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 찬성 반대 반반... 현지 어민 반대
일본 정부는 "봄-여름 사이 방류" 준비
도쿄전력 관계자들이 2월 2일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외신 기자들에게 오염수 저장탱크를 설명하고 있다. 후쿠시마=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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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그때를 잊지 않겠습니다.” “원전은 안 된다!”
10일 일본 도쿄 시오도메역과 신바시역 사이 거리에서 열린 ‘3ㆍ11 동일본대지진 풍화 방지 이벤트’에 참가한 일본인들이 써 붙인 메모다. 19일까지 계속되는 이 행사에선 12년 전 대지진과 쓰나미에 따른 원자력발전소 사고로 도호쿠(東北) 지역이 입은 피해와 극복 과정 등을 담은 자료와 사진을 전시한다. 약 2만 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되고 피난민 47만 명이 발생한 초유의 재난이었지만, 점차 잊히자 ‘기억의 풍화’를 막겠다며 마련한 행사다.
기억의 풍화는 도호쿠 지역민에게 안타까운 일이지만 긍정적인 면도 없지 않다. 원전 사고 직후 심각했던 지역 식품에 대한 불안이 서서히 해소되기 시작했다. 일본 소비자원 조사에서 “후쿠시마현산 식품 구매를 주저한다”는 응답은 2013년 2월 19.4%였다가 지난해 2월에는 6.5%까지 줄었다.
10일 도쿄 시오도메역과 신바시역 사이 거리에서 열린 ‘3ㆍ11 동일본대지진 풍화 방지 이벤트’에 참가한 시민들이 메모를 붙여 놓았다. 도쿄=최진주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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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염수 방류하면 어업 피해 불 보듯... 정부는 방류 준비 진행
올해 봄에서 여름 사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일본에선 처리수)의 해양 방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후쿠시마산 식품 기피가 다시 극심해질 것으로 현지 어민들은 우려한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원전 사고 후) 피해가 몇 년 동안이나 지속됐다. (해양 방류는) 손자, 손녀 세대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한 어민의 호소를 전했다.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은 “관계자의 이해 없이는 어떤 처분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방류 준비를 착착 진행 중이다. 도쿄전력은 원전에서 1㎞쯤 떨어진 곳까지 터널을 뚫어 방류할 계획인데, 터널 공사가 막바지에 이르렀다. 정부는 지역 어민들을 위해 피해보상금 300억 엔(약 2,912억 원)을 약속하고, 전국 어민을 대상으로 하는 500억 엔(약 4,853억 원) 기금을 설치하는 등 주로 금전적 지원을 약속하는 데 그치고 있다.
10일 도쿄 시오도메역과 신바시역 사이 거리에서 열린 ‘3ㆍ11 동일본대지진 풍화 방지 이벤트’에 참가한 시민들이 도호쿠 지역 특산물을 구매하고 있다. 도쿄=최진주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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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으로 안전" 홍보에도 과반수가 "정부 설명 불충분"
이외의 대책은 “과학적으로 안전하다”고 홍보하는 것이 사실상 전부다. “오염수의 방사성 물질을 다핵종제거설비(ALPS)로 제거하고, 그래도 제거되지 않는 삼중수소는 기준치보다 크게 낮은 농도로 희석해 방류하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논리이지만, 일본인들 사이에서도 먹히지 않고 있다. NHK방송이 올해 2월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오염수 방류 찬성 응답은 27%, 반대 응답은 24%였고, ‘잘 모르겠다’는 답변은 41%다. 2년 전 스가 요시히데 내각이 방류 방침을 결정한 직후의 조사 결과와 거의 차이가 없다. 마이니치신문이 2월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방류에 대해 47%대 43%로 찬반이 엇비슷했고, 정부의 설명이 ‘불충분하다’는 응답이 60%를 넘었다.
현지 어민들이 끝까지 반대하기도 어려운 입장이다. 지역 주민들 사이에는 “지역을 다시 살리려면 후쿠시마 제1원전의 폐로가 필수적이고, 폐로 작업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는 부지를 가득 채운 오염수 탱크를 없애야 한다”는 의견도 있기 때문이다.
"폐로 위해 방류 필요하다"지만... 폐로의 길은 멀어
2월 2일 일본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오염수를 해저 터널로 내보내는 마지막 단계에 해당하는 상류 수조의 기본 틀이 콘크리트로 만들어져 있다. 후쿠시마=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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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로의 길은 멀기만 하다. 일본은 2019년 "2031년에 1, 2호기의 녹아내린 연료봉을 다 꺼내고 2041~2051년에 폐로 작업을 완료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녹아내린 연료봉 전체는커녕 ‘데브리(잔해)’ 한 조각 꺼내려는 시도조차 몇 년 동안 성공하지 못했다.
데브리는 원자로 속 노심이 원자로 격납용기 내부의 구조물과 함께 녹아내려 굳어버린 것으로, 원전 1~3호기 안에 총 880톤 정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격납용기 내부에서 강력한 방사선이 나오기 때문에 사람은 물론이고 로봇도 접근해 조사하기가 쉽지 않다.
2호기에선 영국에서 제작한 특수 로봇 팔을 이용해 소량의 데브리를 꺼내보려 했으나 기술적 어려움으로 몇 년째 지연됐다. 1호기 내부 조사는 지난해에야 처음으로 시작됐다. 데브리가 남아 있는 이상 오염수도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오염수 방류가 시작된다 해도 종료까지 수십 년이 걸릴 전망이다.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전 2호기 격납용기 내부의 '데브리'로 추정되는 물질. 데브리란 사고로 인해 원자로 속 노심이 원자로 격납용기 내부의 구조물과 함께 녹아내려 굳어버린 것으로, 1~3호기 안에 총 880톤 정도가 있다고 추정된다. 도쿄전력 촬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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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최진주 특파원 parisc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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