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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생애 첫 장례식, 첫 바다도 갔다…리프트 달린 이 버스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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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10년째 장애인관광버스 여행사 '에이블투어'를 이끌어오고 있는 박창용 대표는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특별한 사명감을 가지고 해온 일은 아니다. 살아오다 보니까 이 일을 하게 된 것 뿐”이라며 웃어보였다.. 우상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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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멀리까지 간 건 살면서 처음이네. 벚꽃도 보고, ‘송가인이어라~’ 하는 가수 집도 보고.”

지난 29일 오후 6시쯤 경기도 오산시 오산종합체육공원 주차장으로 관광버스 한 대가 들어서고, 왁자지껄한 수다와 함께 승객들이 내렸다. 겉보기엔 평범한 버스였지만, 손님들이 내리는 과정이 여느 관광버스와는 달랐다. 버스 앞 부분의 출입문 대신 가운데에서 ‘덜커덩’ 소리와 함께 커다란 문이 열렸고, 짐칸이 있을 아래 공간에선 또 다른 받침대가 튀어나왔다. 서서히 펼쳐진 받침대는 성인 몇명이 올라갈 수 있을 만한 크기의 리프트로 변했다. 휠체어를 탄 버스 승객들은 ‘윙’ 소리와 함께, 이곳을 통해 바닥에 내려왔다. 26명의 승객이 모두 내리는 데까지 15분이란 시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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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관광버스에서 휠체어 리프트가 올라가고 있다. 휠체어 리프트는 100kg이 넘는 전동 휠체어도 싣고 내릴 수 있게 설계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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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관광버스 내부 모습. 중간 좌석을 떼어내고 휠체어를 고박할 수 있는 장치와 레일을 설치해두었다. 일반석 21석, 휠체어는 6대 들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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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는 오산중증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속 회원들이 타고 있었다. 2박 3일간 신안·진도·해남 관광을 마치고 오산으로 돌아왔다. 7명의 발달장애인과 3명의 지체장애인, 2명의 뇌변병장애인을 포함해 26명이 참가한 대규모 관광이자, 참가자 대부분에겐 ‘생애 첫 장거리여행’으로 기억될 관광이었다. 20대에 교통사고를 당해 지체장애인이 된 오은숙 센터장도 여행에 함께했다. 천천히 버스에서 내린 그는 들뜬 얼굴로 “태어나서 이렇게 장거리 여행을 간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신안에 있는 퍼플섬은 정말 ‘보라보라’해서 놀랐어요. 남쪽에는 벌써 봄이 왔더라고요.”라고 말했다.

여행 내내 이들의 다리가 되어준 관광버스는 박창용(63) 대표가 운영하는 ‘에이블투어’ 소속 버스다. ‘장애인들도 원하는 곳으로 여행을 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언뜻 당연하지만 당시엔 불가능했던 생각에서 시작된 사업은 올해로 10년차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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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블투어' 박창용 대표는 어린 시설을 시설에서 보냈다. 이후 전국 단위 복지단체에서 총무를 맡으며 사회복지 영역에 발을 들이게 됐다. 우상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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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태어난 박 대표는 2살 때부터 아동보호시설에서 자랐다. 성인이 되어서는 서울에서 사회복지시설 관리직으로 일하며 장애인들을 자주 접했다. “인터넷도 없던 시절에는 장애인들이 세상과 만날 창구가 없었어요. 가족들이 돈 벌러 나가면 평생 집 안에서 애국가가 나올 때까지 온종일 TV만 보는 게 전부인 분들도 있었죠. 그게 안타까웠습니다.”

박 대표는 ‘뭐라도 해보자’는 심정으로 직접 나섰다. 교회를 찾아다니며 후원금을 모아 다마스 한 대를 샀다. 그게 시작이었다. 박 대표는 이후 직접 장애인들을 업어 다마스에 태우고, 운전대를 잡은 채 함께 전국을 누볐다. 그러나 소형 승합차 한대로는 아쉬움이 컸다. “리프트를 설치할 수 없다보니 제가 한 사람씩 업어서 차에 태워야 하는데, 여성 장애인들은 업히는 걸 수치스러워하시기도 했어요. 여행을 계속하려면 리프트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벽에 부딪쳤다. 휠체어용 리프트를 설치하는데만 6000~7000만원가량이 들었고, 리프트 설비가 있는 대형버스는 당시 가격이 1억 7000만원(현재는 3억원)에 달했다. 에이블투어 설립 전인 2009년까지만 해도 장애인을 위한 관광버스는 전국에 단 한대, 대한체육회의 장애인국가대표선수단 차량밖에 없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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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블투어' 박창용 대표는 “작은 차에 장애인분을 태워 속초에 다녀온 적이 있다. '30년 만에 바다를 처음 본다'고 하시더라,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친구들이랑 함께 갈 수 있게 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게 '에이블투어'의 시작이 됐다”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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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박 대표는 다마스를 위해 교회 문을 두드렸던 때처럼, 다시 민간 장애인용 관광버스를 만들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 문을 두드렸다. “버스는 우리가 살 테니까 리프트 설치 비용만 지원해 달라고, 이 버스를 타고 장애인들이 전국의 아름다운 유적지를 방문하겠다고 설득했죠.” 그는 웃으며 당시를 떠올렸다. 박 대표의 노크가 또 한번 통했던 것이다. 요청이 받아들여져 2009년 국내 최초의 민간 장애인 관광버스가 탄생하게 된다. “장애인들도 단체 여행을 갈 수 있게 됐어요. 너무 편리하잖아요. 다들 기분 좋아하시니까 저도 덩달아 좋았죠.”

그렇게 여행은 계속됐다. 현재 에이블투어에 소속된 버스는 모두 15대다. 서울시에서 위탁받아 운영 중인 버스가 7대 (중형 6대, 대형 1대), 자체 소유한 버스는 8대다. 에이블투어 소유 버스 중 1대는 경기도가 대여 중이며 또 1대는 청와대 개방 이후 장애인들의 청와대 투어 사업에 투입된 상태다.

첫 장애인 관광버스를 갖게 된 후 지금까지 박 대표는 장애인 관광버스를 타고 함께 전국을 누볐다. 하지만 여전히 조심스럽다. 여행 참가자들이 눈치 보지 않도록, 여행만 즐길 수 있도록 세심한 부분을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장애인분들은 화장실 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거든요. 화장실 한 번 가면 스케줄이 자꾸 늦어지니까 미안한 마음에 물을 아예 안 드신 분이 계셨어요. 이틀째에 탈수증세를 보이며 쓰러져서 병원으로 실려 갔죠. 이 사건을 겪고 난 후로는 ‘휴게실 가는 거 눈치 보지 말라’는 말씀을 꼭 드립니다.”

올해는 박 대표가 '에이블투어'를 설립한 지 꼭 10년이 되는 해다. 박 대표는 “이 사업을 하면서 즐거운 일보다는 힘든 일이 더 많았던 게 사실”이라면서도 "태어나서 처음 장례식장에 가거나 바다를 보러 가는 장애인분들이 ‘고맙다’고 말씀해주실 때면 기분이 아주 이상해요. ‘내가 이 일을 하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죠”라고 말했다.

신혜연 기자 shin.hye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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