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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0 (금)

[정수종의 기후변화 이야기] 겨울을 향해 달려가는 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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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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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시기가 빨라지는 건
종다양성 위기를 뜻한다

봄꽃은 사람보다 멍청해
추운 겨울을 향해
꽃을 피우는 것이 아니라
너무도 현명하여서
목숨을 걸고 인간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지구의 종다양성이
위협받고 있다는 것을

이것이 바로 우리가
기후변화에 대응해야 할
결정적인 이유다

어느덧 추운 겨울은 가고 다시 따뜻한 봄이 찾아왔다. 잠잠해진 코로나19 덕에 3월의 캠퍼스에는 학생들이 몰려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봄꽃 아래 삼삼오오 몰려다니는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너무나 반가운 새 학기가 시작된 것이다. 봄꽃과 신입생은 이렇게 우리에게 봄을 일깨워주는 계절의 지시자로서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봄꽃이 피면 캠퍼스에 신입생이 오겠구나! 또는 신입생이 보이면 봄이 왔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이 둘 관계의 시간적 동시성에 문제가 생겼다.

경향신문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이제는 꽤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기후변화로 인해 봄꽃의 개화시기가 빨라지고 있다. 그런데 다른 계절의 지시자인 신입생에게는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봄이 따뜻해진다고 신입생은 학교에 빨리 오지 않지만, 봄꽃은 추운 겨울을 향해 시간을 거스르고 있기 때문이다. 자칫 생명을 앗아갈지 모를 봄추위와 찬 서리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데도 말이다. 꽃이 사람보다 멍청해서 그런 걸까? 과연 겨울을 향해 달려가는 봄꽃은 우리에게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것일까. 지금부터 그 답을 찾아보겠다.

육상생태계 내에서 식물의 개화는 식물의 생장과 진화를 넘어 생태계 내 다른 구성요소와의 교감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봄이 되면 식물의 개화와 함께 많은 생태계 구성요소의 계절활동이 시작된다. 한 가지 대표적인 예가 곤충이다. 곤충은 영양 단계의 관점에서 생산자인 식물과 가장 먼저 교감을 하는 1차 소비자이다. 일반적으로 곤충의 봄은 오랜 시간 동안의 자연선택을 통해 식물의 봄과 자연스레 시공간적으로 동조화(synchrony)되어 있다. 여기서 동조화란 쉽게 말해 곤충의 변화가 식물의 변화에 또는 반대로 식물의 변화가 곤충의 변화에 영향을 끼친다는 뜻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러한 곤충과 식물의 관계에 있어서 탈동조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곤충과 식물의 균형이 깨지고 있다는 신호다. 그리고 그 문제의 중심에는 기후변화가 있다.

곤충과 식물의 봄이 탈동조화되는 것은 식물의 봄꽃 개화시기가 빨라지는 속도와 곤충의 봄이 빨라지는 속도가 달라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곤충의 관점에서 보면 봄꽃과 같은 식물의 계절활동과의 관련성과 상관없이 외부의 온도, 강수, 일사량 같은 환경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아 계절활동에 변화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예로 영국에서 봄철 나비의 첫 출현 시기가 지난 30년간 한 달 이상 빨라졌지만, 봄꽃의 개화시기는 한 달씩이나 빨라지지 않았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생태적 불일치(ecological mismatch)는 식물에서 동물로 이어지는 영양 단계에서 예기치 못한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이것은 바로 생산자와 1차 소비자로 이어지는 식물과 곤충의 다음 단계인 동물군 또는 분해자(미생물)의 생태에도 영향을 끼쳐 생태계 내 영향 흐름이나 군집 조성을 바꾸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기후변화에 따라 개화시기가 빨라지는 그 자체의 영향에 더하여 식물과 다른 생물 종과의 기후변화에 대한 적응 속도 간 차이로 인해 야기되는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뒤영벌도 복수초도 위험하다

