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진상 밝혀 ‘왜 내 가족이 죽었나’ 의문 풀어줘야”
동병상련 조문 2001년 일본 아카시시 불꽃축제에서 발생한 육교 압사 참사 유가족 시모무라 세이지(왼쪽)와 미키 기요시가 17일 서울 이태원 참사 현장을 찾아 헌화 후 추모 메시지를 적고 있다. 문재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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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재난참사 유가족들 토론회
독립적 진상조사·피해 지원 강조
22년 전 일본 아카시, 9년 전 진도 앞바다, 5개월 전 서울 이태원. 그곳에서 하루아침에 가족을 잃은 이들이 17일 한자리에 모여 동병상련의 아픔을 함께 나눴다. 참사를 겪은 시간과 공간은 달랐지만, 다시는 같은 아픔이 발생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과 필요한 경험을 공유하며 서로를 위로하는 마음만은 똑같았다.
아카시시(市) 참사, 10·29 이태원 참사, 세월호 참사 유가족은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토론회에 참석했다. ‘재난참사의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피해자들의 노력’을 주제로 한 토론회에서 이들은 독립적인 진상조사와 피해자 지원의 중요성을 재삼 강조했다.
일본 아카시시 참사는 2001년 7월21일 아카시 불꽃축제에서 일어난 압사 사고다. 15만명가량이 모여든 축제 당시 육교 위에 1800여명의 사람들이 몰려 11명이 숨지고 247명이 다쳤다. 좁은 길목에 대규모 인파가 몰려들어 발생한 참사라는 점과 경찰 등 공권력이 부실하게 대응했다는 점 등에서 이태원 참사와 유사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본에서 온 이들은 유가족이 납득할 수 있는 진상조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시모무라 세이지 ‘아카시시 참사 유족회’ 회장은 “국가가 아닌 제3자로 만들어진 사고조사위원회가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얘기를 담아 사고 메커니즘을 제대로 분석하고 아카시시와 경찰에 대한 제언을 담은 보고서를 냈다”면서 “유족이 납득할 수 있는 보고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아카시시는 참사 발생 열흘여 만에 사고조사위원회를 구성, 6개월간 조사를 진행한 뒤 보고서를 발간했다.
참사 피해자 유가족 미키 기요시는 “‘왜 내 딸이 죽어야 했는가’가 가장 큰 의문이었기 때문에 사고 메커니즘을 알고자 했다”면서 “사고조사위원회가 경찰, 시청 등을 취조해 증거를 모아 어떻게 사고가 일어난 것인지 파악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조사를 납득할 수 있는 필수조건의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성욱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진상규명부서장은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는 달라야 한다고 했지만, 국가는 세월호 이전과 달라지지 않았고 이태원 참사가 발생했다”면서 “모든 재난참사는 연결되어 있다”고 했다.
이종철 10·29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 대표는 “이태원 참사 발생 140일을 맞는 유가족 입장에서 9년의 시간과 22년의 시간은 감히 가늠할 수도 없는 긴 싸움의 시간”이라며 “아카시시와 세월호 두 참사 피해 가족들의 이야기가 앞으로 10·29 유가족들이 진상규명을 위해 나아가는 큰 디딤돌이 될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아카시시 참사 유가족은 토론회에 앞서 이날 오전 서울시청 앞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분향소와 이태원 현장을 방문했다. 현장에서 아카시시 유가족은 이태원 참사 유가족을 위로하며 “우리의 경험을 조금이라도 나누며 힘을 주고자 한다. 유족에겐 국경이 없다”고 했다.
미키는 이태원 유족들에게 “원인 규명이 되지 않으면 재발 방지로 나아갈 수 없는데, 이를 위한 재판까지 15년이 걸렸다”고 했다. 시모무라도 “긴 싸움이 될 수 있으니 건강 조심하시라”고 당부했다. 이태원 해밀톤호텔 옆 골목을 찾은 이들은 추모의 벽 앞에서 헌화한 뒤 재차 합장했다.
김송이·김세훈 기자 songy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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