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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르포]쇳물 뿜는 포스코…포항제철소 심장 135일만에 ‘정상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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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할퀴고 간 제철소, 1월 20일 완전 정상화

생산·품질·설비 모두 피해 전 수준으로 돌아와

2050 탄소중립 위해 ‘수소환원제철’ 전환 준비

포항 ‘체인지업 그라운드’서 미래 사업 육성도

[포항(경북)=이데일리 김은경 기자] 지난 23일 찾은 경북 포항시 포스코 포항제철소. 공장 안은 불과 6개월 전 수마가 할퀴고 간 곳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바쁘게 돌아갔다. 지난해 9월 6일 태풍 ‘힌남노’로 냉천이 범람해 물에 잠겼던 제강공장은 언제 그랬냐는 듯 1000도(℃)가 훌쩍 넘는 시뻘건 쇳물 280톤(t)을 계속 쏟아내기 바빴다. 쇳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와 튀어 오르는 불꽃, 쇠에서 나는 비린내와 귀를 울리는 커다란 기계음, 작업자들의 이마에 맺힌 땀까지. 한국 제조업의 중추이자 활기찬 제조현장의 모습으로 완전히 돌아온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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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 포항제철소 제강공장에서 용기에 담긴 쇳물이 컨버터에 쏟아지는 모습.(영상=포스코)


가동을 멈췄던 제철소가 완전히 되살아난 건 지난 1월 20일. 직원들은 135일간의 복구 여정을 ‘기적’이라고 표현했다. 최주한 포항제철소 제강부 2제강공장 공장장은 “포항제철소가 침수된 날은 ‘재난영화의 시작’처럼 고요했다”며 “갑자기 공장 곳곳에서 나이아가라 폭포처럼 물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이를 보고 있자니 나라가 망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고 당시 참상을 설명했다. 당시 제철소 내부에 쏟아진 물은 620만t, 여의도 면적을 2.1m 높이로 채우는 양이다. 이 많은 양의 물이 불과 1시간 만에 제철소로 밀려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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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 포항제철소 2열연공장이 힌남노 침수 피해 복구 이후 정상 가동되는 모습.(사진=포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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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소 내에서 가장 피해가 컸던 건 냉천과 가까운 2열연공장이다. 유압유 공급 장치가 있는 지하 8m 높이의 이곳은 길이 420m에 폭 12m의 공간이 완전히 물에 잠겨 둥둥 떠다니는 기름과 토사물이 가득 들어찼었다. 그도 모자라 지상 1층마저 1.5m 이상 물에 잠겨 총 9m 이상 들어찬 물을 4주 동안 퍼내야 했다. 이날 공장 한쪽에 성인 허리춤을 넘어 그어진 ‘1.5m’의 침수 표시선만이 당시 심각했던 상황을 가늠케 했다.

2열연공장이 다시 돌아가기 시작한 건 침수 피해를 본 지 약 100일 만이다. 이현철 열연부 2열연공장 파트장은 “공장이 복구된 지 99일째가 됐는데 다시 가동하기 시작한 첫날 압연이 무사히 끝난 걸 보면서 너무 기뻐 만세를 부르고 몰래 도망가 하루종일 울었다”며 눈시울을 붉힌 채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이날 2열연공장에서는 약 2분 간격으로 새빨갛게 달아오른 슬라브(철강 반제품)가 계속해서 밀려 나오며 판판하게 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제품은 연간 500만t. 현재는 피해 이전 수준으로 생산량을 회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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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 포항제철소 수해복구 기념 사진전.(사진=김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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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빠른 정상 가동이 가능하도록 수해 복구에 투입된 인원만 140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 와중에 단 한 건의 중대재해 사고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은 포스코의 자부심으로 남았다. 천시열 포스코 공정품질담당 부소장은 “불행 중 다행으로 중대재해 없이 엄청난 규모의 피해 복구에 성공했다”며 “현장에서 강력한 룰을 만들어 이를 어기면 현장 진입을 금지했다”고 말했다. 실제 울산에서 투입된 전기시공업체 2곳은 규칙을 어겨 현장에서 배제했다고 한다.

