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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취재파일] 시정 비판 기사는 모르는 게 약?… 숨기기 급급한 광주광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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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광주광역시청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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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광주광역시청 대변인실은 직원들에게 돌리는 언론 보도 스크랩(신문 등에서 필요한 부분만 오려 모은 자료)에서 강기정 광주시장과 부시장, 광주 시정을 비판하는 기사를 은근슬쩍 빼는 버릇이 생겼다. 강 시장이 얼마 전 실·국장들에게 정책 홍보를 강화하라는 주문이 이어지면서 도드라진 습벽이다. 광주시가 국토교통부 균형 발전 협력 회의 때 공무원과 시민들을 대거 동원한 사실(①)과 김광진 문화경제부시장의 공기업 사장 사퇴 종용 의혹(②) 등의 기사를 대변인실이 스크랩에서 뺀 게 대표적이다. 강 시장이 "광주 시정을 이끌기 위한 동반자인 공직자와의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 판에 시정 비판 기사만 스크랩에서 쏙 빼는 것은 어딘지 모르게 이상한 일임에 틀림없다.

광주시 대변인실의 기사 스크랩 원칙은 "대변인 맘대로"이다. 스크랩도 엄연한 내부 문서인 만큼 당연히 객관적이어야 하지만 광주시는 희한하게도 대변인의 자의적 판단이나 평가에 따라 비판 기사를 스크랩에 넣기도 하고 빼기도 한다. 대변인이 스크랩할 기사를 취사선택하고 검열하는 '게이트 키퍼' 역할을 하는 셈이다. 대변인은 "시정 비판 기사 ①과 ②는 직원들이 알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 스크랩을 하지 말라고 했다"며 "그 판단 기준은 내가 정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미처 신문이나 방송 모니터링을 하지 못한 시장과 간부 등은 매일 오전 행정 전산망에 올라온 스크랩에서 시정 홍보 기사만 읽을 수도 있다.

사실 대변인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시장이나 부시장, 그리고 이들과 관련된 시정을 '조지는' 기사다. 이 때문에 시청 안팎에선 "대변인이 강 시장 심기 살피기 행정을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돈다. 한 간부는 "비판 기사라도 그 기사가 나온 사실을 알아야 대응책도 마련할 텐데 지나치게 조직 보신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다"며 "오보가 아닌 이상 비판 기사에 대한 판단은 시장이나 관련 공무원들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나 대변인실이 비판 기사를 스크랩에서 빼는 버릇을 고칠 것 같지는 않다. 대변인은 "비판 기사를 스크랩에서 뺀 것은 잘못했다"면서도 "비판 수위가 센 기사는 지금처럼 스크랩에서 뺄 것"이라고 했다. 잘못을 하고도 이를 개선하지 않고 계속 잘못을 하겠다는 황당한 답변이었다. 이쯤 되면 막무가내라고 해도 별로 할 말이 없어 보인다. 시쳇말로 '너희는 짖어라, 나는 상관 안 한다'는 식인데, 가슴이 턱 막힌다. 광주시의 '입' 역할을 하는 대변인의 문제 인식 수준과 언론관이 겨우 이 정도라면 과연 광주시 앞날을 기대할 수 있을까. 각종 지역 현안을 놓고 "강 시장은 광주 시민들의 고민과 우려를 모르는 것이냐, 아니면 모른 척하고 싶은 것이냐"는 쓴소리가 나오는 요즘, 강 시장과 직원, 강 시장과 시민들 간 소통을 막는 '주범'이 대변인실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절실해진다.

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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