요즘 자주 뉴스에 등장하는 벌과 관련한 문제도 개화시기 변화와 관련이 있다. 중위도 지역에서 눈이 녹는 시기가 빨라짐에 따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번식하는 현화식물의 개화시기도 빨라지고 있다. 그러나 벌의 생장주기는 빨라지는 개화시기의 속도를 맞추지 못하고 있다. 벌이 꿀의 질이 좋은 개화시기보다 더 늦게 채밀(꿀을 가져오는 행위)하게 되면 벌의 군집에 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수분매개 효율 저하로 식물의 생장에까지 영향을 끼친다. 이런 생장계절의 불일치는 특히 아직 기온이 낮은 시기에 일찍 개화하는 식물과 이를 수분매개하는 벌 간에 강하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이른 봄에 피는 복수초나 현호색 같은 꽃들에는 사실 꿀벌보다는 온도 내성이 강한 뒤영벌이 더 효율적인 수분매개자이다. 일반적으로 복수초처럼 이른 봄에 피는 꽃은 단명하기 때문에 빨리 수분매개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온도에 대한 내성이 뛰어난 뒤영벌이라도 개화시기가 빨라지면 추운 날씨에 꽃을 찾으러 가기가 어렵다. 게다가 복수초와 같이 개화가 이른 꽃들은 대체로 수명이 짧아서 번식에 있어서 수분매개 효율 저하의 영향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여기서 벌이 생소한 분들에게 잠깐 소개하자면 뒤영벌은 흔히 알려진 꿀벌보다는 조금 덩치가 크고 온몸에 털이 달린 털북숭이 벌이다. 일반적으로 꿀벌의 수분매개 능력보다 수십 배 강한 것으로 알려진 능력자이다. 사실 알고 보면 뒤영벌은 꽤 유명한 친구인데 영어 이름을 들으면 아마 눈치를 챌 것이다. 뒤영벌의 영어 이름은 바로 범블비(bumble bee). 전 세계적으로 히트한 영화 <트랜스포머>에 등장하는 노랗고 검은색을 가진 자동차 로봇이다. 그런데 이 녀석은 영화에서도 계속 위기에 처하더니, 지금 실제 세상에서도 기후변화로 심각한 위험에 빠져 있다. 개화시기가 빨라져 뒤영벌이 수분매개를 못해 꽃이 위험해진다는 것은 결국 뒤영벌이 양질의 꿀을 채밀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벌의 처지에서 보면 식량부족으로 인해 군집에 위협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개화시기를 포함한 각종 기후변화의 영향이 범블비를 위협하고 있다.

몇년 전 할리우드 영화배우이자 환경운동가인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뒤영벌 사진을 올리고 “뒤영벌은 기후위기로 멸종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라는 글을 남겨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다.

기후변화가 유발하는 개화시기의 변화가 곤충을 거쳐 다른 동물생태계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유럽의 딱새류는 아프리카에서 겨울을 나고 다시 유럽으로 날아와 알을 낳는데 이것은 딱새류의 먹이인 나방 애벌레의 생장계절에 오랜 시간 적응한 결과이다. 딱새류가 봄철 단 몇 주간만 참나무류 잎을 갉아먹는 나방 애벌레의 생장계절에 맞추어 이동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유럽 딱새류들이 이 짧은 몇 주의 시기를 놓치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이는 참나무류의 개엽시기가 빨라지면서 나방 애벌레의 출현 시기 또한 빨라졌는데, 빨라진 나방 애벌레의 출현 시기를 딱새가 맞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딱새류는 보통 낮의 길이 변화에 따라 월동지를 떠나 이동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서 나방 애벌레의 생장시간과 생태적 불일치가 발생한 것이다. 먹이는 시간을 거슬러 도망가는데 알아채지도 못하는 형국이다.

물질순환 기능 저하 땐 지구도 없어

정리해보면 개화시기가 빨라진다는 것은 종다양성(biodiversity)의 위기를 의미하는 것이다. 흔히 종다양성의 위협이라고 하는 것을 단순히 종의 숫자가 줄어든다는 것으로 간단히 해석하곤 한다. 물론 특정 동물, 식물군 종이 사라지는 것이 중요한 문제인 것은 맞다. 그러나 어쩌면 이것보다 더 심각한 종다양성의 문제는 생태계의 기능적 다양성이 저하되는 것이다. 개화-벌의 수분매개-인간의 식량(농작물)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먹이사슬의 관점에서 보면 개화시기가 빨라지는 것은 생태계의 식량 서비스 저하 그리고 나아가 인간의 식량위기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개화시기가 빨라지면서 나타나는 식물 군락의 변화는 기존의 지구 육상생태계가 가지고 있는 물, 에너지, 탄소순환이라는 지구시스템의 거대한 물질순환에 기능 변화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물질순환은 지구라는 행성이 존재할 수 있는 근간이기 때문에 지구의 물질순환 기능이 저하된다면 우리의 행성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들어 “아직도 한겨울인데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복수초의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이런 뉴스를 가끔 TV에서 봤을 것이다. 실제로 많은 등산객이 SNS에 찍어 올리는 겨울 등산 사진을 보면 때 이른 개화의 사진을 보고 즐거워하는 사진들이 많다. 그런데 이제는 명심해야 한다. 그게 당신이 그곳에서 만날 수 있는 복수초의 마지막 사진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결국 봄꽃은 사람보다 멍청해서 추운 겨울을 향해 꽃을 피우는 것이 아니라 너무도 현명하여서 목숨을 걸고 인간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지구의 종다양성이 위협받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것이 바로 우리가 기후변화에 대응해야 하는 결정적 이유다.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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