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주총을 앞두고 현직 사외이사이자 KT 이사회 의장인 강충구 고려대 교수와 표현명 전 롯데렌탈 대표 등 3인은 재선임을 포기하고 동반사퇴했다.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지분 10.12%)이 표 사외이사 후보에 반대입장을 밝힌 여파로 분석된다. 사외이사 8명은 앞서 지난 1월 참여정부 출신인 이강철 이사 사임을 필두로 줄사퇴했다. 사내이사는 아예 공석이다. 구현모 전 대표가 임기 만료 전 사퇴했고, 윤경림 차기 대표이사 후보도 정치권 압박을 못 견디고 물러났다. 당분간 박종욱 경영기획부문장이 대표이사 직무대행으로 임시 경영체제를 꾸린다지만, 지배구조 불안과 공백이 장기화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KT를 디지털플랫폼 기업으로 전환하기 위한 계획은 사실상 전면 중단되고, 혁신도 어렵게 됐다.
이사회 와해 사태는 구 전 대표의 ‘셀프 연임’ 논란부터 시작됐다. 그러나 더 큰 책임은 정치권에 있다. 대표 후보 심사에서 전문성 없는 친여 인사가 탈락하고 내부 인사가 선정되자 국민의힘은 KT를 ‘이권 카르텔’로 몰아붙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초 “민영화되면서 소유가 분산된 기업들은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가 작동돼야 한다”고 말해 국민연금을 통한 통제·외압의 길을 열어줬다. 검찰은 구 전 대표와 윤 후보를 일감 몰아주기 및 배임 혐의로 수사 중이다. 민간기업을 ‘봉토’로 여기는 정치권의 구시대적 봉건주의에 KT 주가는 전년 고점 대비 20% 하락했다. 정치가 경제를 살리긴커녕 멍들게 하고 있다.
‘낙하산 인사’ 갈등으로 촉발된 경영진 재편 작업은 다시 원점에서 시작하게 됐다. KT 새 대표이사 공모에 여권 인사들이 대거 지원한 상태다. 소액주주들은 비전문가 정치인을 막기 위한 ‘낙하산 금지’ 정관 조항을 유지·강화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벌어지는 자리 나눠먹기에 민간기업이 끌려다니는 악습을 이제는 끊어야 한다. 정치권도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자초하는 이권 챙기기를 그만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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