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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검수원복 시행령’ 논란 불가피···권한쟁의 주도한 한동훈은 “잘못된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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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헌법재판소의 검찰 수사권 축소법(개정 검찰청법·형사소송법)에 대한 권한쟁의심판 사건 선고를 앞둔 지난 23일 오전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정부과천청사 법무부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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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검찰 수사권 축소법’(개정 검찰청법·형사소송법)이 유효하다고 결정하면서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 복구) 시행령이 모법 취지에 반한다는 논란은 다시 불거지게 됐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검사 수사권 침해는 중대한 문제라며 권한쟁의 심판 청구를 주도했지만 정작 헌재는 개정 법으로 한 장관 권한은 침해되는 게 없다고 판단했다.

한 장관과 검사 6명의 권한쟁의심판 청구에 대한 23일 헌재 결정문을 보면, 각하 의견을 낸 재판관 5명(법정의견)과 인용 의견을 낸 재판관 4명은 공통적으로 ‘개정법의 내용은 검사 수사권을 축소하는 것이었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결정문에 개정법의 주요 내용으로 ‘검사가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범죄의 범위를 부패범죄 및 경제범죄 등으로 축소했다’고 기재했다. 법정의견에 반대의견을 낸 4명의 재판관도 “개정법이 검사가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범위를 변경해 ‘공직자범죄·선거범죄·방위사업범죄·대형참사’에 관해 검사가 직접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범죄 영역을 축소했다”고 적었다. 국회가 검찰청법·형사소송법을 개정한 취지가 검사의 수사 범위를 6대 범죄에서 2대 범죄로 줄인 데 있었음을 확인한 것이다.

이를 전제로 반대의견 4명 재판관은 개정법에서 4대 범죄를 삭제해 발생하는 부작용을 지적하기도 했다. 공직자범죄가 개정법에서 빠졌기 때문에 감사원이 비위공직자를 고발해도 ‘부패·경제범죄 등’으로 분류되지 않으면 경찰 수사가 선행돼야 한다는 점, 부패범죄로 볼 수 있는 선거범죄는 제한적이라는 점 등이다.

이 같은 헌재 판단으로 인해 지난해 검찰 수사권 축소법 시행을 앞두고 법무부가 개정한 ‘검사의 수사개시 범죄 범위에 관한 규정’이 모법 취지와 어긋난다는 비판이 다시 제기된다. 법무부는 이 시행령 개정을 통해 검사의 직접 수사 범위를 대폭 넓혔다. 공직자범죄·선거범죄·방위사업범죄뿐 아니라 개정법 전에도 직접 수사대상이 아니었던 마약 유통범죄와 조직범죄까지 검사가 직접 수사할 수 있게 했다.

이는 헌재가 이번 결정에서 수사권은 검찰에게 독점적으로 부여된 게 아니며, 따라서 입법으로 주체와 행사방법을 조정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과도 맞지 않는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헌법은 수사와 공소제기의 주체·방법·절차에 관해 직접적인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며 “이는 입법자가 우리의 역사와 문화, 입법당시의 시대적 상황, 국민의 가치관과 법감정, 범죄성향, 우리가 채택한 형사사법제도의 기본골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해야 할 입법형성의 자유에 속하는 사항이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경향신문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들이 지난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검찰 수사권 축소법(개정 검찰청법·형사소송법)에 대한 권한쟁의심판 사건 선고를 위해 대심판정으로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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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는 권한쟁의심판 청구를 주도한 한 장관의 주장을 거의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애당초 법조계에서는 한 장관이 청구를 할 수 있는지가 논란거리였다. 개정법이 수사권의 주체와 행사방법, 범위를 조정하는 내용인데 검사가 아닌 한 장관이 어떻게 연결되느냐는 것이다. 한 장관은 구체적 사건에 대해 수사지휘를 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밝혀오기도 했다. 이에 검찰은 법무부 장관이 직접 수사지휘를 하지는 않지만 형사사법절차에 대한 ‘책임’을 종국적으로 진다면서 ‘책임자로서의 지위’와 ‘수사절차 감독·통제권’이 개정법 때문에 침해됐다고 논리를 구성했다.

헌재 결정에서는 이 논리도 깨졌다. 헌재는 법무부 장관이 정부조직법 등에 따라 검찰·행형·인권옹호·출입국관리 등 법무에 관한 사무를 관장해 헌법과 법률에 의해 독자적인 권한을 부여받고 있다고는 인정했다. 하지만 헌재는 개정 법이 그러한 권한에 대한 것이 아니고, 법무부 장관은 직접적으로 수사권을 행사하지도 않아 개정 법과 관련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법무부 장관에게는 일반적으로 검사를 지휘·감독하고 구체적 사건에 대해서는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할 권한이 있으나 개정법이 이같은 법무부 장관의 지휘·감독 권한을 제한하는 것이 아님은 명백하다”고 했다.

참여연대는 24일 논평을 내고 “궤변에 근거한 심판 청구로 혼란을 야기한 한 장관의 책임은 간과하기 어렵다”며 “헌법과 국회를 존중해야 할 행정부의 일원임에도 입법부에 반발한 이번 심판 청구와 모법 취지를 보란듯이 훼손한 검수원복 시행령 개정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하고 입법 취지에 맞도록 시행령을 재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임명직 공무원에 불과한 법무부 장관과 검사가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 입법권에 맞선 무모한 시도의 당연한 결말”이라며 “검찰과 법무부는 더 이상 검사 수사권이 헌법적 권한이라는 무리한 주장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반면 한 장관은 검찰 수사권 축소법이 잘못됐다는 주장을 계속했다. 한 장관은 이날 낸 입장에서 “자기편 정치인들 범죄수사 막으려는 잘못된 의도로 위장 탈당, 회기 쪼개기 등 잘못된 절차로 고발인 이의신청권 폐지 등 국민에게 피해를 주는 잘못된 내용의 법이 만들어졌을 때 국민 피해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은 법무부 장관의 책무”라고 밝혔다. 이어 “더불어민주당은 작년부터 제가 그 책무를 다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입버릇처럼 저에 대한 탄핵을 말해왔지만, 탄핵이 발의되면 당당히 응할 것”이라고 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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