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축구선수 출신 스포츠 해설가 게리 리네커(63)가 정부의 '불법 이민법'을 비판했다가 BBC 프로그램에서 하차 당했다.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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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인권 보호와 자국민 우선 정책 중 뭐가 더 중요할까. 이 질문을 둘러싼 갈등이 최근 영국에서 다시 불거졌다. 주인공은 유명 축구해설가 게리 리네커(63). 그는 영국 정부가 발표한 ‘불법 이민법’을 비판했다가 BBC 방송 출연을 금지당했고, 이에 대한 찬반이 영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리네커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해선 안 된다는 청원에 동의한 시민은 20만명을 넘어섰고, 법안을 둘러싼 찬반 논란에 영국 정부와 여·야당까지 가세했다. 뉴욕타임스(NYT)는 13일(현지시간) “BBC와 리네커의 대립은 표현의 자유, 정부의 압력, 양극화한 정치, 소셜미디어 시대의 공영 방송사의 역할 등 전반적인 논쟁을 촉발했다”고 전했다.
지난 7일(현지시간) 리네커는 트위터에 정부의 불법 이민법을 반대하는 글을 올렸다. 그는 “가장 약한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잔인한 정책”이라며 “1930년대 (나치) 독일이 사용한 언어”라고 비유했다. 이날 영국 정부는 배를 타고 자국 영해로 넘어오는 불법 이민자를 무조건 난민으로 받아주지 않고 곧바로 추방하겠다는 내용의 법안을 발표했다. 소형 보트를 타고 영-불 해협을 건너는 이들이 해마다 늘자 내놓은 강경책이다. 영국 정부는 지난해 4월 르완다 정부에 1억2000만 파운드(약 1900억원)를 주고 자국에 들어온 난민을 르완다에 보내는 내용의 협약을 체결했다가 유엔(UN)난민기구 등으로부터 ‘난민 밀어내기’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작은 배를 타고 영-불 해협을 건너 영국으로 향하는 이민자들. 영국 정부는 이들을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고 즉시 추방한다는 내용의 '불법 이민법'을 지난 7일(현지시간) 발표했다.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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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네커가 글을 올린 지 3일 뒤 BBC는 리네커의 방송 출연을 중단시켰다. BBC는 “정치 문제에 대해 한쪽 편을 들어선 안 된다는 지침을 위반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11일(현지시간)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EPL) 중계 프로그램인 ‘매치 오브 더 데이(Match of the Day)’는 리네커 없이 20분만 방송됐다. 리네커가 1999년부터 매주 토요일에 진행한 BBC의 간판 스포츠 프로그램이다.
BBC의 발표에 동료들과 축구 팬들이 들고일어났다. 앨런 시어러, 이언 라이트 등 축구 선수 출신의 방송인들도 BBC 방송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소셜 미디어엔 ‘BBC를 보이콧한다(#BoycottBBC)’는 해시태그 운동도 벌어졌다.
11일(현지시간) 한 영국 축구 팬이 개리 리커넥을 지지하며 '리커넥을 총리로'라는 문구판을 들었다. 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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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장은 정치권으로도 확대됐다. 노동당은 “BBC는 정치적 압력에 굴해 표현·언론의 자유를 공격했다”며 “정부와 유착한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난민 정책을 발표했던 수엘라 브레이버먼 내무 장관은 “(리네커의 발언은)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축소한 것”이라며 불편한 심경을 내비쳤고, 다른 보수당 의원들도 “정치적 의견을 표명하기 위해 BBC를 남용한 것”이라고 반발했다. 논란이 커지자 리시 수낵 총리는 “해당 문제가 적시에 해결되길 바란다”는 입장을 냈다.
1983년 축구 선수로 활동할 당시 개리 리네커의 모습. 사진 영국 풋볼 뮤지엄 홈페이지 |
리네커는 1980~90년대에 활동한 영국 대표 축구 선수였다. 국가대표로 뛰는 8년 동안 80경기에 출전해 48개 골을 넣어 역대 네 번째로 높은 득점 기록을 보유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16년 선수 생활 동안 단 한 번도 경고·퇴장 카드를 받은 적이 없어 ‘그라운드의 신사’라는 별명도 얻었다.
94년 은퇴한 뒤엔 스포츠 해설가로 활동했다. 뛰어난 해석력과 매끄러운 진행으로 축구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의 트위터 팔로워 수는 860만 명에 달한다. NYT는 “리네커는 활동 무대를 축구 경기장에서 방송 부스로 순조롭게 옮긴 대표적인 인물”이라며 “지난해 BBC로부터 135만 파운드(약 21억 2800만원)를 받은 대표 해설가”라고 전했다.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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