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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시각장애인 ‘바프’ 도전기…“눈바디 아닌 손바디로 변화 느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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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보디프로필’ 도전한 중증 시각장애인 이태승·이지은·김건우·김서윤씨

한겨레

‘내 생의 최고의 순간을 담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이태승·김건우·이지은·김서윤씨의 ‘보디프로필’ 사진.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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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팅!, 멋지다! 예쁘다!” 지난달 28일 아침, 서울 관악구 한 스튜디오에선 ‘보디프로필’을 촬영하는 중증 시각장애인 4명의 응원 소리가 연신 이어졌다. 지난해 11월부터 3개월 동안 주 3회 고강도 운동과 식단 관리를 통해 아름다운 몸을 만든 이들은 카메라 앞에서 자랑스러운 듯 자신의 몸매를 드러냈다. 자신의 포즈를 볼 수 없어 트레이너와 사진사가 직접 이들의 자세를 교정해주는 것 말고는 여느 ‘보디프로필’ 촬영장과 다르지 않았다.

지난 8일 보디프로필 촬영에 도전한 4명 가운데 이태승(35)·이지은(31)씨를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김건우(30)·김서윤(33)씨는 전화로 만났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운동할 수 있는 여건이 부족한 현실 속에서 이들이 멋진 몸매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비결을 들어봤다.

안마사·장애 인식개선 강사 등 4명

3개월동안 일대일 고강도 운동·관리

“안 보이니 식단 유혹 무덤덤 잇점도”

최근 스튜디오에 모여 ‘프로필’ 촬영


“장애 구실로 헬스장 거절 당하기도”

“안전하게 운동할 수 있는 공간 절실”


이들은 남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닌 “중증 시각장애인도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기 위해 보디프로필 촬영에 도전했다고 입을 모았다. 안마사로 일하는 김서윤(33)씨는 “눈만 안 보이지 비장애인과 마음이 다른 건 아니다. 시각장애인도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는 마음이었다”고 했다. 역시 안마사인 이태승(35)씨는 “안 보이다 보니까 남들이 저를 어떻게 보는지에 대해선 무덤덤해지게 됐다”며 “그래서인지 시각장애인에게 보디프로필은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무엇인가 성취했다는 자기 만족감이 더 큰 의미로 다가오는 것 같다”고 했다.

한겨레

시각장애인 보디프로필 촬영 도전에 참여한 참가자가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운동지도를 받고 있다.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제공


비장애인들처럼 남들이 하는 걸 보고 따라 할 수 없었던 이들은 3개월간 서울 관악구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트레이너에게 1대1 지도를 받으면서 운동을 했다. 직장인 김건우(30)씨는 “이전까진 운동을 하더라도 텍스트로만 자세를 배워서 잘못된 자세로 운동을 한 적도 있었는데, 이번 보디프로필 도전을 하면서 트레이너로부터 직접 자세를 배워 안전하게 운동을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들을 지도했던 임강민(29)씨는 “비장애인은 시범을 보이면 따라 할 수 있지만, 시각장애인들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직접 자세를 세밀하게 잡아주고 반복 연습 후에 강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운동을 지도했다”며 “더불어 시각장애인들은 균형을 잡기 어렵기 때문에 한 발로 서는 운동 등은 지양하고 효과가 같은 다른 운동을 위주로 ‘루틴’을 짰다”고 했다.

시각장애인이기에 어려운 점도 있었지만, 오히려 더 수월했던 점도 있었다고 한다. 이태승씨는 “눈으로 보지 못하니 ‘눈바디’(눈과 체성분 분석기 브랜드 ‘인바디’를 합친 단어)가 아니라 ‘손바디’로 몸의 변화를 체크했다. 보였다면 미세한 변화를 느끼기 어려웠을 텐데 손을 통해 몸의 변화를 느낄 수 있어 포기하지 않고 3개월간 묵묵히 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장애 인식개선 강사로 일하고 있는 이지은(31)씨는 “식단 관리가 제일 힘든데, 맛있는 음식의 시각적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니 그나마 버틸 만 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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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서울 관악구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장애 인식개선 강사인 이지은씨가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고병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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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 끝에 멋진 몸을 만들어냈지만, 대부분의 장애인들에게 운동을 시작하는 것조차 힘든 것이 현실이라고 이들은 강조했다. 이지은씨는 “시각장애인들도 운동에 대한 욕구가 많다. 그러나 여러 문제 때문에 쉽게 도전해볼 용기를 내기가 어렵다. 실제 요가 강사에 도전하기 위해 비장애인들과 함께 요가를 배울 수 있는 곳을 알아봤지만, 수강을 거절당하기도 했었다”고 했다. 이태승씨도 “운동을 좋아해 20대 때 헬스장을 다니기 위해 알아본 적이 있는데, 시각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사고 위험성이 높다며 거절당한 기억이 있다”고 했다.

이들은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처럼 장애인들도 안전하게 운동할 수 있는 공간이 많아져야 한다고 했다. ‘실로암’에는 운동을 지도할 수 있는 인력이 있고, 바벨에 무게가 점자로 적혀 있는 등 시각장애인들이 운동하기 좋은 환경이 마련되어 있다. 김서윤씨는 “장애인들에게 한 달에 9만원씩 운동을 위한 바우처를 지급하는 제도가 있지만, 수많은 헬스장 중 시각장애인에게 친화적인 곳이 없어 이용할 수가 없다”며 “열 군데 중 두세 곳이라도 장애인들이 안전하고 손쉽게 운동할 수 있도록 바뀌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고병찬 기자 ki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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