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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이슈 미술의 세계

암투병 박서보 화백 “새 작업 위해 항암치료 안받을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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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박서보미술관’ 기공식 참석

“암을 친구로 모시고 함께 살자 생각

내 그림 보고 마음속 응어리 치유를”

동아일보

박서보 화백이 14일 제주 서귀포시 JW메리어트 제주 리조트&스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내년 여름 개관을 목표로 호텔 내 부지에 ‘박서보미술관’(가칭)이 지어진다. 오른쪽 사진은 박서보미술관 조감도. JW메리어트 제주 리조트&스파·페르난도 메니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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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암 진단을 통보받은) 처음에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더라고요. 앞으로 해야 할 일도 많은데 이걸 다 어떻게 하라고 나에게 이런 형벌을 주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주 서귀포시에 건립되는 ‘박서보미술관’(가칭)의 기공식에 14일 참여한 ‘단색화의 거장’ 박서보 화백(92)이 말했다. 그는 지난달 자신의 소셜미디어 계정을 통해 폐암 3기 판정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암 투병 사실을 공개한 후 이날 처음 공개석상에 나선 그는 휠체어를 탄 채 간간이 기침을 하긴 했지만 비교적 건강한 모습이었다.

박서보미술관은 올해 상반기 문을 여는 JW 메리어트 제주 리조트&스파 내 부지에 들어설 예정이다. 총건축면적 1만1571㎡(전시관 900㎡)에 지상 1층, 지하 2층 규모다. 기공식을 계기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박 화백은 그간의 소회를 밝혔다.

그는 “체념하는 데 뛰어난 재주가 있다”며 “암을 친구로 모시고 함께 살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새로 시작한 작업을 위해 항암 치료도 받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치료는 슬슬 봐가면서 해 나가고…. 3개월에 한 번씩 내 몸 상태를 검진받자고 생각했어요. 암을 치료하게 되면 내가 해야 할 일을 못 하기 때문이죠.”

그가 새로 시작한 작업은 외국 신문과 한지를 포개어 붙인 뒤 그 위에 유화 물감으로 드로잉하는 일이다. 1970년대 후반 선보였던 연작을 현재 상황에 맞춰 새롭게 작업하고 있는 것. 그는 “일상에서 다른 것을 잊고 그림에 집중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처음 폐암 진단을 받고 2∼3일은 흔들렸는데, 지금은 암에 걸렸다는 생각도 다 잊어버렸어요. (진단받기 전과 지금을 비교할 때) 전혀 변한 것이 없습니다.”

박서보미술관은 자연광이 지하 전시실까지 닿을 수 있는 성큰(sunken) 구조를 도입했다. 스페인 테네리페섬 출신의 건축가 페르난도 메니스(72)가 설계를 맡았다. 미술관은 2024년 여름에 완공될 예정이다. 박 화백은 “사람들이 미술관을 찾아 그림을 보고 난 뒤 마음속 응어리들을 풀길 바란다”고 말했다.

“내 그림이 대중을 치유하길 원합니다. 그것이 내가 그림을 그리는 목적입니다. 나를 비워야만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채울 수 있습니다. 서양 미술은 자기의 생각만 잔뜩 토해내 보는 사람에게 이미지 폭력을 가하거든요. 난 그런 예술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수신(修身)의 도구가 그림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술관은 박 화백이 사재를 출연해 2019년 세운 기지재단에서 운영한다. 기지재단은 현재 미술관의 정식 명칭과 운영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개관과 함께 상설 및 기획 전시 교육 행사를 선보일 계획이다. 올해 새로 설립한 박서보장학재단과 연계해 인재 양성 프로그램도 마련한다.

제주=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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