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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김도훈의 어텐션] 이별 노래의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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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일러스트=양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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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노래를 좋아한다. 이별했을 때 듣는 이별 노래를 좋아한다. 이별했을 때 신나는 노래는 독이다. 오히려 이별을 다룬 슬픈 노래가 도움이 된다. 과학적 근거도 있다. 세상 모든 걸 다 연구하는 듯한 나라 영국의 한 연구진이 4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사람들은 슬픈 상황에서 슬픈 노래를 들을 때 기분이 더 ‘빨리’ 나아졌다. 자신의 감정과 동화될 수 있는 음악을 들을 때 처지를 똑바로 인식하게 되는 덕이라고 한다.

지금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이별 노래가 있다. “나한테 줄 꽃은 내가 사면 된다”고 노래하는 마일리 사이러스의 ‘플라워스(Flowers)’다. 그런데 빌보드 차트 1위를 장기 집권 중인 이 노래는 단순한 이별 노래가 아니다. 음악적 복수다. 저격이다. 사이러스는 2019년 ‘토르’의 동생인 배우 리엄 헴스워스와 결혼 8개월 만에 이혼했다. ‘Flowers’는 헴스워스의 생일인 1월 13일에 공개됐다. 뮤직비디오는 그가 여러 여성과 바람을 피웠다고 알려진 저택에서 찍었다. 가사는 결혼식에서 틀었던 브루노 마스의 ‘웬 아이 워즈 유어 맨(When I Was Your Man)’ 가사를 비튼 것이다.

2021년 최고의 신인 가수 중 한 명인 올리비아 로드리고도 전 연인을 저격하는 노래로 빌보드 1위에 올랐다. ‘드라이버 라이센스(Drivers license)’는 운전면허를 따고 드라이브를 가기로 한 연인이 바람을 피우자 배신감에 분노하는 노래다. 이는 당시 같은 드라마에 출연했던 배우 조슈아 바셋을 저격한 곡이라는 소문에 휩싸였다. 소셜미디어는 로드리고와 바셋과 그의 새 여자 친구에 대한 온갖 ‘썰’로 폭발했다.

지난 음악의 역사에도 전 연인을 저격하는 노래는 있었다. ‘플리트우드 맥’의 명반 ‘루머스(Rumors)’의 두 수록곡이 대표적이다. 멤버 스티비 닉스와 린지 버킹엄은 1976년에 이혼했다. 1977년에 ‘Rumors’를 내놓았다. 닉스는 버킹엄을 저격하는 ‘드림스(Dreams)’를 만들었다. 버킹엄은 닉스를 저격하는 ‘네 갈 길을 가(Go On Your Way)’를 만들었다. 닉스는 “바람둥이는 즐길 수 있을 때만 사랑을 한다”고 노래한다. 버킹엄은 “너는 네 갈 길 가라”고 노래한다.

다만 플리트우드 맥의 시대에는 없었던 것이 하나 있다. 소셜미디어다. 플리트우드 맥의 노래는 자기들끼리 하는 저격이었다. 팬들 사이에서나 풍문처럼 이야기됐을 따름이다. 2020년대는 다르다. 당신의 이별은 이제 당신만의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헤어지고 나면 소셜미디어에 분노를 터뜨린다. 누가 봐도 알만한 옛 연인의 과오를 적나라하게 밝히며 ‘좋아요’를 얻는다. 소셜미디어 시대 가수들은 게시물 대신 노래로 복수한다. 공개적으로 저격한다.

그렇다면 이 글은 가수와 연애하지 말라는 결론으로 끝나야 할까? 그건 아니다. 마일리 사이러스와 올리비아 로드리고는 정말이지 근사한 노래를 만들었다. 아마도 팝의 역사에 오래오래 남을 것이다. 그러니 명곡의 주인공으로 박제되고 싶다면 가수와 연애하라. 그것은 난봉꾼인 당신이 세상에 남길 수 있는 유일하게 유익한 유산이 될 것이다.

조선일보

김도훈 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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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 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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