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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MZ 절반은 출산휴가도 못 써 … "주60시간제는 멸종 국가 부채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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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섭 기자(ghin2800@pressian.com)]
"(근로시간 개편은) 워킹맘들에게 더 많은 선택권을 주고 아이들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 것"
-이정식 고용노동부장관

"출산휴가, 육아휴직 등의 사용마저 눈치 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과연 노동자가 근로시간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을지 의문"
-장종수 직장갑질119 노무사

정부의 근로시간개편안에 대한 청년세대 노동자들의 반발이 거세지는 가운데, 이른바 MZ세대 노동자들의 절반 가까이는 법적으로 보장된 출산휴가조차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리퍼블릭에 의뢰해 지난 3일부터 10일까지 전국 만 19세 이상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직장에서 산전후휴가(출산휴가)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직장인 10명 중 4명(39.6%)은 자유롭게 쓰지 못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른바 MZ세대로 꼽히는 20대 직장인들의 경우 전체의 절반 가까운 45.5%가 출산휴가를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했다.

직장갑질119는 26일 이 같은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이러한 상황에 주60시간제가 시행되면) 누가 아이를 낳고 기르겠는가" 물으며 "대한민국은 멸종국가를 향해 가고 있는데, 윤석열 정부는 이를 부채질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설문조사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출산휴가를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하는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노동자(56.8%),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62.1%), 월 150만 원 미만 저임금 노동자(55.0%) 등 이른바 '노동약자' 계층일수록 그 비율이 높아졌다.

육아휴직에 있어서도 비슷한 경향이 나타났다. 육아휴직의 경우 전체 노동자의 45.2%가 '자유롭게 쓰지 못하고 있다'고 대답했고, 특히 20대 노동자들은 평균보다 높은 48.9%가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했다. 비정규직 노동자(58.5%),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67.1%). 월150만 원 미만 저임금 노동자(57.8%) 등 노동 약자 계층일수록 비율이 높아지는 경향 또한 재확인됐다.

단체 측이 수집한 사례를 살펴보면. 육아 및 출산휴가를 아예 사용할 수 없는 경우도 있었지만 △임산부가 수행하기 힘든 장거리 출장 등 불합리한 업무를 배정하는 경우 △육휴 복귀 후 제대로 된 보직을 배정해주지 않는 경우 △육아휴직 사용 시 근속년수에 따른 안식휴가 제도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 등 간접적인 압박 또는 차별행위 또한 빈번히 일어났다.

앞서 정부의 근로시간개편안 발표 과정에서 이정식 고용노동부장관은 해당 개편안이 "워킹맘들에게 더 많은 선택권을 주고 아이들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단체는 만약 현재의 상황에서 주69시간, 혹은 주60시간제가 시행될 경우 노동자들은 "주 5일 내내 아침 9시 출근해 밤 11시 퇴근해야 한다"라며 "장시간 노동국에서 정부가 직장인들에게 준 선택권은 '회사를 그만두거나, 아이를 안 낳거나' 둘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노동시장 전반에 깔린 장시간 노동 경향으로 현행 일·가정 양립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분석은 고용노동부 자체조사로도 증명된 적이 있다. 노동부의 2020년 일·가정양립실태조사에 따르면, 당해 '임신기 근로시간 단축제'를 활용한 직장인은 전체의 5.9%,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를 사용한 노동자는 전체의 6.4%에 불과했다.

단체는 "전 세계가 노동시간을 줄이고 있는 상황"에 '한국만이 퇴행'하고 있다며 "현행 주 52시간 상한제도를 주 60시간으로 늘릴 것이 아니라, 주 40시간으로 줄여야 대한민국 직장인들이 아이를 낳고 기를 생각을 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한국보다 노동시간이 긴 나라로 꼽히는 칠레의 경우에도, 최근 주 45시간의 근로시간을 40시간으로 줄이는 법률개정안을 상원에서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호주의 '옥스팜' 등 주 4일제를 시범 도입하는 기업들이 미국, 영국, 스페인 등에서도 속속 등장하는 상황에 벨기에는 지난해부터 주 4일제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하기도 했다.

단체는 특히 "세계 최저 합계출산율의 원인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원인은 당연히도 장시간 노동"이라며 "정부가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해야 할 일은 직장인들이 마음 놓고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노동시간을 줄이고, 출산․육아․돌봄휴가를 확대하고, 이를 위반하는 사업주를 강력히 처벌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와 함께 근로시간개편에 힘을 싣고 있는 국민의힘 측에선 최근 '20대에 자녀를 셋 이상 낳을 경우 아버지의 병역을 면제'하는 식의 저출산 대책을 검토했다가 비판 여론을 맞고 철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보여주기식 대책이 아닌 노동시간 축소가 인구감소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방안 중 하나라는 게 단체의 지적이다.

직장갑질119 소속 장종수 노무사는 "고용 형태를 불문하고 출산휴가, 육아휴직 등 일·생활 균형의 기본이 되는 법상 제도 사용마저 눈치 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과연 노동자가 근로시간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정부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의 끝은 결국 (노동자들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선택'에 내몰리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프레시안

▲21일 오전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대통령실에서 생중계로 진행되는 국무회의 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이날 국무회의에서는 근로시간 개편안과 방일 결과 및 후속조치 등에 대해 논의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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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섭 기자(ghin2800@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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