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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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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제를 벗겨내는 몸부림…피부처럼 부드러운 조각 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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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디 부허 회고전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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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하이디 부허 공간은 피막, 피부' 전시 전경. 가운데 놓인 작품이 벨뷰 요양원의 진찰실을 거즈 천에 떠낸 '빈스방거 박사의 진찰실'이다. 왼쪽은 요양원 입구를 떠낸 '작은 유리 입구'. 사진 CJY ART STUDIO 아트선재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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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테리’라고도 불렸던 전환장애는 20세기 초까지는 여성들만 앓는 질병으로 여겨졌다. 정신의학이 걸음마를 떼던 시절, 감각기능 이상 등의 증세가 여성의 생물학적 특성이나 성적 에너지와 연관됐다는 분석이 힘을 얻었던 것이다. 전환장애를 일컫는 용어로 사용됐던 ‘히스테리아’ 자체가 자궁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다. 그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여성 환자들은 정신병원으로 보내졌는데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인권 침해를 당하는 일도 빈번했다.

빈스방거 가문이 4대에 걸쳐서 스위스 크로이츠링겐 콘스탄스 호수 인근에서 운영했던 ‘벨뷰 요양원’이 바로 히스테리아 환자를 치료하는 시설 가운데 하나였다. 여성들을 억압하던 어두운 역사가 담긴 빈스방거 박사의 진찰실을 지금 서울에서 만날 수 있다.

여성, 나아가 인간을 옭아매는 단단한 공간을 피부처럼 부드러운 조각으로 바꿔 냈던 스위스 출신 예술가 하이디 부허(1926~1993)의 아시아 첫 회고전 ‘하이디 부허: 공간은 피막, 피부’가 6월 25일까지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다. 작가의 1970~1980년대 주요 작품을 비롯해 드로잉, 영상기록 등 작품 130점을 선보이는 대규모 전시다. 작가는 생전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여성주의 물결이 불면서 새롭게 조명받았고, 2017년에는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작품이 전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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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언론공개회에서 관람객들이 작품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김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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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들의 서재 스키닝' 영상에서 하이디 부허가 그의 가문이 살아온 집의 서재를 스키닝하고 있다. 1978년, 싱글 채널 16mm 필름(컬러), 음향, 43. 13’47’’, 촬영 인디고 부허. 하이디 부허 에스테이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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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서는 작가가 ‘스키닝(skinning)’ 행위를 통해서 만들어낸 대표작들을 여럿 만날 수 있다. 스키닝은 공간을 피부처럼 떠내는 행위다. 부레풀을 섞은 거즈 천을 벽에 덮고 여기에 고무나무에서 추출한 액상 라텍스를 발라서 굳히는 방식이다. 라텍스가 충분히 굳으면 거즈 천을 벗겨내는데 거즈 천에는 공간을 피부처럼 떠낸 듯 벽의 형태가 고스란히 새겨진다.

부허는 만년인 1988년 버려진 벨뷰 요양원을 찾아서 곳곳을 스키닝했다. 빈스방거 박사가 환자들을 진찰하던 공간을 스키닝한 ‘빈스방거 박사의 진찰실’과 요양원 입구를 스키닝한 ‘작은 유리 입구’를 이번 전시에서 만날 수 있다. ‘빈스방거 박사의 진찰실’은 실제 건물처럼 거즈 천이 드리워져 있어 내부로 들어갈 수도 있다. 스위스는 1971년이 돼서야 여성 참정권이 처음으로 인정됐을 만큼 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였고, 집안 생활공간도 성별에 따라 나뉘어 있었다.

스키닝 작품들과 함께 전시된 영상에서 부허는 온 힘을 다해서 거즈 천을 벽에서 벗겨낸다. 행동과 촬영 각도는 사전에 계획된 것이다. 영상 자체가 퍼포먼스(행위예술)를 기록한 작품인 셈이다. 부허에게 스키닝은 인간을 억압하는 딱딱한 것을 부드러운 것으로 변화시키는 한편, 결과적으로 인간을 해방하는 행위였다. “공간은 피막이고 피부이다. 피부를 벗겨내는 것은 과거로부터, 표시된 것으로부터, 관습과 강요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나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으로부터 자유롭다.” 작가가 남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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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를 위해서 방한한 하이디 부허의 아들 인디고 부허가 옷처럼 입을 수 있는 조각 작품을 입고 있다. 작품은 이번에 다시 제작된 것이다. 배경 속 사진에서 1972년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바바라 할리우드 힐스에서 하이디 부허와 두 아들(인디고 부허, 메이요 부허)이 작품을 입어 보고 있다. 작품은 관람객도 누구나 입어볼 수 있다. 김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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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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