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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2030 플라자] MZ는 권리에 민감해서 초과 근무 시켜도 안 통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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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시간제도 개편이 발표된 다음 날, 20대 후반 취업준비생이 관련 영상을 보여줬다. ‘기업이 제도를 악용하여 휴가를 못 쓰게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고용노동부 장관이 “MZ세대는 `회장 나와라` 할 정도로 권리의식이 뛰어나기에 그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답하는 장면이었다. 영상을 보여준 학생은 “제도 악용에 대한 대응책조차 ‘MZ세대는 다르다’인 정부한테 뭘 기대하겠냐”라고 했다.

대통령과 여당은 근로시간 개편에 대한 반발을 단순 소통 부족 때문으로 여기는 듯하다. 그러나 MZ세대에게 이번 제도 개편이 소개된 과정이 위와 같았다. “MZ세대는 권리의식이 강하니 제도 악용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장관을, 그리고 그런 인식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제도의 정상적 운영을 어떻게 불신하지 않을 수 있을까?

또래 직장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기업 일부를 제외하고 기존 주 52시간제가 철저하게 지켜지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노동 현실과 법제도에 괴리가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2030 직장인들이 주 52시간제를 옹호하는 것은 제도가 가지고 있는 상징성 때문이다. ‘주 52시간제가 있어서 노동시간이 지금 정도에 그칠 수 있다’는 기대의 상징 말이다. 그러기에 기존 상징을 없애고 ‘탄력적 노동이 가능하게’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는 정부의 이야기에는 거부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노동시간 선택권을 부여받게 된다’가 아닌, ‘노동시간이 늘어나게 된다’로 제도 개편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더욱이 이번 제도 개편의 핵심은 ‘초과 노동 하면 그 다음 주를 쉴 수 있게 해준다’이다. 아직 공동체성이 강조되는 한국의 근로문화에서, 특정 기간 열심히 일했다고 다음 기간 집에 일찍 가는 것이 쉽게 가능할까? 휴가를 반납하고 회사에서 일하는 게 미덕이던 때가 불과 10여 년 전이었다. 육아휴직 제도는 지금도 상당수 회사에서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강제력 보장 장치가 마련되지 않은 이번 제도 개편이 노동시간 연장으로 귀결될 것이라고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으로 보인다.

근로시간제도 개편에 대한 반발은 단순 소통 부족 때문이 아니다. 이건 제도가 취지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벌칙 및 인센티브 장치’가 포함되지 못한 결과다. 장치를 마련한 후 국민에게 알리며 신뢰를 확보했어야 했다. ‘노동조합과 합의해서 근로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는 대안으로는 부족했다.

제도 개편의 필요성을 전달하는 방식도 아쉽다. ‘기존에 불가능하던 과도한 노동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제도’가 아니라 ‘지금도 일어나는 기준 초과 노동에 대해 노동시간 감축이라는 보상을 해주는’ 제도라고 강조했다면 어땠을까. 실제 이번 제도 개편은 1년 기준 주당 최대 근로 한도를 오히려 ‘48.5′시간으로 낮췄다. 최대 근로시간에 대한 자율성을 준 대신, 전체 노동시간은 낮추도록 설계된 것이다. 69시간이라는 최대 근무시간만이 부각된 것은 너무 아쉬운 지점이다.

공무원을 배제하고 제도 개편이 진행된 것도 그 당위를 국민에게 설득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로 보인다. 국가는 100만명이 넘는 공무원에 대한 고용주이다. 이들에게 먼저 제도를 적용하면서 장단점을 분석하고 우수 사례를 홍보했다면 어땠을까? 이번 제도 개편을 준비하느라 정해진 야근 한도 이상 일했을 공무원들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노동시간을 제도 내에 편입시키는 방식이라고, 노동시간을 마냥 늘리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보상을 주는 방식이라고 알렸다면 여론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공무원들에게 제도를 적용하고 그들을 설득하여 정책 홍보의 도구로 활용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신재민 전 기재부 사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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