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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의회 벽 넘은 마크롱 연금개혁... 지지율 30%선 붕괴 감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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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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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연금 개혁 법안을 저지하려 내놓은 야당의 내각 불신임안이 20일(현지 시각) 부결됐다. 이에 따라 현재 62세인 정년을 64세로 2년 늦추기로 한 연금 개혁 법안은 의회를 통과, 앞으로 3개월 내 이뤄질 프랑스 헌법위원회의 합헌(合憲) 여부 심사 절차를 남겨 놓게 됐다. 앞서 프랑스 정부는 헌법 49조 3항의 특별 조항을 발동, 총리 이하 내각에 대한 신임을 걸고 의회 표결 없이 연금 개혁 법안의 입법에 나섰다.

프랑스 하원은 이날 좌파 신민중생태사회연합(NUPES·뉘프)과 중도 자유·무소속·해외영토(LIOT) 그룹이 공동 발의한 엘리자베트 보른 총리 내각 불신임안 표결을 했다. 그러나 찬성 의원 표가 재적 의원 573명의 과반(287명)에 9표 못 미치는 278표로 불신임안은 무산됐다. 극우 성향 국민연합(RN)이 별도 발의한 불신임안 역시 찬성 94표에 그쳐 부결됐다. 야당이지만 연금 개혁을 지지해 온 우파 공화당(LR) 의원 61명 중 40여 명이 정부 편을 든 것이 결정적이었다.

국민 여론이 악화하고, 야당과 노동단체도 즉각 반대 투쟁에 나설 것을 선언하면서 마크롱 대통령의 국정 운영은 큰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8개 노동 단체는 2019년 ‘노란 조끼 시위’를 뛰어넘는 연대 총파업과 시위로 프랑스 전역을 마비시키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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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현지 시각) 프랑스 의회에서 엘리자베트 보른 총리 내각에 대한 두 건의 불신임안이 모두 부결되자 좌파 연합 뉘프 소속 의원들이 '64세는 안된다' '거리에서 만나자' 등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항의하고 있다./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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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여론연구소(Ifop)는 20일 마크롱 대통령 지지도가 28%로 하락, 지난해 재선 후 처음으로 30%를 밑돌았다고 발표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21일 대통령 집무실인 엘리제궁에서 여당 지도부와 긴급 간담회를 했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마크롱 대통령이 22일 대국민 담화를 겸한 인터뷰를 할 것”이라고 전했다.

프랑스 의회는 여당인 ‘르네상스’가 250석, 야당이 318석인 여소야대 상황이다. 야당에는 좌파 연합 뉘프 소속의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와 사회당, 극우 성향 국민연합(RN), 공화당(LR) 등이 속해 있다. 정부는 당초 우파 공화당과 손잡고 연금 개혁 법안을 상원과 하원 모두 통과시키려 했다. 지난 16일 상원 표결은 통과했지만, 하원 표결을 앞두고 공화당 내에서 반대 25표, 기권 6표 등 이탈표가 대거 나올 것으로 예상되자 마크롱 대통령은 헌법 49조 3항의 발동을 선언했다. 야당은 이에 내각 불신임안을 제출해 저지에 나섰으나 결국 실패했다. 이번에 불신임안이 통과됐다면 총리 이하 내각은 사퇴하고, 법안은 자동 폐기되는 위기에 몰릴 뻔했다.

프랑스 국민의 관심은 이제 연금 개혁 법안의 합헌 여부를 심사할 헌법위원회로 쏠리고 있다. 프랑스 헌법은 정부 조직 관련 법과 인권·복지·예산 등을 다루는 법률은 헌법위원회의 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다. 연금 개혁 법안이 헌법위원회에서 승인되지 않을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관측된다. 총 9명의 위원 중 친여 성향 위원이 최대 7명에 달하기 때문이다. 이 중 2명은 마크롱 대통령이, 나머지 5명은 연금 개혁에 찬성하는 여당 출신 전 하원 의장과 공화당 출신 상원 의장이 추천했다. 그러나 위원장이 야당인 사회당 출신이고, 판사가 아닌 정치인 출신이 5명으로 연금 개혁에 반대하는 여론이 커질 경우, 눈치를 볼 가능성이 있다. 헌법위원회가 이 법안의 합헌성 여부를 놓고 장고(長考)에 들어갈 가능성도 제기됐다. 극좌 LFI와 극우 RN 등 야당이 “헌법위원회에 연금 개혁 법안의 위헌성을 적극적으로 호소하겠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헌법위원회는 최대 3개월간 법안 심사를 할 수 있어, 길어질 경우 오는 6월 이후에나 법안 공포가 가능하다.

야당이 법안 공포를 저지하기 위해 국민투표 발의에 나설 수도 있다. 장뤼크 멜랑숑 LFI 대표는 20일 불신임안 부결 직후 “국민에 의한 불신임(국민투표)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마린 르펜 RN 의원도 “현재의 정치적 위기는 투표로만 극복될 수 있다”며 국민투표 요구에 나설 것을 시사했다.

프랑스 헌법은 개별 법안에 대해 국민투표로 입법 여부를 최종 결정할 수 있게 허용하고 있다. 발의 요건은 그리 까다롭지 않다. 상원과 하원에서 각각 재적 의원 5분의 1 이상의 발의로 국민투표를 요구하면 된다. 국민투표에 부칠지는 대통령이 최종적으로 결정하지만, 패배가 뻔한 국민투표에 나설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날 여론조사 기관 엘라브의 여론조사에서 18세 이상 프랑스 성인의 69%가 “하원 투표를 건너뛴 것은 민주주의를 부정한 것”이라고 답했다. 같은 조사에서 “연금 개혁안 반대 파업을 지지한다”는 응답은 65%에 달했다. 마크롱이 지지율 하락을 견디며 ‘정치인의 무덤’으로 불리는 연금 개혁에 성공할지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파리=정철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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