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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조선소 손 없어 외국인 채운다는데... 차별·폭력에 사라지는 이주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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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감풍년 조선소, 이주노동자 딜레마]
<상>조선소 '2등시민' 이주노동자들
한국일보

이주노동자 후이(가명)가 보여준 표준근로계약서. 통상임금 270만 원으로 계약이 돼 있었으나, 실제로는 초과근무와 주말근무 등을 하더라도 여러 명목으로 공제가 이루어져 월급은 E-7 이주노동자 법정 최저수준인 270만 원에 맞춰졌다. 3년 동안 월급은 오르지 않았다. 울산=곽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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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서 용접 기술을 배운 후이(가명·35)는 수년을 기다린 끝에 2021년 특정활동 비자(E-7)를 받아 한국에 들어왔다. 조선소에서 일손이 부족해 이주노동자를 구하고 있고 어느 정도 소득이 보장된다고 했다. 용접은 어디서나 똑같이 힘든 일인데, 베트남에서보다 4배나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기회였다.

그렇게 도착한 한국 조선소는 추웠다. 사람들은 내내 화가 나 있었고 소리를 질러댔다. 한국어를 몰라 자세한 뜻은 몰라도 매일같이 쏟아지는 말이 욕인 건 알 수 있었다. 통역도, 교육도 없었다. 쉬는 시간엔 "네가 뭔데 쉬냐"는 말과 함께 욕설이 날아들었다. 그라인딩 작업으로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먼지가 가득한 블록에서 일하다 다쳐 허리를 펼 수 없었지만 회사는 산재처리 대신 연계 병원에 가라고 했고, 겨우 3일 만에 출근 명령이 떨어졌다.

이를 악물고 야근에 잔업, 특근, 주말근무까지 불사해 한 달 근로시간이 300시간을 훌쩍 넘겼지만 회사는 온갖 이유를 대며 월급을 E-7 근로자 최소 수준(270만 원)에 맞췄다. 표준근로계약서는 무용지물이었다. 회사에 항의하자 서늘한 한마디가 돌아왔다. "싫으면 너네 나라로 돌아가." 얼마 전 짐을 챙겨 도망치듯 사라진 동료가 떠올랐다.

지난달 8일 울산에서 만난 후이는 "조선소에선 외국인에게 부당한 대우를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며 "참고 일해도 돌아오는 게 차별이니 도망가는 사람이 자꾸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인 없으면 배 못 만든다"는 조선소, 짐 싸는 이주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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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업의 혹독한 불황이 끝나고 선박 수주가 늘면서 현장에선 일손 부족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가 최근 발간한 '조선·해양산업 인력 현황 보고서'는 올해 3분기 국내 조선업 생산직 근로자가 1만 2,872명 부족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정부는 조선업 인력 부족 해결을 위해 E-7 용접공과 도장공의 연간 입국 인원 제한을 폐지하고 비전문취업 비자(E-9) 쿼터 한도를 대대적으로 늘리는 등 외국인력 도입을 대책으로 내놨다. 상시 근로자의 20%까지 허용했던 기업별 외국인력 도입 비율은 2년간 한시적으로 30%까지 확대했다.

이미 조선소 하청업체에 이주노동자는 없어선 안 될 존재가 됐다. 공식 통계에 따르면 올해 1월 기준 전체 조선업 근로자 중 이주노동자 비중은 6.4%에 불과하지만, 현장에선 "모르는 소리"라며 고개를 젓는다. 금속노조 관계자는 "대형 조선업체의 협력사들이 몰려 있는 전남 대불산단의 경우 인력의 70%가 이주노동자로 추정될 정도"라며 "미등록 체류자도 많아 공식 통계엔 잡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주노동자 없이는 '세계 1등'인 한국 조선업의 선박 건조가 불가능한 셈이다.

그러나 현장의 열악한 노동환경은 어렵게 한국까지 온 이주노동자들을 조선소 밖으로 내몰고 있다. 지난해 울산에선 베트남 출신 이주노동자 30여 명이 한꺼번에 사업장을 무단이탈했고, 전남 영암군 등에서도 10여 명의 이주노동자가 잠적했다. 울산의 한 하청업체에서 20여 년간 도장공으로 일한 김모씨는 "최근 들어온 중국인 노동자는 배에 도장을 하다 냄새가 너무 심하고 머리가 아프다고 3일 만에 그만두고 나갔다"며 "지난해엔 베트남에서 들어온 노동자 5명이 한꺼번에 없어진 일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어차피 (건설업 등) 다른 데로 가도 최저임금을 받는데, 여기서 위험하고 힘든 작업을 하면서 최저임금 받느니 미등록을 감수하더라도 거기 가는 게 낫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차별에 저임금, 위험한 환경까지... "이주노동자도 불합리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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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8일 방문한 울산 동구의 밤 풍경. 오후 8시가 넘은 시간이지만 조선소 내부는 대낮같이 밝아 보인다. 울산=곽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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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들은 열악한 환경에 더해 차별까지 겪고 있다. 베트남인 도장공 응언(가명·29)은 "추운 겨울 온몸에 물을 뒤집어써야 하는 워싱 작업같이 한국인들이 꺼리는 일은 다 외국인에게 시킨다"며 "한국인이 거부하는 위험한 일도 우리는 제대로 된 안전장치 없이 시키는 경우가 많다"고 털어놨다. 보호장구 제공 대가로 외국인들에게만 돈을 받는 사업주도 있고, 이주노동자만 한 시간 일찍 출근하도록 해 무급으로 청소를 시키기도 한다. 임금체불은 흔한 일이라고 했다.

도통 오르지 않는 임금 수준도 불만이다. 기량이 쌓이고 숙련도가 높아지더라도 최저임금에 머물러 있어 같은 일을 하는 한국인과 비교하면 최대 4, 5배의 차이가 난다. 사업장 변경이 자유로운 결혼이민(F-6)이나 재외동포(F-4) 노동자의 경우 프리랜서 계약을 맺는 '꼼수'를 쓴다. 이러면 4대 보험과 산재 처리, 주휴수당 등의 권리를 누리지 못한다.

이주노동자들은 '위험의 외주화' 최전선에 배치되는 게 현실이다. 지난달 28일 전남 신안군에서는 용접 작업을 하던 30대 베트남 이주노동자가 2m 높이에서 떨어진 700㎏짜리 선박 부품에 깔려 사망했다. 대불산단 이주노동자들에 관한 연구를 수행한 김현미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조선소는 모든 업무가 옥외에서 이뤄지고 위험수위가 높은 용접, 절단, 족장(높은 곳에서 일할 수 있도록 설치하는 임시 가설물) 작업 등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아 산재 사고 가능성이 크다"며 "원청은 산재 발생이 평가 감점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하청 노동자 산재를 공상 처리해 은폐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주노동자들도 불합리가 계속되면 일터를 떠난다. 미등록 체류자는 오히려 사업장 이동이 자유롭고 비교적 고임금을 받을 수 있어 나쁜 선택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윤용진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사무장은 "이주노동자들도 요즘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서로 정보를 주고받기 때문에 자신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걸 알 수밖에 없다"며 "언제든 최저임금으로 쓰고 버릴 수 있는 인력이라고 생각해 부당한 대우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시간이 지날수록 반발이 커질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울산=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울산=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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