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하게 의술을 실천하는 의사가 있다. 저소득층 자녀의 피부 흉터를 재건하고, 의료시스템을 확립하면서 선한 영향력을 나누는 대구 올포스킨피부과의원 민복기 원장이다. 그는 코로나19 유행 초기 대구 지역 방역을 체계화한 공로를 인정받아 39회 보령의료봉사상 대상을 받았다. 보령의료봉사상은 ‘한국의 슈바이처’를 발굴해 참된 의료인상을 정립하기 위해 대한의사협회와 보령제약이 1985년 제정한 상이다. 영화 ‘울지마 톤즈’로 알려진 고(故) 이태석 신부 등 179명이 이 상을 받았다. 그에게서 의료 봉사의 삶에 대해 들었다.
보령의료봉사상 대상을 받은 민복기 원장은 “의료 봉사는 내 삶의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사진 보령] |
Q : 의료 봉사를 나서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A : “군의관 시절 축구 대회에서 백태클에 걸려 고관절 인대가 손상돼 한동안 목발을 짚고 훈련한 적이 있다. 환자로서 불편을 경험하고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의사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생각을 바꾸니 주변이 보였다. 당시 군에서는 피부병이 흔했다. 특이하게 속옷 주변 피부가 붉게 짓물렀다. 군에서 보급된 남색 속옷의 수입 염료가 문제라는 것을 확인하고 한국산 염료로 바꿨다. 알레르기 진단 검사로 원인을 찾아내고 체계화한 것이 받아들여졌다. 다르게 생각하니 다르게 보였고, 다르게 행동하게 됐다. 그때부터 의료 봉사가 내 삶의 원동력이 됐다.”
Q : 기억에 남는 활동은 무엇인가.
A : “사랑의 지우개 사업이다. 2001년 군 전역 직후부터 시작해 벌써 20년이 넘었다. 지금까지 600여 명의 문신을 무료로 제거했다. 요즘엔 문신(타투)을 개성의 표현으로 바라보지만, 당시엔 부정적 인식이 심했다. 직업군인으로 복무하려면 몸에 문신이 없어야 했다. 문신은 새기기 쉬워도 지우기가 어렵다. 문신을 없앤 후 국가를 위해 장기 복무하는 장병을 보고 선한 영향력의 힘을 느꼈다. 선한 영향력은 나눔으로 시작된다. 의료 취약층을 대상으로 하는 문신·흉터 등을 없애 주고 피부 질환을 치료하는 의료 봉사는 피부과 의사인 내가 할 수 있는 나눔이다. 피부병은 직업 선택, 사회적 관계 등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도 있다. 피부 문제를 극복한 이들의 새로운 삶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할 것으로 기대한다. 그거면 충분하다.”
Q : 코로나19 초기부터 방역 활동에 참여했다고 들었다.
A : “2020년 초 대구 지역에 코로나19가 덮쳤을 때다. 그 당시 한국은 코로나19를 단순 감기 정도로 치부했다. 메디시티대구협의회 의료관광산업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어 파견 의료진 등으로부터 중국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달받았는데 확진자 수나 확산 속도, 치명률이 심상치 않았다. 상황을 잘 아는 내가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구시의사회 코로나19 대책본부를 꾸리고 활동을 시작했다. 코로나19 같은 감염병은 대규모 병상·인력 등 인프라 확보가 중요하다. 먼저 국군대구병원에 연락해 병상 확보를 요청했다. 군의관, 간호장교 차출도 건의했다. 주변에서 과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많았지만 모자란 것보다 과한 게 낫다고 생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구 신천지교회를 중심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줄줄이 나왔다. 미리 준비한 덕분에 고작 5.5일 만에 303개의 음압 병상을 마련할 수 있었다.”
Q : 당시 대구가 뚫리면 사태가 심각해진다는 말도 많았다.
A : “모든 현장이 전쟁 같았다. 신천지 교인을 대상으로 한 샘플링 검사에서 양성 반응률이 80%나 된 게 결정적이었다. 추가 감염을 막기 위해 신천지 교인 1만여 명을 대상으로 한 전수 검사가 필요했다. 이동 검진은 감염 위험이 커 다들 꺼렸다. 당시 전수 검사에 자원한 13명의 공중보건의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이들이 코로나 극복에 기여한 영웅들이다.”
A : 지금은 익숙한 코로나19 대응 방안은 민 원장이 대구시의사회 코로나19 대책본부장으로 활동할 때 체계를 세웠다. 드라이브 스루 검사, 이동 검진을 세계 최초로 도입하고, 대구 동산병원을 통째로 비워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활용했다. 중증도에 따라 환자를 분류·치료하는 생활치료센터도 도입했다. 전 세계가 대구의 초기 코로나19 대응에 주목한 이유다. 향후 계획을 묻자 그는 나누고 도우면서 함께 사는 삶을 계속 살겠다고 했다. 보령의료봉사상 상금도 저소득층 학생 장학금으로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민 원장은 “사람이 혼자서 살 수 없듯 의료 봉사도 마찬가지다. 봉사는 여럿이 함께할 때 범위가 넓어진다”면서 “요즘엔 우수한 한국 의료 인프라를 해외에 알리고 그 국가 상황에 맞게 체계화하는 작업을 고민한다. 제대로 된 의료시스템을 갖추면 더 많은 사람을 치료할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의사의 삶이다”고 말했다.
권선미 기자 kwon.sunm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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