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75)
지난주 연재에서 기온을 중심으로 이야기했다면, 이번엔 강수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기후변화로 인한 고온 현상과 가뭄이 만났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요.
전남지역 일대의 생활용수와 공업용수를 책임지는 곳들은 메말라갔습니다. 취재진이 찾은 전남 순천의 상사호는 '호'라는 표현이 무색한 상태였습니다. '전남의 젖줄'로 순천과 광양, 여수 등지에 하루 생활용수 30.1만톤, 공업용수 23.9만톤을 책임져야 하는 곳은 개울이라고 보기에도 민망한 모습이었죠. 부표는 맨바닥을 뒹굴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태가 어찌나 지속된 것인지, 물이 있어야 할 인공호수의 바닥엔 온갖 풀들이 자라났고, 그 식물들조차 부족한 수분에 제빛을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인근의 상인들과 만나 이야기를 물었습니다. 예전이었다면, 물과 산, 숲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 속에 사람들로 붐벼야 했지만, 물도 말라붙고, 관광객의 발길도 줄었습니다. 상인은 “장마가 항상 남부지방에서 시작해서 중부지방으로 올라갔었는데, 작년엔 남부지방에서 시작을 안 하고, 바로 중부지방으로 올라가 버렸다”며 “이렇게 수위가 낮아지는 건 처음 본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이들 지역보다 상황이 더 나쁜 곳도 있습니다. 바로, 남쪽의 도서 지역입니다. 광주와 전남 내륙엔 상수도 공급망이라도 구축된 광주와 전남 내륙과 달리, 도서 지역은 그저 하늘만 바라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륙엔 물을 미리 저장해두는 시설도 많고, 그 규모도 크다 보니 가뭄에도 오랜 기간 버텨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작은 섬들은 그럴 여력이 없습니다. 사방이 물로 둘러싸인 곳인데, 정작 마실 물, 쓸 물이 없는 거죠.
'올해가 예외적으로 상황이 심각한 것'이라며 그저 그 끝을 기다리기만 하면 될까요. 이번 가뭄이 '역대급'임은 맞습니다만, 앞으로의 전망을 살펴보면 이러한 가뭄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과거, 한 100년 정도의 기록을 봤을 때, 우리나라의 강수량은 해마다 변동이 크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조금씩 증가해오고 있습니다. 반면 강수일수는 마찬가지로 과거 100년 정도의 기간을 봤을 때 줄어들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미래에서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즉, 미래의 강수량과 강수일수의 변화에서도 온난화에 따라 강수량의 증가폭은 점점 커지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그에 대비해서 강수일수는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그런 경향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변영화 국립기상과학원 기후변화예측연구팀장
변영화 국립기상과학원 기후변화예측연구팀장이 미래 강수전망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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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량이 증가하지만 강수일수가 감소한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크게 두 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그만큼 호우의 가능성이 더 높다'라는 측면으로도 해석할 수 있고요, 두 번째로는 강수일수가 부족한 시기가 주로 봄철이라든가 겨울철에 몰리게 되면, 결국 그 계절 동안 가뭄으로 나타날 그런 징후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겁니다.”
변영화 국립기상과학원 기후변화예측연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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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곡창지대인 나주평야를 찾았습니다. 나주와 호남평야는 우리나라 쌀 생산의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곳이죠. 지금은 보리 이모작이 한창인 이곳엔 이미 기후변화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얼핏 푸르게만 보였던 보리는 자세히 살펴보니 노랗게 타버린 상태였습니다.
두렁에 있던 농민 윤영동 씨는 열악한 상황에 관해 설명했습니다. 보리는 끝이 누렇게 타버리기만 한 게 아니었습니다. 키도 제대로 자라지 못 했죠. 정상적으로 자랐다면, 지금쯤 무릎 높이 가까이 자랐어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입니다.
기후변화가 우리나라의 식량안보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큽니다. 최근 수십년간, 부족함을 걱정해본 적 없는 우리의 주식인 '쌀'마저 안전을 담보하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기온은 치솟고, 쓸 물은 부족해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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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현재까지의 생산량에 있어서 감소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은 기후변화보다 재배 면적 감소의 영향이 더 컸습니다. 하지만 기후변화로 인한 기온 상승이 더욱 심각해지는 2050년대에 이르게 되면, 기후변화로 인한 생산량 감소가 급속히 이뤄지기 때문에 식량안보의 위험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기후변화로 변동성이 커지는 것도 문제입니다. 변동성이 커지면서 저희가 기상 상태나 기후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하게 되면, 쌀 수급 등을 조절하는 정책을 세우기 어려워지죠. 이 역시 기후변화로 인한 악영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현석 국립식량과학원 농업연구사
이현석 국립식량과학원 농업연구사가 기후변화로 인한 쌀 생산성의 변화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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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좀 수급 균형이 맞겠네' 반가워해야 할 일일까요? 이현석 국립식량과학원 농업연구사는 “기후변화로 변동성이 커지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변동성이 커지면서 기상 상태나 기후의 예측 정확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 연구사는 “결국 쌀 수급 등을 조절하는 정책을 세우기 어려워진다”며 “이 역시 기후변화로 인한 악영향”이라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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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수는 재배 위치가 이동될 수 있지만, 쌀은 전국적으로 다 재배되기 때문에 기후변화의 영향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과수보다 찾기 어렵습니다. 기후변화로 기온이 지나치게 오르고, 특히나 남쪽인 전남에서 제대로 재배를 할 수 없게 된다면 상황은 심각해지죠.
또한, 쌀이 전국적으로 균일하게 재배되긴 하지만, 전남의 경우 재배 면적이 제일 넓습니다. 전남에서의 생산량 감소가 국내 쌀 생산량 감소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큰 것이죠. 결국 식량안보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이현석 국립식량과학원 농업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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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농토는 줄고, 기후도 나빠짐에 따라 '남는 쌀 걱정'이 '배부른 걱정'으로 불릴 날은 그리 머지않았습니다. 우리가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상황을 가정한 RCP 8.5 시나리오에 따르면, 2040년대 우리나라의 단위면적당 쌀 생산량은 1980년대 수준으로, 60년대엔 70년대의 수준으로 뚝 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안 그래도 경작지는 해마다 줄어드는데, 단위면적당 생산량마저 떨어지면, 국내 쌀 생산량 자체는 이보다 더 큰 폭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농사짓기도 앞으론 무진장 힘들 것 같아요. 쌀, 보리 생산량도, 식량 자급률도 그렇고 앞으로 미래가 걱정입니다. 앞일을 어떻게 알겠습니까마는, 기후변화가 그렇게 심각하게 온다면 앞으로 문제가 있겠죠. 그나마 우리는 어느 정도 다 살았으니까. 난 80살 다 됐는데, 우리 밑에 동생들, 후손들이 조금 편히 살아야 할 텐데, 마음 놓고… 우리는 살 만큼 살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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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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