는 ‘현실 조언’을 쏟아냈다. “노래 잘 하는 동료, 랩 잘 하는 친구들과의 교류”가 데모 음악의 퀄리티를 높이는 길이라는 꿀팁도 전해줬다. 최근 해외 작곡가들은 데모를 보내며 영상까지 함께 제작해 보내 경쟁력을 높인다.
업계 선배들의 조언은 막연했던 꿈과 막막한 현실을 향해 적극적으로 내딛게 한 동력이 됐다. 맥스송은 이날 후배들에게 “중요한 것은 나의 장점을 녹여 나만의 음악을 만드는 것이다. 스스로 무엇을 잘 하는지, 어떤 것을 잘 표현할 수 있는지 경험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누구나 처음부터 베테랑이 될 수는 없다. 나에 대한 의심이 반복될 땐 자책감이 들지만 그럼에도 반복된 학습을 경험하며 자연스럽게 나의 것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원하는 길로 이끈다”는 말로 응원을 건넸다.
국내 최대 규모로 열린 ‘원더월 디 에코 송캠프’에 참여한 포르투갈 출신 작곡가 누누와 황우태, 박현호, 성원준이 한 팀을 이뤄 곡 작업을 진행 중이다. 황우태와 누누 씨는 “K팝 작업을 하다 보면 가이드 보컬부터 트랙 메이커, 탑라이너를 찾아야 할 일이 생기는데, 송캠프를 통해 각자의 스타일에 두각을 보인 동료를 만나 서로 도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원더월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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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팝 생태계 익힌 ‘협업 과정’…동료 만든 교류의 장
K팝은 한 사람의 힘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하나의 노래엔 작곡자의 이름만 해도 대여섯 명이 올라있다. 최근 발매한 스타쉽 엔터테인먼트 소속 4세대 걸그룹 아이브의 ‘키치’ 작곡가엔 라이언 전을 포함한 6명, 편곡에만 4명이 참여했다.
나날이 분업화되는 K팝 작업 시스템을 익히기에도 송캠프는 안성맞춤이었다. 혼자 음악을 해온 작곡가들에게 ‘협업’의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K팝 송캠프를 통해 많은 작업을 해온 맥스송은 “송캠프의 큰 장점 중 하나는 다양한 파트너와 협업하며 상대방의 감성을 느낀다는 점이다. 상대의 색깔과 내 색깔이 융화를 이루며 하나의 완벽한 콘텐츠를 만들어갈 때 짜릿한 쾌감이 있다”고 말했다.
송캠프에서도 98명의 참가자는 각각의 팀을 이뤄 K팝 신곡 작업을 진행했다. 짧은 시간의 곡 작업인 만큼 쉽지는 않았다. 곡을 만드는 과정에선 멘토들의 조언과 업계 최고들이 참여한 마스터클래스가 큰 도움이 됐다. 황우태 씨는 “첫 날엔 새벽 12~1시까지 곡이 나오지 않아 고민이 많았다”며 “트랙메이커 맥스송, 탑라이너 브라더수와 같은 프로 작곡가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 도움이 많이 됐다”고 말했다. 성원준 씨는 “멘토들이 자신의 곡을 만들듯이 조언해줬다. 일대일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음악의 방향성을 잡고 좋은 결과를 내게 해줬다”고 말했다.
짧은 기간의 송캠프는 각기 다른 분야에 강점을 가진 동료를 만나는 교류의 장이었다. 황우태와 누누 씨는 “K팝 작업을 하다 보면 가이드 보컬부터 트랙 메이커, 탑라이너를 찾아야 할 일이 생기는데, 송캠프를 통해 각자의 스타일에 두각을 보인 동료를 만나 서로 도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송캠프에 트랙메이커와 톱라이너로 지원한 박현호(22) 씨는 “메이저 작곡가들은 당연히 실력이 뛰어나지만, 아마추어 중에서도 실력이 좋은데 곡을 파는 방법을 몰라 데뷔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이 봤다”며 “송캠프를 통해 실력있는 다양한 작곡가와 교류하고 협업할 수 있는 자리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지원했다”고 말했다.
송캠프에서 조별로 만든 곡은 ‘리스닝 파티’를 통해 다함께 들어본 뒤 멘토들의 평가를 받는 자리를 마련했다. 송캠프에서 한 팀으로 만난 장재혁, 승희, 장 원, 유연우, 여백 씨는 여자 아이돌 중 마마를 타깃 그룹으로 한 ‘플레이 야’라는 음악을 완성했다. “이지 리스닝 장르로 편안하면서도 신나는 느낌의 곡”이었다. 김은정 멘토는 “봄바람이 불 때 듣기 좋은 음악이었으나, 퍼포먼스가 잘 붙지 않는 음악이라 아쉬움이 있었다”며 “다만 전체 트랙 안에선 듣기 좋은 음악으로 잘 어울렸다”는 평가를 들려줬다.
총 20팀의 곡 가운데 판매로 이어진 곡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다만 원더월 관계자는 “판매 가능성이 높은 곡이 다수 있었다. 멘토들 역시 완성된 데모곡 수준으로 기획사에 제출할 만한 곡들이 많았다는 피드백을 줬다”며 “일주일 간의 수정 기간을 거쳐 완성도를 높인 뒤 퍼블리싱으로 연결할 예정이다”라고 귀띔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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