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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이슈 5·18 민주화 운동 진상 규명

형은 5·18 계엄군, 동생은 시위대 그 사이에 선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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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고백' 계엄군 출신 김귀삼 씨 가족의 기구한 사연

연합뉴스

5월 18일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 (PG)
[홍소영 제작] 사진합성·일러스트


(광주=연합뉴스) 천정인 기자 = 특전사동지회와 화합을 추진했던 5·18 부상자회가 후속 행사로 '고백과 증언'을 준비 중인데, 이 자리에 참석할 예정인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공수부대 부사관으로 진압 작전에 투입됐던 김귀삼(68) 씨와 그 가족의 기구한 사연이 주목받고 있다.

12일 5·18 관련 단체 등에 따르면 1980년 제3공수여단 중사로 복무하던 김씨는 5월 항쟁이 한창이던 5월 20일 진압군으로 고향인 광주 땅을 밟았다.

자신이 속한 부대가 광주 북구 용봉동 전남대에 주둔하면서 김씨 역시 전남대 앞으로 몰려온 시위대를 마주했다.

공교롭게도 이 시위대에는 가족이 운영하는 석재공장에서 일하던 3살 터울의 막냇동생도 있었다.

김씨는 작전에 투입되기 전 어머니와 통화에서 '형, 동생들이 시위에 다 나가버리고 난리 통'이라는 말을 듣긴 했지만, 동생이 자신의 부대와 대치하고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두 아들의 상황을 걱정한 김씨 어머니는 밀고 밀리는 격렬한 시위가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섰을 때 전남대 정문을 찾아 군에 있던 아들 면회를 요구했지만 작전 중인 군인을 만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퇴짜를 맞은 어머니는 시위대 핏자국이 선명한 거리 한복판에 주저앉아 "(시위대) 저기도 내 아들들, (계엄군) 여기도 내 아들들"이라며 통곡했다.

김씨는 동료들로부터 '웬 아주머니가 정문에서 울고 돌아갔다'는 얘기를 듣긴 했지만, 당시에는 그분이 자신의 어머니였을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지난해 5·18 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이 얘기를 나누던 중 어머니가 '그게 바로 나였다'고 말하면서 그제야 알게 됐다고 김씨는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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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열을 갖춰 이동하는 무장 계엄군
[5·18민주화운동 기록관]


전남대 앞에서 시위하던 그의 동생은 결국 공수부대원들에게 붙잡힌 뒤 심한 구타를 당해 이가 모두 빠져버렸다고 했다.

이 사실 역시 그때에는 알지 못했고 제대 후 만난 동생에게 전해 들었다.

당시를 떠올린 김씨는 "저는 도망가는 시위대를 쫓아 대검으로 시위대의 허벅지(엉덩이)를 찌를 때 동생은 제 동료들에게 모진 일을 당했던 것"이라고 착잡한 마음을 전했다.

김씨는 1981년 3월 군 복무를 마치고 가족이 사는 광주로 돌아왔지만, 주변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다.

이웃이 찾아와 "네가 광주 사람들 다 죽인 놈이냐"며 멱살잡이했고, 충격을 받은 김씨는 가족을 떠나 홀로 서울과 경기 지역을 전전했다.

시위에 동참했던 작은 형은 수사 기관의 눈을 피해 이미 서울로 도피한 상태였고, 어머니를 모시던 큰 형마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5·18 이후 김씨의 가족은 다시 한자리에 모일 수 없었다.

5·18 항쟁에서 크게 다친 동생도 개인적인 사정으로 오랫동안 타지 생활을 하며 가족들과 왕래가 끊긴 것과 다름 없었다.

타지 생활이 길어지다 보니 1990년 8월 이뤄진 5·18 최초 보상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했다.

이후 6차례 추가 신청 기회가 있었고, 우연히 연락이 닿은 친구들에게 보상 얘기를 들었지만 그땐 이미 피해 사실을 입증할 증거 자료가 사라져버린 뒤였다.

여러 사람의 목격담을 근거로 피해 사실을 인정받는 '인우보증' 제도도 알지 못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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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군 끌어안는 5·18 유족
2020년 5월 19일 5·18 당시 계엄군으로 투입된 김귀삼(왼쪽) 씨를 5·18 첫 사망자인 고(故) 김경철 열사의 어머니 임근단 여사가 안아주는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수십 년을 숨죽여 지내던 김씨는 지난해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조사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협조하며 이러한 내용도 함께 진술했다.

진상조사위 역시 김씨의 사연이 신빙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김씨는 진상조사위에 자신의 행위를 인정하고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 직접 사죄하고 싶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자신이 대검으로 찌른 피해자를 찾을 수는 없었지만, 대신 계엄군에게 가족을 잃은 오월 어머니들을 지난해 5월 직접 만나 눈물의 사죄를 했다.

김씨는 5·18 부상자회가 추진 중인 '고백과 증언' 행사에 동생과 함께 참여해 이러한 사연을 밝히고 피해자들에게 다시 한번 사죄의 뜻을 전할 계획이다.

5·18 부상자회 황일봉 회장은 "계엄군이 고백하면 용서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다른 분들도 용기 내서 진실을 고백하지 않겠느냐"며 "진상 규명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i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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