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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닭뼈가 요리의 80%? 미쉐린 15스타가 꼽은 ‘최고의 정찬’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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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톱 셰프’ 야니크 알레노


지난 22일 서울 송파구 시그니엘 서울 호텔 81층에 위치한 프렌치 레스토랑 ‘스테이’. 185㎝가 넘는 체구에 단단한 인상의 프랑스인이 테이블을 돌며 식사 중인 손님들과 인사를 나눴다. 글로벌 톱 셰프 야닉 알레노였다. 세계 곳곳에서 16개의 레스토랑을 운영 중인 그는 작년에만 미쉐린 스타 15개를 따낸 입지전적 인물이다. 시그니엘은 이날 야닉의 프렌치 레스토랑 브랜드인 ‘스테이’에 그를 초청해 갈라 디너를 선보였다. 이날 디너엔 시그니엘 단골 고객을 중심으로 60명의 손님이 자리했고 요리 준비에 야닉을 포함한 셰프 35명이 동원됐다. 주제는 한국 식재료와 야닉의 프렌치 요리 테크닉을 접목시킨 ‘프렌치와 K푸드의 만남’이었다.

올해로 55세인 야닉은 활발하게 활동 중인 현역 셰프 중 최고로 꼽힌다. 5년 전 세상을 떠난 프렌치 파인 다이닝의 선구자 조엘 로부숑(미쉐린 31스타), 60대 중반에 접어든 전설적인 셰프 알랭 뒤카스 (미쉐린 21스타)에 이어 별 순위로 3위다. 국내에 잘 알려진 고든 램지(미쉐린 7스타)보다 많다. 나폴레옹과 조세핀이 식사한 곳으로 알려진 230년 역사의 프랑스 파리 라비옹 로드와앵 내 3스타 레스토랑 ‘알레노 파리’, 3스타 레스토랑 오텔 슈발 블랑 내 ‘르 1947’이 그가 운영하는 대표 레스토랑이다. 프랑스 내에서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을 보유한 셰프는 그가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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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닉 알레노<사진제공=호텔롯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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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닉의 트레이드 마크는 소스에 대한 집요한 탐구다. 야닉은 “소스는 요리의 80%를 차지하며 요리 성격을 특징짓는 동사(verb)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요리를 좌지우지하는 개성적인 소스를 만들기 위해 그는 ‘고밀도 저온 추출’ 기술을 개발했다. 물과 최소한의 재료를 넣고 섭씨 83도에서 최소 12시간 끓여 풍미를 증폭시키는 방식으로 식재료의 특성을 극한으로 밀어붙여 새로운 맛을 창조해낸다. 야닉은 “육수를 그저 고온에 끓이면 미묘한 풍미가 날아갈 수 있다”며 “별도의 양념을 추가하지 않고 수분 함량을 줄이는 것만으로도 디테일한 향을 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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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닉 알레노가 지난 22일 갈라 디너에서 선보인 ‘자연산 대광어와 제주산 딱새우 무스’<사진제공=호텔롯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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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닉이 이날 선보인 7코스 요리에도 그의 개성이 묻어났다. 외국에선 식재료로 쓰지 않는 우엉이나 김, 충청북도 충주산 캐비어, 국내산 유자로 만든 겔, 제주산 딱새우 같은 한국 식재료에 소스 중심의 ‘모던 퀴진(modern cuisine)’을 적용한 요리였다. 예컨대, 닭가슴살을 곱게 갈아 무스를 만들어 타르트 껍질에 담은 알레노의 시그니처 메뉴에 곁들인 소스는 닭 뼈로 만들었다. 세계 3대 진미로 꼽히는 블랙 트러플과 닭 날깨 뼈를 24시간 넘게 끓여 시럽처럼 꾸덕해진 질감의 소스로 독특한 고소함을 낸 것이다. 저온 조리한 가리비 관자와 함께 나온 양파 시폰 요리에선 양파를 약불에 4시간 볶아 복합적인 단맛의 조화를 느끼게 했다.

형태에도 파격을 가했다. 킹크랩 샐러드 메뉴에선 생채소와 과일을 투박하게 조리하는 보통의 샐러드와 달리 햄버거 패티 모양으로 내놨다. 이날 아침에 공수한 최상급 러시아산 활 킹크랩을 쪄서 잘게 찢은 뒤 토막 낸 샐러리, 무를 손으로 뭉치고 그 위에 오세트라 등급의 캐비어를 얹어 만들었다. 야닉은 “떼루아(Terroir·땅과 기후처럼 맛을 내는 자연환경 전반)가 다르면 맛도 달라진다. 한국 땅에서 난 식재료에 프랑스식 요리 기법을 섞어 유니크한 음식을 탄생시켰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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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닉 알레노가 지난 22일 갈라 디너에서 선보인 ‘투뿔한우 안심구이’<사진제공=호텔롯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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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닉은 “프랑스 요리는 예술”이라고 강조했다. 식재료의 굵직한 특징을 중심으로 간단한 형태의 요리를 선보이는 이탈리아와 달리 프랑스 요리는 더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요리라는 것이다. “1960년대 이탈리아 전위 예술 운동 ‘아르테 포베라(가난한 예술)’을 보면 이탈리아 요리의 특징이 드러난다. 한 마디로 단순하다. 반면 ‘식탁의 르네상스’를 일으킨 프랑스 요리는 식재료의 맛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복잡한 방식으로 발전했다. 프랑스 요리가 더 흥미롭다.”

이날 갈라 디너의 또 다른 백미는 와인이었다. 프랑스 보르도 와인 기사 작위를 보유한 정재훈 소믈리에가 엄선한 7종의 페어링은 각 코스 요리의 풍성함을 배가했다. 페어링은 ‘신토불이’ 원칙에 따라 디저트 와인을 제외하고 프랑스산으로 마련했다. 달콤함 일변도의 샴페인 시장에서 1870년대 최초로 드라이한 브뤼 (brut) 스타일을 내놓은 ‘뽀므리 나뛰르’, 상세르 지역의 대표 포도 품종인 소비뇽 블랑으로 빚은 ‘알퐁스 멜로 제네라시옹 디즈네프’, 부르고뉴 피노누아로 만든 ‘뉘 생 조르쥬 레 그랑 빈’, 부르고뉴 최북단 샤블리 그랑 크뤼 ‘보데지르’, 보르도 오른쪽 언덕에 있는 생떼밀리옹 ‘샤토 몽부스케’ 순이었다. 디저트 와인은 곰팡이 포도로 빚은 ‘귀부 와인’ 헝가리 토카이 아수 5 푸토뇨스였다. 시그니엘 스테이 책임자인 오송연 매니저는 “음식과 100%의 조화를 이루는 와인을 택하기 위해 행사 1주일 전에 단가를 확 높여 와인 리스트를 확 바꿨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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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니엘 ‘스테이’<사진제공=호텔롯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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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과 서울 남쪽 일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스테이’는 격식을 차리는 딱딱한 프랑스 정통 요리가 아닌 캐주얼 프렌치를 표방한다. 고급 다이닝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며 지난 3년간 연 평균 20%씩 매출이 늘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110억원대로, 단일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 이 정도 매출을 내는 건 이례적이다. 야닉의 갈라 디너는 2017년 스테이가 문을 연 이후 매년 1~2차례씩 열렸지만 코로나 때 중단됐다가 작년부터 재개됐다. 시그니엘 관계자는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을 2개 보유한 유명 셰프를 직접 만날 수 있는 건 시그니엘 스테이가 아니면 만나기 어려운 기회”라며 “럭셔리 호텔로서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앞으로도 디너 행사를 개최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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