현재는 포항제철소 내 총 17개 공장에서 118개 공정이 정상 가동되면서 생산과 품질, 설비 전 영역이 복구 전 수준으로 회복됐다. 천 부소장은 “이미 계획 생산량은 초과 달성했고 사고가 나기 전 수준으로 품질을 관리해 외부에서 클레임이 제기된 수량도 현재까지 딱 40kg 정도뿐”이라고 자부했다. 단, 대부분 시설이 물에 잠겼던 만큼 포스코는 혹시 모를 2차 사고 방지를 위해 전기시설과 센서 등을 꾸준히 점검하고 있다. 재발 방지 대책도 세웠다. 공장 외곽에 1.9km 길이의 차수문을 설치 중이며 무너진 제방을 복구하고 변전소, 관제센터 등 주요 시설에 차수판과 침수 방지 용벽도 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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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 포항제철소 스테인리스 2제강공장 주변도로 복구 전(왼쪽)과 후의 모습.(사진=포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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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구를 끝낸 포스코가 미래에 대비해 새롭게 집중해나가고 있는 분야는 탄소중립 실현이다. 완전한 탄소중립을 위해 필수 과제로 꼽히는 수소환원제철 공정으로 전환하기 이전인 2030년까지는 현재 가동 중인 공정에 ‘브릿지’ 기술을 도입해 친환경 비율을 높인다는 구상이다. 구체적으로 철광석에서 산소를 제거한 환원철을 조개탄 모양으로 성형한 가공품(HBI)과 펠렛, 액화천연가스(LNG)를 사용하는 방식을 올해 5월부터 2고로에서 테스트할 예정이다.

포스코는 자체 유동환원로 기술인 하이렉스(HyREX) 기반 수소환원제철 상용 기술을 개발 중이다. 천 부소장은 “수소환원제철 하이렉스 시험설비를 2026년 도입해 상업화 가능성을 확인할 예정”이라며 “2030년까지 상용 기술개발을 완료한 뒤 2050년까지 포항·광양 제철소의 기존 고로 설비를 단계적으로 수소환원제철로 전환해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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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가 자체개발한 스마트 팩토리 기술로 수집분석한 정보를 활용해 포항제철소 조업현장을 점검하는 모습.(사진=포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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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포스코는 이날 포항에 조성한 스타트업 육성 공간 ‘체인지업 그라운드’도 소개했다. ‘오늘의 연구가 내일의 산업이 되는 곳’이라는 목표를 내건 이곳은 창업에는 수도권이 유리하다는 편견을 깨기 위해 만든 공간이다. 박성진 포스코홀딩스 산학연협력담당 전무는 “지방 소멸 위기에 대응해 지역 경제 활성화와 양질의 청년 일자리 창출이 설립 목표 중 하나”라며 “현재 수도권 기업 12곳이 포항으로 본사를 이전했고 9곳이 포항 사무실을 새로 열었다”고 강조했다. 이를 통해 포항에 90여개의 일자리가 창출됐다.

포스코는 입주기업에 산학연 협력 인프라를 제공하고 포스코그룹 네트워크를 활용한 사업화 실증 기회와 글로벌 진출을 지원한다. 벤처 펀드를 활용한 성장단계별 스케일업 자금 지원, 정부와 지자체와 연계한 투자 유치(IR) 기회도 준다. 이 곳에 참여 중인 에이엔폴리의 노상철 대표는 “미래 소재기업을 창업할 때 모두가 우려했는데, 포항에서 창업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크지 못했을 것”이라며 “아빠(포스코)를 뛰어넘는 자식이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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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문을 연 ‘체인지업 그라운드’.(사진=포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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